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왜 이럴까?] ①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나

2017년 03월 26일 09:00

고등학교 미술 시간이었습니다. 도화지에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색종이를 오려 붙여서 작품을 만들어야 했는데, 짧은 수업 시간 내에 완성하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까지 해오라는 숙제를 받게 되었죠. 일주일은 긴 시간이었지만,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미리미리 준비하는 친구는 거의 없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학생들은, 제출 전날이 되어서야 밤을 새워서 숙제를 했죠. 점점 잘라 붙이는 색종이의 크기가 커지고, 나중에는 가위를 쓸 시간도 없어서 손을 대충 찢어서 붙이기도 했습니다. 내신에 반영되는 것도 아니니, 대충 남 하는 만큼만 하자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한 친구는 끝까지 아주 작은 조각을 오려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날때마다 조각을 하나하나 오려 붙였지만, 결국 도화지에 절반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반 정도만 완성된 작품도 아주 훌륭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미완성에 불과했죠. 저처럼 대충 종이를 찢어 붙인 작품보다도 더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미 제출 기한이 끝났는데도 그 친구는 자신의 ‘작품 활동을 지속’했다는 것입니다.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말입니다.

 


강박과 집착


종종 강박 장애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 강박이라는 말은 너무 많은 개념을 담고 있어서, 어떤 하나의 정신 증상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얼굴에 난 점이 보기 싫다면서 연신 피부를 뜯어내어 주먹만한 상처를 만드는 행동도 강박이고, 더러운 것이 묻었다면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피가 나도록 손을 씻는 행동도 강박입니다. 운전 중에 자꾸 앞 차 번호판의 숫자를 더하고, 확인하는 것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강박적 인격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강박 장애와는 아주 다른 개념입니다. 하지만 일반인이 언뜻 보면 비슷한 면도 있습니다. 항상 철저한 정리정돈, 질서, 규칙, 완벽함 등을 추구하는 소위 ‘답답한 FM’들이죠.


강박 증상은 아주 다양하지만, 대표적인 증상으로 완벽한 정확성과 대칭에 대한 집착이 있습니다. 무엇인가에 한번 ‘꽂히면’ 엄청난 집착을 보입니다. 완벽한 형식을 갖춘 보고서를 쓰느라, 제출 기한을 넘기는 일은 다반사입니다. 팀 내부에서만 회람할 간단한 보고서임에도, 엄청난 정성을 기울입니다. 야근도 자진해서 합니다만, 줄간격과 장평, 자간을 맞추는 것에 신경을 쓰다 보니 정작 중요한 내용은 놓치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강박적으로 분류한 초컬릿. 강박성은 본인과 주변 사람을 상당히 괴롭히는 정신 증상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본성의 한 측면인지도 모른다.
강박적으로 분류한 초컬릿. 강박성은 본인과 주변 사람을 상당히 괴롭히는 정신 증상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본성의 한 측면인지도 모른다.

어느 하나에는 이렇게 엄청난 강박을 보이지만, 또한 다른 것에는 아주 무관심하기도 합니다. 책장의 책을 크기와 색깔, 종류로 나누어 질서정연하게 배치하였지만, 정작 음식물이 썩어가는 싱크대를 보면서는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죠. 가족들에 손에 이끌려 온 한 젋은 환자는 너무 오랫동안 씻지 않아 악취가 엄청났는데, 그의 주 증상은 ‘청결 강박’이었습니다.

 


아슐리안 손도끼


아마 박물관에서 구석기 인들이 만들었다는 손도끼(혹은 주먹도끼)를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대칭적인 모양을 갖춘 손도끼는 약 100-150만년 전 아슐리안(Acheulean) 시기에 만들어 졌습니다. 돌을 대충 깨어 만든 올도완(Oldowan) 석기의 뒤를 잇는데, 물방울 모양으로 양 측면을 정교하게 다듬어서 만들었습니다. 물론 출토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서 정교함의 차이가 있지만, 어떤 석기는 현대인의 눈으로 보아도 정말 아름답습니다. 우연히 깨진 것인지 만든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올도완 석기와는 아주 다릅니다. 

 

올두바이 협곡에서 발견된 올도완 석기 스케치. 찍개(chopper)로 추정된다. 투박한 모양으로 인해서, 대칭성과 정교함을 갖춘 아슐리안 석기와 비교된다. 종종 자연적으로 깨진 것인지 혹은 석기인지 구분이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왼쪽). 스페인 마드리드 부근에서 발견된 아슐리안 손도끼. 양쪽 면에 오랜 시간을 들여 정교하게 제작한 흔적이 보인다(오른쪽). - Emmyanne29, 휴고 오버메이어 제공
올두바이 협곡에서 발견된 올도완 석기 스케치. 찍개(chopper)로 추정된다. 투박한 모양으로 인해서, 대칭성과 정교함을 갖춘 아슐리안 석기와 비교된다. 종종 자연적으로 깨진 것인지 혹은 석기인지 구분이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왼쪽). 스페인 마드리드 부근에서 발견된 아슐리안 손도끼. 양쪽 면에 오랜 시간을 들여 정교하게 제작한 흔적이 보인다(오른쪽). - Emmyanne29, 휴고 오버메이어 제공

처음에는 이러한 손도끼의 용도가 말 그대로 ‘도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석기를 쥐어 보면 다루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측면이 모두 날카롭기 때문에 자칫하면 쥐고 있는 손을 다치기 십상입니다. 어떤 인류학자는 쥐고 다루는 것이 아니라, 던지는 용도의 석기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모양을 갖추어야 다시 튀어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는 물리학적으로 잘 맞지 않습니다. 튀어 오르는 돌이, 한번 타격을 주는 돌보다 더 큰 모멘텀을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미사일처럼 날아가 동물의 몸에 꽂히도록 설계된 것일까요?


하지만 1919년 영국 펄즈 플래트 에서 약 30-40만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석기가 나오면서, ‘미사일 가설’은 설득력을 잃었습니다. 이 손도끼는 무려 2.8㎏에 30.6㎝에 달했는데, 두 손으로도 다루기 어렵습니다. 이 석기를 던져 동물을 잡는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어떤 석기는 고작 2인치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작기도 하죠. 그리고 손도끼는 같은 장소에서 대거 발굴되는 경우가 많은데, 현미경으로 날을 들여다보니 상당수는 전혀 사용한 흔적이 없었습니다. 손도끼는 사실 ‘손도끼’가 아니었다는 것이죠. 

 

1919년 영국 버크셔 펄즈 프래트(Furze Platt) 지역에서 발견된 거대 손도끼. 길이는 40cm에 이르며 무게는 약 3kg 이다. 이는 손도끼가 실제 용도가 있었다기 보다는 기술적 능력과 지능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 José-Manuel Benito Alvarez 제공
1919년 영국 버크셔 펄즈 프래트(Furze Platt) 지역에서 발견된 거대 손도끼. 길이는 40cm에 이르며 무게는 약 3kg 이다. 이는 손도끼가 실제 용도가 있었다기 보다는 기술적 능력과 지능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 José-Manuel Benito Alvarez 제공

도대체 우리의 조상들이 영 사용하기도 불편하고, 실제로 사용한 흔적도 없는 손도끼를 오랜 시간 정성 들여 만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섹시한 손도끼 가설


1999년 스티븐 미슨과 마렉 콘은 이른바 ‘섹시한 손도끼 가설(Sexy Handaxe Hypothesis)’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발표합니다(물론 실제 논문 제목은 ‘손도끼: 성 선택의 산물인가?’로 좀 점잖았습니다만). 이들은 남성들이 여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정교한 손도끼를 만들어 과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신의 지능과 기술, 건강, 예술적 감각을 보여주는 수단이었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예쁘게’ 만들었으며, 오히려 불편하게 ‘대칭적’ 모양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너무 크거나 너무 작은 손도끼도 이런 목적이라면 잘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럼 손도끼가 한 장소에서 무더기로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른 사람의 손도끼를 자신의 것처럼 속이는 것을 막기 위해, 여성들 앞에서 직접 제작 과정을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진화학자 제프리 밀러는 인류 고유의 예술적 능력이 성 선택에 의해서 진화했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 가설은 아직 논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서 폭넓게 관찰되는 예술과 문학, 공예, 건축 등 다양한 성취들이 사실 ‘실용적인’ 면은 부족하다는 점에서 직관적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밀러는 한걸음 더 나아가 젊은 남성들이 유독 천재적인 예술적 능력을 보여주는 이유는 여성을 꼬셔야 하기 때문이라고 해서, 여성들(그리고 나이든 남성들)을 분노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논 위를 날고 있는 수컷 공작새. 공작새가 거추장스러운 긴 꼬리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짝짓기와 관련된 성 선택 때문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인간의 높은 지능, 그리고 심지어는 예술적 강박도 이러한 공작 꼬리와 비슷한 기능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 Servophbabu 제공
논 위를 날고 있는 수컷 공작새. 공작새가 거추장스러운 긴 꼬리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짝짓기와 관련된 성 선택 때문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인간의 높은 지능, 그리고 심지어는 예술적 강박도 이러한 공작 꼬리와 비슷한 기능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 Servophbabu 제공

이러한 예술적 집착이 정말 성 선택에 의한 것인지, 그리고 특히 남성이 여성을 유혹하기 위해서 진화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아마 어느 정도의 강박적 집착은 성 선택뿐 아니라, 현실적인 이득을 주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교한 도구를 만들고 튼튼한 집을 짓는 능력은 예술적인 자질과 아주 유사한 인지적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꼭 남성이 여성을 유혹하려고 한 것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여성이 이룩한 예술적 업적은 남성에 비해 그 수가 적지만, 이를 단지 자연적인 성 선택의 결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제약이 줄어든 오늘날 여성 예술가가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죠.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당신에게


사실 강박이라는 용어는 다양한 증상을 포괄하기 때문에, 예술가들이 보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건강한 ‘집착’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강박 증상도 있습니다. 그러니 절대 ‘강박 장애는 예술적 자질의 증거다’라고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 어느 정도의 집착과 강박을 보이지 않으면, 한 분야에서 특출난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것도 진실이죠. 이는 인간 사회에서만 관찰되는 아주 독특한 현상입니다.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목표에 대한 강박적 집착은, 잘만 다룬다면, 큰 성공을 향한 밑거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변 상황에 적절히 맞추며,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전체를 조망하는 지혜와 조화를 이룬다면, 무엇인가에 강박적으로 몰두하는 능력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손도끼에서 시작한 인류 문명의 수많은 걸작들은 이러한 강박적 집착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임상적으로 문제가 되는 수준의 강박과 집착이라면, 적절한 치료가 필요합니다. 본인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많이 힘들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강박 장애로 인해 고통받고, 오랫동안 치료를 받습니다. 치료해도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죠. 하지만 자기 자신도 괴롭게 하는 이러한 강박과 집착이, 어떤 면에서는 인류가 이렇게 놀라운 진전을 이루도록 만든 동력이었다고 하면 조금은 위로가 될 지 모르겠습니다. 비인간적일 정도로 강박적인 당신의 집착은, 어떤 의미에서 아주 ‘인간적’입니다.

 


에필로그


임상적인 강박 장애 혹은 강박성 인격 장애는 반드시 정신과 전문의의 상담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두 종류의 장애는 원인과 증상, 치료, 예후가 전혀 다르며, 각각 다양한 경과를 보입니다. 모든 인간에게 어느 정도의 강박적 성향이 내재되어 있다고 해서, 심각한 증상에 대해 진단과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만에 하나 오해하시는 분이 있을까 걱정되어 ‘강박적’으로 사족을 덧붙입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의.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여성의 진화’(근간) 등을 저술했다.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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