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장미’ 나올까 전자 부품이 된 식물

2017.04.17 09:00

짧은 기간 붉은 빛을 발하며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내보이고는 시들어버리는 장미는, 우리에게 그저 아름다움을 뽐내는 존재였다. 하지만 최근 이런 장미를 전자 회로로 만들어버린 괴짜 과학자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장미 안에 전도성 고분자 물질을 주입해 에너지를 저장하고 충전할 수 있는 ‘장미전지’를 만들었다.

 

성준호 제공
성준호 제공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그녀에게 안겨 주고파.’ 기자가 태어나기도 전 우리나라에는 이런 노래가 유행했다. 먼 미래에는 이 노래가 흘러나오는 빨간 장미를 선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장미로 만든 전자 소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스웨덴 린쾨핑대 과학기술학과 마그누스 베르그렌 교수팀은 장미로 순간적인 고출력을 낼 수 있는 ‘슈퍼 커패시터(축전기)’를 만들었다. 축전기는 전하를 저장하는 소자로, 전자 회로를 구성하는 세 가지 기본 소자 중 하나다.

 


전기전도물질, 장미의 물관 타고 퍼져


장미 안에서 두 금속판의 역할을 하는 건 연구팀이 주입한 전도성 고분자 물질 ‘ETE-S’다. 연구팀은 뿌리를 통해 물질을 주입시켰다. ETE-S는 장미의 물관을 통해 줄기와 잎, 꽃까지 쭉 뻗어 나갔다. 하루가 지난 뒤, 장미의 물관은 ETE-S로 가득 채워졌고, 기다란 전도선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식물의 줄기 단면을 보면 여러 개의 물관이 조금씩 떨어져서 위치해 있다(아래 사진 참조). 즉, 전도선 여러 개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셈이다. 남기태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전도선이 축전기의 금속판과 같은 역할을 해서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장미 안에 커패시터와 저항을 구현하는 데에 성공해 기본적인 회로를 구성했다. 연구팀은 장미의 잎을 이용해 저항 두 개와 축전기 두 개로 이뤄진 간단한 회로를 만들었고, 축전기 사이에서 발생하는 전압 차가 한 시간 뒤, 처음의 60%로 줄어든 것을 확인했다(doi:10.1073/pnas.1616456114). 남 교수는 “만약 인덕터까지 만들 수 있다면 좀 더 복잡한 전자 회로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회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스위치를 켜고 끌 수 있다는 의미다. 예컨대 일정 온도 이상이 되면 향을 내뿜는 장미나 노래가 나오는 장미도 제작할 수 있다.

 

전도성 고분자 물질인 ‘ETE-S’가 장미 곳곳에 퍼져있다. 사진은 줄기의 단면으로, 까만색으로 보이는 부분이 ETE-S가 가득찬 곳이다. 물관들이 축전기의 금속판 역할을 해, 전하를 저장한다. - Magnus Berggren 제공
전도성 고분자 물질인 ‘ETE-S’가 장미 곳곳에 퍼져있다. 사진은 줄기의 단면으로, 까만색으로 보이는 부분이 ETE-S가 가득찬 곳이다. 물관들이 축전기의 금속판 역할을 해, 전하를 저장한다. - Magnus Berggren 제공

반년 전 시작된 식물 연구의 패러다임 변화


사실 식물을 이용해 에너지를 얻으려는 시도는 이전부터 많았다. 인공광합성이 대표적이다. 식물의 광합성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단백질을 분리해 반도체 입자와 결합시키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전혀 다르다. 식물이 가진 고유한 생체반응을 이용해, 장미 자체를 전기 소자로 만들었다.


이번 연구에서 모든 기관에 ETE-S를 주입할 수 있었던 것은 식물의 모세관 현상 덕분이다. 작은 분자로만 존재하는 ETE-S가 장미 안에서 고분자로 결합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내부에서 일어나는 생화학 반응 덕분이었다.


이런 ‘전기 식물(e-Plant)’이 처음 등장한 것은 불과 반년 전이다. 지난해 10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화학공학과 마이클 스트라노 교수팀은 폭탄이나 지뢰에 주로 쓰이는 질화방향족을 감지하는 시금치를 개발해 ‘네이처 머티리얼스’에 발표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식물의 뿌리를 이용해 단일벽 탄소나노튜브(SWCNT) 입자를 주입했다. 이 입자는 적외선 파장을 내뿜는데, 질화방향족과 결합하면 파장이 변하기 때문에 근적외선 카메라를 이용해 감지할 수 있다.


질화방향족이 포함된 지하수가 해당 식물을 통과하게 되면 10분 안에 잎에서 형광 빛이 나게 되고, 관찰 카메라가 스마트폰으로 바로 정보를 전송한다. 살아있는 식물이 실시간으로 토양 유해물질을 감시하는 센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전에도 박테리아를 이용하거나, 유전자를 조작해 유해 물질을 감지하는 바이오센서는 있었지만(과학동아 2016년 5월호 특집기사 참조), 확인하는데 수 시간에서 하루가 걸렸다.

 


전광판 대신 빛나는 축구장 잔디 나올까


식물을 이용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술에도 단점은 있다. 효율이 낮다. 태양전지만 해도 에너지의 변환 효율이 20%에 달하는데, 식물의 광합성은 고작 4%대다. 다섯 배나 차이가 난다. 이런 이유로 국내에서는 연구를 중단한 기관도 여럿이다.


하지만 대다수 연구자들이 식물 연구를 놓지 못하고 있는 건 무한한 가능성 때문이다. 남 교수는 “우리가 아직 알아내지 못했거나, 혹은 알고 있어도 아직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한 식물의 생체 반응이 무궁무진하다”며 “유전자 가위 기술까지 더해진다면 우리의 상상력으로는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가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장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센서 분야다. 방 안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식물이 감지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생체 반응을 늘리거나, 습도가 높아지면 물을 많이 흡수하는 생체반응이 활발해지도록 할 수 있다. 남 교수는 “상상력을 더해보자면 축구장의 잔디가 점수에 따라 빛을 내거나, 이긴 팀의 잔디가 형광 빛을 낼 수도 있다.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제 막 시작된 연구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연구 결과들이 더 나올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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