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곳 01] 시장: 대형매장 vs 전통시장

2017년 04월 15일 18:00

※ 편집자 주

[마음을 치는 시(詩)]와 [생활의 시선]에 연이어 윤병무 시인의 [때와 곳]을 연재합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장소’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시간’은 오래되어 역사의 범주일 수도 있고, 개인 과거의 추억일 수도 있고, 당장 오늘일 수도 있고, 훗날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는 우리가 생활하는 바로 ‘이곳’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늘 일상의 공간에서 발 딛고 서 있는 희로애락이 출렁이는 삶의 현장입니다. 너무 익숙하거나 바빠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그 ‘곳’을 시인의 눈길과 마음의 손을 잡고 함께 가만히 동행해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구체적인 현지와 생생한 감수성을 잠시나마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거주하는 도시의 구시가지에는 요즘도 오일장이 선다.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변두리가 돼버린 그곳에는 여전히 전통시장이 자리하고 있지만, 주변의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에 밀려 오래전부터 신선한 식재료보다는 주로 화초 모종이나 한물간 상표의 공산품들을 판매한다. 그 거리에는 참기름집, 그릇집, 불교용품점, 칼국수집 등이 세월의 그늘을 입고 나열해 있고, 그 도로변에 한 달에 6일, 즉 3, 8, 13, 18, 23, 28일에는 어김없이 장(場)이 열린다. 인도를 가득 메운 간이천막이 길게 늘어선다.

 

윤병무 제공
윤병무 제공

왜 닷새 주기로 장이 설까. 요즘의 도시인들도 일주일에 한 번은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경우가 많으니 우리의 소비 양식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다만 달라진 것은 시장을 찾는 소비자가 도시에서는 전통시장보다 대형마트로 쏠린다는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다. 이유를 헤아리자니 다섯 손가락으로는 부족하다.


첫째는 접근성. 웬만한 중소도시에까지 중심 상권에는 대형마트가 자리 잡았다. 반면에 전통시장은 도시 개발에 따라 구시가지가 돼버린 변두리에 녹슨 못처럼 박혀 있다. 소비자는 번화가에 많기 마련이다.


둘째는 편의성.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는 옛말. 오늘날엔 흔히 개인 차량을 이용한다. 그런데 전통시장은 보통 주차 여건이 좋지 않다. 또한 그곳은 카트(cart)가 없어 불편하고 실내가 아니라 냉난방 시설을 갖출 수 없어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셋째는 상품 다양성. 대형마트에는 층별로 식품, 생활용품, 전자제품, 문화상품 등 현대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갖추고 있는 반면, 전통시장은 주로 기본 생활에 필요한 식품이나 의류, 신발, 철물 등에 한정돼 있다.
 

넷째는 공산품 가격. 그것은 말 그대로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인데, 대형매장의 유통 채널과 할인 행사 등을 소규모 상인이 가격으로 경쟁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니 소비자의 선택은 빤하다.


다섯째는 위생 환경. 자세한 상품 이력 표기, 상품의 낱개 포장, 냉동 냉장 시설 모두 전통시장은 대형마트에 비해 열악한 형편이다. 파리를 쫓는 모습도 대형마트에서는 보기 어렵다.


여섯째는 지불 방법. 전통시장의 정육점 등에서는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하지만 떡볶이집 등의 작은 상점, 특히 노점에서는 현금이 아니면 거래가 어렵다. 그러니 신용카드 중심의 소비문화에 익숙한 소비자의 발길이 어디로 갈지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런 이유에서 오늘날의 소비자는 주로 대형매장을 찾는 듯하다. 그런데 과거에 비해 소비량은 늘어났다. 그건 가계 수입이 늘어났기보다는 대형매장의 마케팅 전략이 영향이다. 웬만한 것은 박스나 묶음 판매를 할뿐더러 ‘1+1 행사’로 대량 구매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대형매장을 다녀오면 장바구니가 가득하니 소비 역시 늘 수밖에 없다. 이제는 야식으로 라면을 먹을지 말지 고민하지 않는다.

 

윤병무 제공
윤병무 제공

전통시장의 장점은 무얼까. 과일, 야채, 생선, 육고기 부속물, 건어물 등의 식재료나 떡, 두부, 튀김, 순대, 국수, 밑반찬 등의 식품은 대개 대형마트보다 값싸다. 또한 대형마트의 무게(g)에 따른 가격 표시제가 정확하고 합리적이더라도 전통시장에는 손님에 따라, 기분에 따라 ‘덤’이라는 마음의 저울이 있으니 인간적이다.


시장은 이미 자영업을 넘어 거대자본이 지배하는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제조와 유통은 물론 판매까지 기업이 하기에 소비자의 지갑을 열려는 대형매장에는 자본과 노동만 존재한다. 판매와 소비만 있을 뿐 장터 현장의 생생한 희로애락의 문화는 없다. 할머니를 따라나선 어린 손자가 장난감을 발견하고 뒤로 넘어갈 때 달래려고 솜사탕을 쥐어주는 장면도, 장날 장터에서 거나해진 할아버지가 저물녘에 박하사탕 한 봉지를 손에 들고 귀가하는 장면도, 국가로부터 적절한 혜택을 받지 못한 노인이 장터 한구석에서 태극기를 팔다가 쪼그려 앉아 깍두기 하나로 점심을 때우는 장면도, 대형매장에서는 볼 수 없다.


시장은 상품을 사고파는 곳이지만 소비자와 판매자가 주고받는 것은 상품만이 아니다. 이제 완연한 봄이니 좀 불편하더라도 전통시장에 나가보자. 그곳에서 따뜻한 두부도 한 모 사고, 두 개에 천 원짜리 고로케(크로켓)로 출출한 배도 달래자. 노점을 지날 때는 (대형매장에서는 만날 수 없는) 한 뼘도 안 되는 어린 열무도 한 봉지 사서 그날 저녁에는 겉절이로 해 먹자. 식탁 구석에는 시장에서 함께 사온 머그잔만 한 봄꽃 화분도 하나 올려놔보자. 때때로 합리성 바깥에 풋풋한 삶이 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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