[과학기자의 문화산책] ‘원더우먼’ 부활이 갖는 의미

2017년 05월 08일 17:00
6월 초 개봉되는 영화 ‘원더우먼’의 한 장면 - 워너브라더스 제공
6월 초 개봉되는 영화 ‘원더우먼’의 한 장면 - 워너브라더스 제공

최근 수개월 사이 영화관을 찾은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시큰둥해 있던 기자도 요즘 개봉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영화가 한편 있다. 6월 초 여성 파워의 상징인 ‘원더우먼’이 마침내 영화로 개봉되기 때문이다. 원더우먼은 아마존 인근 ‘데미스키라’ 왕국의 공주가 악당들과 싸우며 지구를 지켜나간다는 설정으로, 슈퍼맨이나 배트맨, 아이언맨 같은, 소위 소위 ‘슈퍼히어로 물’ 중 하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먼’자를 붙여 여성 히어로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자가 창조한 ‘여신’

 

원더우먼은 미국 만화출판사 DC코믹스를 통해 꾸준히 연재되고 있다 - DC코믹스 제공
원더우먼은 미국 만화출판사 DC코믹스를 통해 꾸준히 연재되고 있다 - DC코믹스 제공

원더우먼은 본래 미국판 만화책 속 주인공으로 1941년에 처음 등장했던 역사적인 캐릭터다. 사실상 세상에 태어난 지 76년이 지난, 수많은 슈퍼히어로들의 어머니 같은 존재로 불러도 차질이 없다.

 

원더우먼을 처음 창조한 작가는 심리학자 ‘윌리엄 멀턴 마스턴’으로, 현대 과학수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거짓말 탐지기’를 발명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찰스 멀튼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원더우먼 캐릭터를 발표했다.

 

당시 교육자들 사이에선 ‘만화책은 어린이들에게 유해한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마스턴 박사는 ‘만화책의 교육적 효과가 크다’고 주장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결국 마스턴 박사는 한 만화출판사 자문으로 활약하게 되고, 급기야 직접 스토리 작가로서 만화 캐릭터 ‘원더우먼’을 창조하기 이른다. 폭력이 아닌 화합과 사랑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영웅의 모습을 그리려다 보니 남성보다는 여성 캐릭터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 원더우먼은 복장이나 연출 등을 현대적으로 다듬었을 뿐, 1941년 마턴 박사가 구상했던 원더우먼의 초기 설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는 “6월 개봉할 원더우먼이 코믹스의 초기 설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움과 아테나의 지혜, 헤라클레스의 힘, 헤르메스의 빠르기까지 강력한 힘과 반사신경, 지혜와 공감능력 등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전사로 묘사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여성 캐릭터’라는 이중성

 

첫 원더우먼 첫 TV시리즈 주인공으로 활약했던 배우 ‘린다 카타’의 모습.
첫 원더우먼 첫 TV시리즈 주인공으로 활약했던 배우 ‘린다 카타’의 모습.

원더우먼은 ‘최초’나 ‘유일’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지만 사실 원더우먼보다 먼저 등장했다 사라진 여성히어로도 꽤 존재했다. 최근에도 슈퍼맨의 친척뻘로 등장하는 ‘슈퍼우먼’ 등 다양한 여성 히어로가 활약하고 있어 유일한 여성히어로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다만 가장 인지도 높은 여성 슈퍼히어로라는 점은 틀림이 없지 않을까.

 

만화나 영화 속 캐릭터를 두고 새삼 ‘양성평등’ 논리를 가져다 붙이기는 꺼려진다, 그러나 원더우먼은 상징적인 여성캐릭터라는 점에서 묘하게 대중의 인식이 엇갈리기도 한다. 지난해 10월 유엔은 여권신장 명예대사로 곧 개봉할 영화 ‘원더우먼’의 주역 여배우 ‘갤 가돗’을 선정했다가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당시 유엔엔 두 달 사이에 4만5000명의 온라인 반대 청원이 날아들었다. “가슴을 강조하고 허벅지를 드러낸 옷을 입은 원더우먼이 여성 인권의 대변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던 것. 유엔은 지난해 12월 결국 갤 가돗의 명예대사 선정을 철회하기에 이른다.

 

이 사건을 보며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한 것은, 원더우먼은 도리어 페미니즘의 상징 같은 존재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첫 원작자인 마스턴은 대단한 페미니스트로, ‘언젠가는 공감능력이 뛰어난 여성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원더우먼을 여성해방의 아이콘으로 부활시킨 것 역시 1970년대 미국 페미니즘 운동가들이었다. 유명 페미니즘 여성잡지 ‘미즈’의 창간호 표지모델은 원더우먼이었고, 그 아래에는 ‘원더우먼을 대통령으로’라는 글이 붙었다.

 

‘강한 히어로는 남자여야 한다’는 독자들의 잠재의식이 발현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원더우먼 시리즈는 슈퍼맨이나 배트맨, 아이언맨 등 다양한 히어로 시리즈에 비해 연재만화책 판매량이 크게 떨어진다. 인지도는 높지만 책을 실제로 구매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갑을 열 만한 파워는 갖지 못했던 셈. 결국 슈퍼맨의 여자친구로 설정해 동시에 등장하는 등, 독자적으로 무게있게 스토리를 끌고 가지 못하는 경우도 자주 눈에 들어온다.

 

원더우먼 판권을 갖고 있는 DC코믹스는 2016년 이후 원더우먼 캐릭터이 모습을 다소 변경했다. 망토를 입히고 의상도 한층 ‘전사’에 가깝게 변했다. - DC코믹스 제공
원더우먼 판권을 갖고 있는 DC코믹스는 2016년 이후
원더우먼 캐릭터이 모습을 다소 변경했다. 망토를 입히는
등 한층 ‘전사’에 가깝게 변했다. - DC코믹스 제공

이를 증명하듯 지금까지 원더우먼은 만화책, TV시리즈, TV용 단편영화, 만화영화 등 여러 가지 작품으로  제작됐으나 막상 원더우먼 혼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단독솔로’ 영화는 단 한편도 제작된 바 없다. 결국 오는 6월 개봉할 영화 ‘원더우먼’은 원더우먼 캐릭터 탄생 이후 76년 만에 개봉되는 첫 번째 오리지널 영화인 셈이다.

 

이 탓을 결국 여성 캐릭터가 슈퍼히어로라는, 다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중성 때문으로 보아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원더우먼은 힘과 정의의 상징이면서도, 미의 상징을 동시에 만족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는 점은 확실하다. 1975년 원더우먼의 첫 TV시리즈 주연을 맡은 인물은 ‘미스 월드 USA’ 였던 린다 카터, 새로 개봉할 ‘원더우먼’ 영화의 주인공 갤 가돗은 ‘미스 이스라엘’ 출신이다. 그간 린다 카터의 무게감을 대신할 여배우를 찾기 어려워 단독 솔로 영화 제작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과연 이번 영화에 보여질 원더우먼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미의 상징과 힘의 상징, 그 균형을 생각하면서 영화를 본다면, 영화 제작자들이 원더우먼이라는 캐릭터를 놓고 고심했을 또 다른 부분 역시 눈에 들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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