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거버넌스, 학생-교수가 사회문제해결 주체될 수 있게 변화해야”

2017년 03월 21일 18:00

※ 편집자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과학기술 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중에는 시민들이 평소 겪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과학기술을 개발하자는 논의도 있습니다. 동아사이언스는 전문가 기고를 통해 최근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 해외 과학기술계 등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사회문제해결형 과학기술’과 이를 위한 거버넌스 정책제안을 4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

 

필자 한경희 연세대 공학교육혁신센터 교수 - 한경희 교수 제공
필자 한경희 연세대 공학교육혁신센터 교수 - 한경희 교수 제공

사회문제해결형 과학기술 거버넌스 제안 ①대학을 바꾸자

글 : 한경희 연세대 공학교육혁신센터 교수


논문을 쓰지 않아도 대학원 학위를 받을 수 있다면? 평소 관심 있던 제품을 개발하면서 학위를 받을 수 있다면 어떨까! 사회의 다양한 곳을 방문하고 문제를 발견하며 팀이 함께 해결 방안을 찾아보고 학점을 받는 이런 일들이 지금은 대학 교육과정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 무크(MOOC)를 통해 세계적 수준의 온라인 강좌를 수강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강의실에 앉아 강좌를 듣고 도서실에서 논문과 책을 읽으며 수련하듯 공부를 하고 학위를 취득하던 시대는 이제 옛 일이 되고 있다.


●‘덜 가르침’의 미덕


공학 전공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몇 해 전부터 공학설계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공대 교수와 함께 진행하는 이 수업은 전공이 다른 공과대학 학생들이 팀을 이루어 국내외 소외된 집단들이 지닌 문제를 찾아내 공학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수업이 끝날 무렵에는 팀별로 진행된 해결 방안을 모의투자대회에서 발표하여 모인 청중들에게 투자를 받도록 한다. 물론 투자를 많이 받은 팀에게 좋은 성적이 부여된다.


이 수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배운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덜 가르치는 것’의 미덕이다. 사실 이 강좌의 성격상 특정 분야의 전문성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을 덜 가르치고 팀 차원의 자발적 활동이 더 많아지도록 구성했다. 처음에는 강의 분량이 너무 줄어드는 것은 아닌가, 학생들을 너무 놀게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와 죄책감이 있었지만 인내심을 발휘했다. 의외로 결과가 좋았다. 학생들은 수업 중반이 지나기까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기 일쑤였지만 모의투자대회가 가까워지자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만든 제품 중 일부는 아직 조악하거나 어설프기 짝이 없다. 하지만 학생들의 아이디어는 사실 눈여겨볼 만한 것이 많다. 이 수업에서 자신의 재능과 흥미를 발견한 한 학생은 아예 창업으로 진로를 바꾸기도 했다. 창업에서 기대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지금은 대기업에 다니고 있지만 언젠가 새로운 도전을 시도할 것임은 분명하다. 이것이 나의 두 번째 깨달음이다. 학생들은 지식을 전달받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야 한다고 느낄 때, 그 배움이 의미 있다고 느낄 때 비로소 배운다. 

 

 

2016년 연세대 창의전시회에서 학생들이 설계한 작품을 시연하고 있는 모습. - 한경희 교수 제공
2016년 연세대 창의전시회에서 학생들이 설계한 작품을 시연하고 있는 모습. - 한경희 교수 제공

●대학 구조개혁, 염두에 둬야 할 3가지


대학이 변하고 있다. 아직 그 변화의 방향이 명확한 것은 아니지만 정부 조직이 바뀌는 전환기임을 감안할 때, 앞으로 이어질 대학 구조 개혁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에서 현재 대학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요한 도전들이 고려돼야 할 것이다.


첫째, 대학은 어디서나, 필요할 때 배울 수 있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결합된 개방형 학습 플랫폼으로 확장돼야 하며 이에 대한 사회적 지지와 지원이 필요하다. 지금 대학에선 교수자, 학습자라는 전통적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변하고 있다. 현장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강좌의 활성화는 물론이고 앞서 소개했듯이, 학생이 스스로 문제 발굴부터 해결까지의 과정을 경험하는 교육 과정이 증가하고 있다. 다른 한편, 공부에는 때가 있다고 하지만 ‘때’를 잘 지낸 어른들조차 새롭게 학습의 기회를 모색하는 일이 많아져 평생교육이 미래 대학의 주요 임무가 되리라는 예측이 많다. 


둘째, 대학 거버넌스 개혁의 목적은 학생과 교수 그 자체가 혁신과 창조의 장소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이들을 산업발전의 기능적 요소가 아닌 통합적 주체로 인식해야 한다. 학생들이 관심 분야의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전공 분야의 역량만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 협력에 기반한 실제적 역량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 융합교육, 현장경험 기반 교육의 확대와 학점제도의 유연한 적용 등이 필요하다. 관건은 대학평가를 지렛대로 대학을 움직이려는 정부 부처의 관료적 통제 관행을 포기할 수 있는가에 있다. 대학 지원과 평가를 분리하는 중간 지대를 상상할 필요가 있다.


셋째, 대학의 과학기술교육과 연구는 지식과 정보 그 자체가 아닌 사회 혁신과 공동체에 기여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주민 중심의 도시재생을 설계하거나, 주사기 재사용 같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적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일 말이다. 소외된 집단을 위한 과학기술적 기여를 구체화하고 기술 기반의 소규모 창업과 혁신활동을 격려하는 그런 일들이 대학교육의 중심부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 혁신적 기업, 지자체, 해외 기관과의 다양한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실제적으로 운영해야 할 것이다.  


대학이 세상을 걱정하고 미래를 연구한다고 하지만 요즘은 거꾸로 대학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맞는 말이다. 독립된 국가의 기반 구축으로부터 글로벌 시대의 경쟁력 확보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시기를 지낸 한국의 대학이 21세기에도 그 생명력을 지속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대학이 사회 문제 해결의 주체로서 역량을 재구성하고 실현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필자 소개

한경희 교수 / 이화여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UC Davis에서 박사후연구원을 마치고 2003년부터 연세대 공대에서 '과학기술과 사회', '미래설계공학', '공학윤리' 등을 강의하고 있다. khan01@yonsei.ac.kr

 

[연속기고]사회문제해결형 과학기술 거버넌스 제안

①대학 / “대학 거버넌스, 학생-교수가 사회문제해결 주체될 수 있게 변화해야”
②출연연 / 산업지원에서 공공기술로…출연연이 변하고 있다

③해외사례 / 유럽에서 시작된 ‘사회에 책임지는 과학기술’
④거버넌스 제안 / “과학기술에 시민이 참여하는 새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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