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시선 60 - 끝] ‘불면’을 잠재우는 따듯한 말

2017년 04월 08일 18:00

불면증까지는 아니더라도 불면의 긴 시간을 이리 어르고 저리 달래며 서툰 손으로 불판 위의 삼겹살을 뒤집듯 뒤척여본 사람은 안다. 눈을 감아도 오도카니 떠오르는 또렷한 생각이나 불안한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잠을 내쫓는 선명한 경험 말이다. 불면은 달고나 용기 속의 설탕처럼 은근히 녹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베이킹파우더 같은 소량의 어떤 생각의 매개가 더해지면 일순간 부풀어 올라 마치 들불처럼 저절로 꺼질 때까지는 물러나지 않는다. 그렇듯 ‘베이킹파우더 같은 생각’이 언제나 불면의 발단이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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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그 느닷없고 집요한 생각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강력하단 말인가. 그 골똘한 생각은 불면의 당사자마다 다르겠지만, 그것의 핵심은 ‘생각’ 자체가 아니라, 실제의 질량을 한껏 부풀어 오르게 하는 베이킹파우더 같은 성질의 심리작용 때문이지 않을까. 그만그만한 생각의 내용이 남들이라면 잠 못 이룰 만하지는 않건만, 또는 잠이 끼어들지 못하게 하는 그 생각을 여러 잡음들이 공존하는 한낮에 했더라면 밤을 지새울 만큼 골똘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고요한 한밤의 시간은 무언가에 집중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학습이든 연구든 창작이든 한밤에 몰두하기가 좋아서인지 많은 이들은 적막할 정도로 고요한 그 시간에 집중해서 활동한다. 또한 어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많은 탁월한 인재들이 올빼미형이었다는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듯하다. 더구나 한밤이나 이른 새벽에는 누구의, 어떠한 간섭도 없거나 적을 테니, 졸음과 피로를 이겨낼 기운과 의지만 있다면 그 시간은 오롯이 혼자만의 성취를 위해 몰두하기에 가장 적합할 듯하다.


하지만 원하지도 않는 불면을 지배하는, 잡다하고 골똘한 생각의 문제점은 당사자의 자발적 집중이 아니라는 것이다. 몸은 피곤하고 잠은 부족해서 옅은 현기증마저 위성처럼 머리 주변을 돌고 있는데 정신은 점점 더 명료해져 잠들지 못할 때면 한밤의 시간이 원망스러울 정도니 말이다. 또한, 떨칠 수 없는 생각은 질 낮은 지우개로 박박 문대도 지워지지 않는 연필 자국처럼 장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 바람에 이부자리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눅눅한 잠옷만 내내 구기게 되는 것이 불면의 양태일 것이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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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반갑지 않은 불청객인 불면은 왜 찾아오는 것일까. 낮 시간에 활동하는 일반인들은 피곤한 하루의 생활을 마무리하려고 잠자리에 든다. 그런데 이삼십 분 안에 잠들지 못하면 자칫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한다. 내 경우를 돌아보면, 온몸에 피로감이 가득한 상태에서도 일이십 분만 편히 눕거나 엎드려 있으면 피로가 다소 풀린다. 바로 그때가 갈림길이다. 약간의 충전이 되었다는 것은 당장 잠들지 않아도 될 만큼 정신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소등까지 한 고요한 환경에서 당일 낮의 사건이나 이튿날 닥칠 일이 떠오르면 그 생각은 촉매가 되어서 더욱 전개돼가는 것이다.


그런 불면과의 절교나 탈출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심한 불면증을 겪고 있는 건 아니라면, 정신의학적 조언도 있고 독서, 운동, 샤워, 음주 등의 개인마다 경험적 노하우도 있겠지만, 누군가가 이미 불면과 독대하고 있다면 깊어지는 걱정이나 파고드는 생각을 내려놓거나 떨쳐내는 일이 우선일 테다. 혼자서 띄워놓은 여러 개의 연들처럼, 바람에 밀려 여러 가닥의 생각의 연줄이 얽혀 있으니 한 줄씩 되감으며 얽힌 방향의 역순으로 한 가닥씩 푸는 수밖에 없다. 당장 좋기야 가위로 싹둑 잘라버리면 그만이지만 그러려고 밤새 노력하면 할수록 그 가위질은 불가능한 것임을 확인할 뿐이니 말이다.


불면의 밤을 보내본 사람은 안다.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복잡하게 얽힌 생각과 걱정이 정돈되기는커녕 당사자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자꾸만 잡아당겨 더욱 헝클어뜨리고 만다는 것을. 그럼, 불면의 밤하늘에 얽힌 질긴 생각들을 잘 정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의 집요한 생각을 객관화시키는 일이 아닐까. 자신에게 찰싹 달라붙은 생각과 걱정을 한 발 물러나서 바라보고 친구에게 조언하듯 스스로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일이 아닐까. “네가 그렇게 고민이 깊으니 잘될 거야”라고. 세상의 모든 자장가는 어머니의 체온 같은 ‘말’에서 시작됐으니 말이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주

뉴스를 보다보면 무엇인가를 분석해서 설명을 해주는 내용이 대다수입니다. 그래야 원인을 정확하게 찾고,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고개를 들어 사물을 그대로 보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대상을 온전히 바라보면 분석한 내용을 종합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생활의 시선’을 매주 연재한 이유입니다. 천천히 읽으면서 감정의 움직임을 느껴보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제 윤병무 시인의 [생활의 시선]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윤병무 시인의 따뜻한 시선과 색다른 관점을 접할 수 있는 또 다른 시리즈로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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