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자 문화산책] 인형뽑기 기계와 ‘놀이하는 인간’

2017년 03월 26일 18:00

요즘 인형뽑기 놀이가 다시 유행합니다. 동네 편의점이나 가게 앞 인형뽑기 기계에 옹기종기 모여 혼신의 집중력으로 크레인을 미세 조정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경우 집게 끝에 불안하게 걸려 있던 인형은 출구 앞에서 툭 떨어지고 말지요. 우리의 노오력이 부족한 때문일까요?

 

얼마전 대전에서 2시간 만에 인형뽑기 기계에서 인형 200여 개를 싹쓸이해 간 인형뽑기 달인이 고발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는 간단한 레버 조작으로 집게의 잡는 힘을 약하게 만든 설정을 풀어 인형을 많이 뽑을 수 있었다고 경찰에 진술했습니다. 조이스틱을 4시 방향으로 4번 '탁탁탁' 치면 기계의 설정이 풀린다는 것이죠. 업주 역시 "30번에 1번 정도 인형을 뽑을 수 있게 설정해 놓았다"고 증언했다고 알려져 논란을 부채질했습니다.

 

채널A 화면 캡처 제공
채널A 화면 캡처

이 인형뽑기 달인은 기계를 부수고 인형을 훔쳐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절도죄를 적용할 수 있을 지 경찰도 고민이라고 합니다.

 

● 게임의 재미는 운? 실력?

 

여러가지로 흥미로운 사건입니다만, 아마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노력과 연습 (그리고 막대한 금전적 투자)로 성공률을 높일 수 있는 놀이인 줄 알았던 인형뽑기가 사실은 업주의 사전 설정에 의해 결과가 좌우되는 확률과 운의 게임으로 변질되었다는 점일 겁니다. 사람들이 분노할 수 밖에 없죠.

 

노력과 운의 조합은 게임의 재미를 결정하는 대표적 요소입니다. 그래서 게임을 크게 '기술'이 중요한 게임 (game of skill)과 '운'이 중요한 게임 (game of chance)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스포츠나 바둑, 장기 같은 게임은 노력으로 갈고 닦은 기술이 승패를 좌우합니다. 반면 슬롯 머신이나 룰렛, 주사위 놀이는 거의 전적으로 운에 의존합니다. (순전히 운에 의존하는 결과를 놓고 돈을 걸 때 우리는 그걸 '사행성 게임'이라고 부릅니다.)

 

보통 운이 중요한 놀이에서 운은 그야말로 하늘의 뜻에 달린 문제입니다. 공중에 던진 윷 중 몇개가 뒤집어질지, 총알이 한발만 들어있는 권총의 약실이 어느 칸에서 멈출지에 사람이 개입하긴 힘듭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놀이는 디지털 게임입니다. 게임에도 수많은 운의 요소가 개입합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에서 보스 몹을 잡았을 때 귀하고 좋은 '레어템'이 떨어질 확률, 리니지에서 8번째 강화가 성공할 확률, 쿠키런 선물상자를 열었을 때 그저 그런 코인이 아니라 보물이 들어있을 확률 등등... 끝이 없습니다.

 

인기 게임

인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선 실력과 운의 도움이 모두 필요합니다. - 라이엇게임즈 제공

● 게임 개발자는 게임 세계의 신

 

게임이 과거의 다른 놀이와 다른 점은 이런 '운' 자체가 모두 미리 설계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게임 회사는 게임의 재미를 위해, 그리고 사람들이 더 재미있게 더 많이 게임을 하도록 하기 위해 이 '운'의 확률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게임 개발자가 게임 세계의 신이 되는 것입니다.

 

게임 속에서 어려운 퀘스트를 수행하다 예상치 않게 떨어진 좋은 무기를 '득템'해 미션을 완수할 때, 테트리스 블록이 천정에 닿기 직전 긴 직사각형 블록이 나와 4줄을 한꺼번에 없애고 위기를 넘길 때 우리는 쾌감을 느낍니다. 게임 속 행운이 가져다 주는 뜻하지 않은 보상에 우리는 더욱 게임에 빠집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을 창시한 스키너 박사는 보상과 처벌로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고, 특히 보상이 예측할 수 없게 불규칙하게 일어날 때 효과가 더 크다고 보았습니다.

 

심리학자 스키너 박사는 쥐가 보상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하는 유명한 실험을 고안했습니다. - SimplyPsychology 제공
심리학자 스키너 박사는 쥐가 보상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하는 유명한 실험을 고안했습니다. - SimplyPsychology 제공

행운의 확률을 남발해 게임을 시시하게 만들지도 않고, 행운을 지나치게 제한해 어려운 게임에 재미를 못 느껴 사람들이 떠나지도 않게 만드는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상치 않은 순간에 기대 이상의 성공을 안겨 주어 사용자의 뇌에서 도파민이 쏟아져 나오게 해야 합니다.

 

● 게임 기업과 게이머의 밀당 게임

 

현대의 게임 기업들은 이런 일에 매우 능숙합니다. 사람들이 처음 광고를 보고 앱을 설치하는 순간부터 사용자를 추적, 게임의 어느 단계에서 이탈하는지, 어떤 순간을 계기로 지갑을 열어 아이템을 사기 시작하는지 등을 파악합니다.

 

그리고 게임을 최대한 많이 하도록, 게임에서 최대한 많은 돈을 쓰게 하도록 게이머의 '운'을 조정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이른바 '확률형 아이템'은 이미 문제가 되고 있지요. 확률형 아이템이란 아이템을 사서 열어보기 전까지는 그 가치를 알 수 없는 아이템을 말합니다. 지불한 돈의 몇 배가 넘는 가치를 지닌 대박 아이템일 수도 있지만, 굳이 돈 주고 살 필요는 없는 그저 그런 아이템일 수도 있습니다. 행운을 기대하며 확률형 아이템을 사는 사람들은 게임 기업의 주요 수익원이 되고 있습니다. (업계 전문 용어로 '과금러'라고 합니다.)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 기업의 주요 수익원이 되고 있습니다. - 레드사하라스튜디오 제공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 기업의 주요 수익원이 되고 있습니다. - 레드사하라스튜디오 제공

하지만 이제 게이머들도 게임 세계 안 자신을 둘러싼 '설계된 확률'에 대해, 특히 그 확률이 게이머의 재미보다 게임사의 이익을 위해 설계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많이 의식하고 있습니다. 확률형 아이템은 게이머들 사이에서 집중적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게임 관련 인터넷 게시판에는 현질을 최대화하려는 게임사들을 비난하는 글들이 가득합니다. (심지어 확률형 아이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게임사가 아이템 획득 확률을 공개하게 하는 법률을 추진하는 의원도 있습니다.)   

 

저도 '캔디 크러시 사가'를 하다 그런 느낌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하다보면 유난히 어려워 몇번이고 연속해 실패하는 스테이지가 중간중간 나옵니다. 아깝게 실패하고, 하트는 떨어지고, 그때 '보석을 충전해 게임을 계속 하라'는 달콤한 유혹의 메시지가 나옵니다.

 

그래도 계속 밀고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꼭 맞는 캔디 조합이 연이어 나타나며 스테이지를 깨는 때가 옵니다. 클리어했다는 성취감과 캔디들이 터져나가는 화려한 시각 효과라는 보상에 기분이 확 좋아졌다가도 마음 한편에 '아, 아무리 실패를 거듭해도 아이템을 사서 스테이지를 깰 마음은 없다고 판단해야 다음 판으로 넘겨주는 건가 보구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킹닷컴 제공
킹닷컴 제공

놀이는 실력과 운이 적절히 결과에 영향을 미칠 때 가장 재미있습니다. 꾸준한 연습으로 탁구 실력이 좋아진다고 느낄 때, 영국 프리미어 리그 프로 선수의 탁월한 플레이를 볼 때 우리는 희열을 느낍니다. 그러나 항상 강팀이 약팀을 이긴다면 재미없겠죠. 행운과 불운이 엇갈려 약팀이 역전승을 거둘 때 우리는 짜릿함을 느낍니다. (축구 공은 둥글다!) 반면 포커나 고스톱처럼 운에 의존하는 게임에서도 우리는 더 잘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상대의 패를 읽으려 노력하거나, 로또 당첨 번호의 등장 빈도를 연구하기도 합니다.) 

 

● 노력과 운의 영역 섞이면 곤란

 

중요한 것은 운의 영역과 실력의 영역이 혼동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집게의 잡는 힘을 몰래 조정해 놓은 인형뽑기 기계는 최악의 놀이 도구라 하겠습니다. 운의 영역을 실력의 영역으로 생각하게 만들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운과 실력의 영역이 뒤섞인 것은 개조된 인형뽑기 놀이뿐 아닙니다. 우리가 즐기는 사실상 모든 온라인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게임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확률은 정직한 확률일 뿐, 게임 회사의 이익을 위해 확률에 손을 대지는 않는 좋은 게임들이 많이 있습니다. 확률을 손대 사용자로 하여금 운과 실력의 영역을 혼동하게 하는 게임은 일부에 불과하리라 믿습니다.

 

많은 게이머들이 게임사들의 현금 결제 유도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게임을 떠너지 못 한 채 지속적으로 과금을 하곤 합니다.
많은 게이머들이 게임사들의 현금 결제 유도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게임을 떠나지 못 한 채 지속적으로 과금을 하곤 합니다.

어쨌든, 우리 놀이의 결과를 결정하는 행운의 확률이 사실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미리 설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보다 편안하고 객관적인 마음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의 우리는 앞 세대의 '놀이하는 인간'들과는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른 놀이를 하고 있는 듯 합니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관련기사

인기기사

댓글

댓글쓰기

지금
이기사
관련 태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