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시선 59] 뜻대로 안 되는 꿈속의 드라마

2017년 04월 01일 18:00

길목에 들어서니 먼 곳에 계곡이 보였다. 언젠가 가본 그곳엔 물이 깊어 짙푸른 터키옥 색의 계곡물이 고여 흐르는 커다란 웅덩이가 있었다. 나는 그곳을 향해 막 걸음을 떼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불러 세웠다. 십대 소녀였다. 표정으로 보아 나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처음 보는 소녀였지만 낯설지는 않았다. 명랑해 보이는 소녀는 해맑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같이 가요.”

길동무하자는 소녀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마냥 활짝 웃고 있었다.

 

“얘야, 돌아가렴. 나는 마음이 없단다.”

그러고는 소녀의 이름을 물었다.

 

“게오르그 짐 탠초.”

동양 소녀는 우리말로 자신의 서양식 이름을 또렷이 대답했다. 명랑한 그 소녀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하려 했을까.

 

“봄볕 같은 표정을 오래 유지하길 바란다. 그러려면 너와 대비되는 나와는 거리를 둬야 해. 안녕.”

뭐 이런 말을 건네려 하지 않았을까. 나는 정말 그렇게 말했을 것 같은 강한 느낌이 들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말했는지, 생각만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게오르그 짐 탠초! 소녀의 경쾌한 목소리를 듣고 나는 곧 잠에서 깨어버렸으니.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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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호접몽(胡蝶夢)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가끔 현실만큼 생생한 꿈을 꾸다가 그 한복판에서 깨어나곤 한다. 그리고 꿈속에서의 자신의 캐릭터가 현실과 달라 잠에서 깨어나면 스스로 놀라곤 한다. 또는 꿈속에 등장한 과장된 자아를 제어하지 못해 꿈속에서도 불안해한다. 오늘 아침의 꿈에서 나는 왜 소녀가 제안한 동행을 거부했을까. 미성년 소녀였기에 공연히 부담스러웠을까. 장년 여성이었거나 주름 깊은 노파였다면 선의를 받아들여 길동무했을까. 역시 알 수 없다. 우리가 경험해서 알다시피 모든 꿈은 꿈꾸는 이의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될뿐더러, 꿈의 연출가는 현실의 자아가 아니라, 꿈꾸는 이의 ‘무의식’이니 말이다.


잠 속의 드라마, 꿈. 그 플롯을 꿈 바깥의 현실에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꿈이 미지의 미래와 같아서인지, 꿈은 예지(豫知), 즉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보여주는 암시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여러 갈래로 해석되는 길몽과 흉몽도 있지만, 그 대표적인 꿈은 ‘태몽’일 테다. 태몽은 곧 태어날 아기의 가까운 가족이 꾸기도 한다지만, 보통은 그 아기의 엄마나 아빠가 평소와는 다른 생경한 꿈을 꾸고 그 의미를 부여하는 만큼 평생 동안 기억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은 태어날 아기의 운명을 그 꿈이 암시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태어날(난) 아기가 성장할 미래의 시간은 아직 당도하지 않았고, 아기가 훗날에 경험할 무수한 일들을 미리 알 수도 없기에 그 아기가 살아갈 인생은 예견할 수 없다. 제 아무리 알파고라도 상대 기사가 바둑돌을 놓은 이후에야 다음 수를 계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누적된 과거의 집합체인 지금의 선명하고 결정적인 현실이 닥쳐야 비로소 가능하다. 마치 방치된 태블릿 PC의 발견과 그 숨김없는 보도에서 촉발된 촛불 시위가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과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까지 이끌어냄으로써 피청구인은 물론이거니와 많은 정치 관계자의 인생이 연쇄적으로 달라졌듯이 말이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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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치 관계자들의 태몽은 무엇이었을까. 태블릿 PC가 발견된 날에 그들이 꾼 꿈의 드라마는 희극이었을까 비극이었을까. 웃지 못할 희극이자, 역사에 남을 이 시대의 비극인 우리 사회의 현실은 말도 안 되는 드라마보다 더 막장을 보여줬으니 개꿈만큼이나 황당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이런 현실이 삼류 소설 같은 꿈처럼 느껴지는지, 탄핵의 당사자는 탄핵 소추가 발의되자 일관되게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고 보면 무소불위한 권력자의 현실도 만인이 매일 밤 꾸는 꿈처럼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는 것이다. 반면에, 마음에 촛불을 하나씩 켜 든 국민 다수의 현실적 소망은 탄핵 당사자의 한때 말처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 마침내 의지대로 이루어지는가보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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