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시선 58] 여행지에서 맛집 찾기

2017년 03월 25일 18:00

나그네 旅, 갈 行이라고 쓰는 ‘여행’(旅行). 많은 이에게 여행의 의미는 진부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생활을 환기시키는 일일 테다. 진부하다는 것은 익숙하여 빤한 상태이고 일상은 그런 연속된 생활을 의미하니, 반복되는 일과 삶의 공간을 떠나 새롭고 낯선 곳으로의 이동이 곧 여행의 목적이자 즐거움일 테다. 겨울이어도 인간의 생활은 지속되고 자연의 낮밤도 반복되면서 계절의 세월은 또 흘렀다. 어느덧 대기가 바뀌어 기온이 풀리고 대지가 긴 동면에서 깨어나 잎이 나고 꽃이 피었다. 우리의 일상도 기지개를 펴고 싶은, 바야흐로 봄이다. 봄바람이 손짓하니 터전의 근교에라도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일렁이는 것은 당연할 테다.


문제는 시간과 마음과 주머니 사정이지만, 그 세 가지에 다소 여유가 있다면 우리는 지금-이곳이 아닌 데로 떠날 수 있다. 예전에 비해 요즘은 대중교통망도 잘 돼 있어서 웬만한 곳은 자가용 차 없이도 운전의 피로감 없이 어디든 갈 수 있다. 그곳이 국내의 오지든 중소 도시든 말이다. 당일치기도 나쁘지 않지만 아무래도 촉박해지기 마련이니 하루 이틀쯤은 숙박을 하며 느긋하게 여행지를 둘러보는 것이 일상과 대비된 느낌을 더해줄 것이다. 낯선 곳에서의 낯선 잠자리와 새로운 음식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주는 스트레스 없는 긴장감과 묘한 설렘을 능동적으로 즐기는 일일지도 모른다.


특히, 여행지에서 먹는 맛있는 음식은 그 여행지에 대한 흐뭇한 추억으로 남는다. 그곳이 바닷가라면 현장에서만 먹을 수 있는 신선한 참가자미 회도 좋고, 우럭 해삼 전복 등등이 한 줌씩 들어간 푸짐한 물회도 좋고, 양파 망에서 산 채로 꺼내 방금 끓는 물에 데쳐온 야들야들한 문어숙회를 달달한 초고추장이 아닌 청양고추 채와 다진 마늘과 참기름을 넣은 간장 소스에 찍어 먹는 담백한 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곳이 심심산중 아랫마을이라면 더덕구이와 녹두전과 도토리묵 무침을 안주 삼아 그 지역 양조장에서 받아온 막걸리와 함께 산행의 갈증과 피로를 풀 수 있을 테다. 또한 그곳이 물 깊은 강가 마을이라면 수제비를 넣고 끓인 살점이 도톰한 빠가사리(동자개) 매운탕이나 가마솥에서 오래 삶은 잡어 어죽이나 소금구이 민물 장어로 영양 만점의 보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윤병무 제공
윤병무 제공

하지만 값비싼 음식은 구태여 여행지가 아니더라도 여느 도시에서도 비용만 치른다면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러니 여행지에서 먹는 음식은 값싸면서도 흔치 않고 깊은 맛이 있는 게 제일일 것이다. 이를테면, 작년 봄에 남해에서 출발해 섬진강을 따라 지리산으로 가던 국도변 강가 휴게소에서 발견한 재첩국수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상호 간판도 없는 그 휴게소 길가에 주차를 하고 곧 남해를 만날 섬진강의 물결을 바라보며 대나무 툇마루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주인장이 양은쟁반에 차려온 재첩국수를 보는 순간 나는 기뻐하는 어린아이의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열무김치, 배추김치, 깍두기, 오이무침과 함께 놓인 국수 그릇에는 재첩국물 위에 잘게 자른 부추가 덮여 있었고 그 한가운데 소면 한 덩이와 한 줌의 재첩이 얹혀 있었다(사진 참조). 전국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을 6000 원짜리 국수였다. 그 시원하고 삼삼한 맛은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그날 밤 지리산 온천 숙소에서 온수를 뿌려도 뿌려도 비눗기가 지워지지 않는 연수(軟水)로 오랫동안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이튿날 상경 길에서 아침식사 할 곳을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행선지는 전북 남원. 메뉴는 갈치구이 백반이었다. 우리 부부가 앉은 자리의 넓은 밥상에 6000 원짜리 백반이 차려지는 데 걸린 시간은 (과장하면) 족히 5분은 걸렸다. 더 이상 놓을 곳이 없을 정도로 반찬 그릇들이 밥상을 채웠다(사진 참조). 입가심으로 눌은밥까지 먹고는 부른 배를 움켜쥐며 나는 간신히 일어설 수 있었다. 전날 밤, 졸음을 이겨가며 검색한 뿌듯한 보답이었다.

 

윤병무 제공
윤병무 제공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주의 깊게 살피면, 블로그든 뉴스 기사든 진짜와 가짜를 금세 구별하게 된다. 검색된 블로그나 기사 내용이 광고성 대가를 받고 올린 것인지, 안목 있는 블로거나 기자의 자발적 기록이자 추천인지는 그 글과 이미지의 성격을 보면 판단할 수 있다. 모든 글의 진정성은 문맥을 읽어보면 드러나니 말이다. 더구나 여행지의 맛집은 글쓴이의 여행 내용과 이어지기 마련이니 음식점만 독립적으로 소개한 글은 의심해볼 만하다. 만약에 검색하지 못한 채로 낯선 곳에서 배가 고프다면 차라리 아무 기사식당이든 들어가면 된다. 어디든 택시기사 분들이 이용하는 데라면 웬만큼은 가성비가 있는 곳일 테니 말이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주

뉴스를 보다보면 무엇인가를 분석해서 설명을 해주는 내용이 대다수입니다. 그래야 원인을 정확하게 찾고,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고개를 들어 사물을 그대로 보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대상을 온전히 바라보면 분석한 내용을 종합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시인의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생활의 시선’을 매주 연재합니다. 편안한 자세로 천천히 읽으면서 감정의 움직임을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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