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아니요. 저는 뽀뽀하기 싫어요!”

2017년 04월 09일 10:00

잠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미국에 거주중이고 성폭력 피해자 지원 센터(Rape Crisis Center)를 기웃거리고 있다. 센터에서는 초중고학생들이나 성인들을 위한 인식 개선 교육도 활발하게 진행중인데 그 중 아이들을 대상으로 ‘몸의 주권’에 관한 교육을 하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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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내 몸은 온전히 나의 것이므로 이 몸을 어떻게 쓸지는 나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일례로 부모님이 “누구누구 삼촌/이모에게 뽀뽀해주렴/안아주렴”이라고 했을 때 싫다면 “아니요. 저는 뽀뽀하기/안기 싫어요. 그냥 여기서 인사할래요”라고 분명히 의사표현을 하게끔 돕는 것이다. 즉 어렸을 때부터 ‘내 몸의 사용권’을 분명히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똑같이 부모에게는 자녀에게서 몸의 사용권을 빼앗지 말 것을 가르친다. 예컨대 누구한테 가서 뽀뽀해라 안아줘라 같은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말 것, 또 아이가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면 싫다는 의사표현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돕고 자기 몸에 대한 아이의 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을 가르친다.


이렇게 서로서로 몸의 주권을 존중해주는 문화가 정착되면 '성관계'에서도 자연스럽게 동의의 중요성을 알게 될 거라는 게 교육의 한 가지 목표이다. 실제로 10대에게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성폭력의 형태가 ‘이 정도 사귀었으면 당연히 성관계를 가져야지’라는 압박이라고 한다. 남자친구나 주변 친구들의 압력에 의해 자기의 의사에 반하는 관계를 억지로 갖는 일이 빈번하다고.


따라서 어렸을 때부터 주변의 압력과 상관 없이 내 몸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 결정하는 힘을 기르는 것, 또 내 몸은 온전히 내가 통제하듯 타인의 몸에 대한 통제권 역시 온전히 타인에게 있음을 존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교육의 목표이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의 교육을 통해 성폭력을 얼마나 예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들도 활발히 진행중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다 자기만의 '바운더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게 존중되지 않는 게 사실 이상한 일인 듯 하다. 침범을 허락해야 좋은 사람이라고 여겨지고 불편함을 솔직히 이야기하면 까칠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등.


예컨대 누가 악수나 하이파이브를 거부해도 나를 싫어하나? 또는 '왤케 까칠해'라고 생각하기보다 "저 사람의 바운더리가 그렇구나"하고 넘어가면 되는 일이 아닐까? 나의 바운더리도 존중되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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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해서 높은 친밀함을 전제로 하는 ‘연인’ 관계에 있어서도 사람마다 원하는 친밀함의 정도가 다 다르며, 원하는만큼의 친밀함을 못 가져도 문제지만 원하는 것 ‘이상’으로 스스로의 기준에서 친밀함이 도가 지나쳐도 관계의 질이 낮고 헤어질 가능성이 높은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가 있었다(Frost & Forrester, 2013).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무조건 끈적끈적하고 서로 거리낄 게 아무 것도 없는 상태가 되는 게 항상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마다 각자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원하는 ‘적정 선’ 또는 지켜지길 원하는 바운더리가 분명히 있고 이게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미국인들이 많이 하는 '허그'가 좀 불편한 편이다. 그런데 얼마 전 센터 스탭과 이야기 하다가 스탭이 허그를 원하냐고 묻길래 미안하지만 사실 허그는 좀 불편하다고 답한 적이 있다. 그러자 스탭은 “미안하긴 That's why we ask!”라고 해주었다. 내 몸에 대한 나의 의사를 흔쾌히 존중해주는 모습에서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상대의 바운더리를 묻고 이를 존중하는 것이 나에게도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막상 거절당하면 언짢게 느껴질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히 옳은 방향임은 분명하다. 서로의 바운더리를 존중할 수 있게 되도록 함께 노력해보자.

 


※ 참고문헌
Frost, D. M., & Forrester, C. (2013). Closeness Discrepancies in Romantic Relationships Implications for Relational Well-Being, Stability, and Mental Health.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39, 456-469.

 

※ 필자소개
지뇽뇽. 연세대에서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적인 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고하는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jinpark.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과학동아에 인기리 연재했던 심리학 이야기를 동아사이언스에 새롭게 연재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한 주를 건강하게 보내는 심리학을 다룬 <심리학 일주일>을 썼다.

 

시공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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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작소개
과학동아와 dongascience.com의 인기 작가, ‘지뇽뇽’의 신작 ‘내 마음을 부탁해’가 출간됐습니다. "나를 아끼고 돌봐야지, 그렇고 말고.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하는거야?" 그 심리학적 해답을 함께 알아가는 책입니다. 다친 내 마음을 돌보고 단련하게 도와줄 다양한 실천코너를 만나보실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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