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왜 이럴까?] ④ 남성성에 대한 열등감- 턱수염의 비밀

2017년 04월 15일 09:00

네 줄 요약
1. 턱수염은 유독 남성에게만 나타나는 생물학적 특징이다. 
2. 하지만 턱수염이 성 선택에 의해 획득된 형질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3. 턱수염은 타고난 자질이기보다는 유행을 타는 문화적 코드에 가깝다.
4. 턱수염이 없다고(혹은 너무 많다고) 고민하지 말자.

 


고등학생 A군은 거울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옵니다. 수염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질만질한 턱에 공연히 비싼 면도기를 가져다 대보지만, 별로 깎이는 것도 없습니다. 막상 털이 많은 친구들은 귀찮다고 하지만, A군은 그런 친구들이 부럽습니다. 털 나는 약이라도 바르고 싶은 심정입니다.

 


턱수염은 왜 나는가?


도대체 수염은 왜 나는 것일까요? 많은 남자들은 수염이 정말 거추장스럽다고 불평합니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러도 괜찮은 극소수의 직업(록가수나 체 게바라 추종자, 해적 등)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남성들은 매일 면도를 해야 합니다. 보통의 남성이라면 양치는 못하더라도 면도는 해야 하죠.


턱수염이 나는 이유는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일단 턱수염에는 특별한 생물학적 기능이 없습니다. 여성이나 어린이는 턱수염이 없지만, 이로 인해 손해보는 것이 없기 때문이죠. 사실 털 없는 여성이 털 많은 남성에 비해서 겪어야 하는 의학적인 손해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덥수룩한 털이 주는 불리함이 훨씬 많습니다. 일단 풍성한 체모는 기생충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합니다. 체모에 서식하는 이는 발진티푸스의 매개체입니다. 발진티푸스는 천연두, 페스트와 함께 인류에게 가장 큰 해를 끼친 3대 전염병 중 하나입니다. 남성은 이러한 엄청난 불리함을 감수하면서 체모, 특히 수염을 유지해 왔습니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요? 
 

A. Raffe 및 E. Leroux (unknown). 발진티푸스에 걸려 길에 쓰러진 병사들. 이는 수백만 년 동안 인류의 털에 기생하며 발진티푸스를 유발했다. 그에 비해 턱수염을 비롯한 체모가 인류에게 주는 적응상의 이득은 불분명하다. - wellcomeimages 제공
A. Raffe 및 E. Leroux (unknown). 발진티푸스에 걸려 길에 쓰러진 병사들. 이는 수백만 년 동안 인류의 털에 기생하며 발진티푸스를 유발했다. 그에 비해 턱수염을 비롯한 체모가 인류에게 주는 적응상의 이득은 불분명하다. - wellcomeimages 제공

남성성의 상징?


“많은 종에서 턱수염은 양성 모두에게 나타난다. 그러나 일부 종에서는 수컷에게만 턱수염이 나기도 하고, 최소한 암컷보다 수컷에게서 턱수염이 더 잘 발달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남성의 턱수염은 장식의 목적으로 성 선택에 의해서 획득된 형질이다.”
찰스 다윈, 1871년.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


다윈은 여성의 몸에 털이 적게 나는 이유에 대해서도 성 선택을 들어 설명한 바 있습니다. 여성은 턱수염이 많이 나는 남성을 좋아하므로, 턱수염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던 것이죠. 그러나 이는 정말 주장하기는 쉽고 증명하기는 어려운 설명입니다. 이에 대해서 나이젤 바버(Niegel Barber)는 남성의 수염이 성숙성 및 사회적 지배력에 대한 신호 기능을 가진다고 주장했습니다(공교롭게도 연구자의 이름이 이발사, 바버(Barber)입니다). 그는 과거 인류에게 면도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수염도 많았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여성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나이 많은 남성을 선호하기 때문에, 수염이 많은 남성을 매력적으로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럴 듯 하지만 근거는 약합니다.


A씨가 걱정하는 것처럼 수염이 없으면 덜 매력적으로 보일까요?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몇몇 연구에서는 수염이 많이 난 남성이 더 매력적이라고 조사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연구에서는 오히려 수염이 없는 남성이 더 매력적으로 조사되기도 했죠. 굳이 연구 결과를 들먹일 필요 없이 주변 여성에게 물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제각각입니다.

 


수염은 과연 매력적인가?


수염이 많이 난 남성을 좋아하는 여성을 생각해봅시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여성보다 턱이 더 큰 경향이 있습니다. 남성 호르몬 때문이죠. 따라서 턱수염이 턱을 더 크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수염을 기르면 인상이 ‘강건해’집니다. 일종의 생물학적 ‘턱 뽕’이라는 것이죠. 반대로 매끈한 턱을 좋아하는 여성도 있습니다. 안데스 지역 원주민 남성은 수염이 별로 없습니다. 기생충 감염의 위험이 높은 지역이므로 턱수염이 없어졌다는 것이죠. 매끈한 피부는 기생충이 없다는, 즉 건강의 징표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곱상한’ 얼굴에는 수염이 없죠.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잘해봐야 사후 해석에 불과합니다. 정확한 결론을 내려면 수염남과 매끈남의 번식 적합도, 즉 자식을 얼마나 많이 낳아 키우는지를 비교해야 합니다. 그런 연구를 누가 할리도 없겠지만, 상식적으로 수염의 풍성함에 따라서 번식 적합도의 큰 차이가 있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남성과 여성의 체모 분포. 남성은 여성에 비해 체모가 많다. 특히 겉으로 잘 드러나는 턱수염에 대해서, 매력 신호로 작용하다는 진화적 설명이 있다. 그러나 이는 남녀 공히 체모가 줄어들고 있는 인류의 전반적인 경향을 잘 설명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정말 대다수의 여성들이 턱수염을 가진 남성을 좋아하는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 wikipedia 제공
남성과 여성의 체모 분포. 남성은 여성에 비해 체모가 많다. 특히 겉으로 잘 드러나는 턱수염에 대해서, 매력 신호로 작용하다는 진화적 설명이 있다. 그러나 이는 남녀 공히 체모가 줄어들고 있는 인류의 전반적인 경향을 잘 설명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정말 대다수의 여성들이 턱수염을 가진 남성을 좋아하는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 wikipedia 제공

유행과 턱수염


혹시 턱수염이 가지는 매력도는 단순히 문화적 유행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고대 이집트 평민들은 수염을 깨끗이 해야 했지만, 귀족들은 수염을 길렀다고 합니다. 반면에 로마의 황제는 턱수염을 깨끗이 면도했었죠. 하지만 기원전 2세기경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수염을 기르면서 유행이 바뀝니다. 그리스 철학자를 존경한 황제는, 수염도 따라 길렀습니다. 로마인들도 덥수룩한 황제를 보고 수염을 길렀죠.


‘턱수염과 남자들(Of Beards and Men)’이라는 책에서,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올드스톤- 무어(Christopher Oldstone-Moore)는 턱수염이 단지 유행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프랑스라는 같은 문화권 내에서도, 프랑수아 1세 때는 턱수염을 기르는 것이, 루이 13세때는 턱수염을 밀어버리는 것이 인기였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현대 사회에서는 말끔한 얼굴이 고귀한 사회적 지위를, 턱수염이 수북한 얼굴은 독립적인 태도를 상징한다고 주장합니다. 생물학적 남성성을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자의적인 문화적 상징에 더 가깝다는 것이죠. 
 

턱수염이 수북한 혁명가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올드스톤-무어는 턱수염이 문화적 코드를 담은 유행이라고 주장한다. 현대 사회에서 젊은 사람의 턱수염은 흔히 저항과 독립을 상징한다. - Alberto Korda (1961) 제공
턱수염이 수북한 혁명가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올드스톤-무어는 턱수염이 문화적 코드를 담은 유행이라고 주장한다. 현대 사회에서 젊은 사람의 턱수염은 흔히 저항과 독립을 상징한다. - Alberto Korda (1961) 제공

반항적 유행을 따르는 젊은이들은 거친 모험가처럼 턱수염을 기르고 싶어합니다. 그러니 수염이 없는 A씨의 고민도 클 지 모릅니다. 하지만 수염 자체는 생물학적 남성성과 관련성이 적습니다. 사실 생물학적 남성성의 상징은, 대머리입니다. 테스토스테론이 많아지면 ‘남성형’ 대머리가 되기 때문이죠. 물론 수염을 좋아하는 여성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여성도 아주 많으니 안심해도 좋습니다.  
 

찰스 다윈은 턱수염이 여성에게 선호되는 매력의 신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견이 많다. 게다가 체모가 많은 사람은 대머리가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머리 숱은 턱수염보다 더 확실한 (부정적) 매력 요인이다. - wikimedia 제공
찰스 다윈은 턱수염이 여성에게 선호되는 매력의 신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견이 많다. 게다가 체모가 많은 사람은 대머리가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머리 숱은 턱수염보다 더 확실한 (부정적) 매력 요인이다. - wikimedia 제공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의.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여성의 진화’(2017)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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