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비리로 인한 실망, 원자력 연구가 희망으로 바꿔드리겠습니다”

2013.07.26 05:00

  잇따른 원전 비리로 원자력계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차갑기만 하다. 지난 40년 가까이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됐던 원전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것이다.

 

  국내 유일의 원자력 종합연구기관으로 1959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지시로 설립된 한국원자력연구원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23일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만난 정연호 원장은 “원전 비리 때문에 사용후핵연료 문제 같이 원자력계가 당면한 문제가 가려져선 안 된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용후핵연료 재활용부터 보관공간 확보까지 논의 돼야

(주)동아사이언스 제공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정 원장은 인터뷰를 시작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국책연구기관이 바로 원자력연”이라면서 “외국에서도 원자력연구소는 가장 중요한 국가기관으로 인정 받는다”며 역사성과 정신적 자긍심을 드러냈다.

 

- 안타깝게도 현재 원자력계를 ‘마피아’로 몰아가는 여론이 대부분입니다.

 

  “먼저 같은 분야의 종사자로서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그러나 일부의 잘못으로 전체를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지나친 면이 있습니다. 원자력계의 잘못된 부분을 철저히 밝혀내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칫 원자력계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에너지 안보가 위협받아서는 안 될 일입니다. 신뢰를 끌어올리기 위한 진심어린 노력이 계속돼야 할 것입니다.”

 

- 원전 비리 때문에 원자력계에서 가장 중요한 논의들이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는겁니까?

 

  “맞습니다. 현재 원자력계는 사용후핵연료 문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돼야 할 시점입니다. 특히 한미 원자력협정의 만기가 2년 연장된 만큼 시간은 벌어둔 상태입니다. 이 협정은 40년 전 원자력 후발국이었던 우리나라가 기술을 얻는다는 입장에서 핵 비확산 정책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고 핵연료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포함시켰던 겁니다.”

 

-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에 대한 미국의 동의를 얻어낼 전략이 있을까요?

 

  “연구원에서는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기술을 열심히 연구해 우리의 순수한 의도를 보여줄 겁니다. 이와 함께 정부가 외교력을 발휘하고 산업계도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핵 비확산’이라는 협정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원자력 5대 강국에 걸맞은 개정을 이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사실 미국도 우리나라를 신뢰하고 있을 테지만 세계적인 핵 비확산 정책에서 한국에 예외를 주기 힘든 상황이라 여겨집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의 진심이 잘 전달된다면 호혜적인 차원에서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 당장 국내에서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곳이 부족하다는 말이 많습니다.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2016년이면 국내 4개 원전 지역 수조에 임시 저장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가 포화 상태에 이릅니다. 경주에 중저준위 방사성물질폐기장(방폐장) 설립 당시에도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는데 고준위 방폐장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핀란드와 스웨덴이 힘든 과정을 거쳐 국민의 동의를 얻어낸 것처럼 국민과 진솔하고 투명한 대화를 이어간다면 고준위 방폐장 설립 문제도 풀 수 있을 겁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원자로 수출 길, 계속 열려 있어”

-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독일, 스위스 등 일부 국가에서 원전 폐쇄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계속 원전을 확대하겠다는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원전을 일방적으로 키우면서 국론 분열을 초래한 측면이 있어요. 이제는 호흡 조절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다만 석유 같은 화석연료가 고갈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2030년까지 원전 150기가 추가로 건설될 것이라 전망한 점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물론 원자력만이 답이라고 강요할 순 없습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원자력과 신재생 에너지가 함께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 우리나라는 아랍에미리트(UAE)에 상용 원전을, 요르단에 연구용 원자로를 수출하는 등 잇따른 성과를 보이고 있는데, 원전 축소 분위기가 있는 요즘 상황에서도 이 같은 수출 성과를 계속 거둘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연구로와 대용량 상용로, 특수 목적 중소형 원자로 3가지를 모두 수출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UAE 이후 프랑스와 일본이 손을 잡으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규모 자금 능력 등 기술외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연구로 부분에서는 태국, 그리스 등의 업그레이드 사업을 맡고 있으며 남아공, 네덜란드 사업에도 참여하고자 노력 중입니다. 특히 부산 기장에 짓고 있는 신형 연구용 원자로가 완성되면 새로운 수출 시장이 열리게 될 전망입니다.”

 

●기술사업화는 새로운 시대적 소명

- 원자력연 원장 외에 출연연 공동기술지주회사 설립준비위원장을 맡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현재 진행 상황은 어떻습니까.

 

  “지난 3월에 출연연 발전전략을 내면서 여러 출연연이 공동으로 기술사업화를 위한 회사를 세우자는 의견이 모아졌어요. 최근에는 17개 기관이 참여해 총 자본금 530억원 규모의 회사를 연말까지 설립할 계획으로 11월에 CEO 공모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내년 초에는 공동기술지주회사의 면모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 출연연이 성과를 사회에 돌린다는 차원에서는 바람직할지 모르겠지만, 출연연들이 그저 정부 정책에 좌지우지되면서 정작 설립목적을 잊고 기술사업화만 강조한다는 비판도 많습니다.

 

  “출연연은 기본적으로 민간이 못하는 연구를 해서 기업에 넘겨주는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그동안 한국형 원전, CDMA 등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습니다. 지금도 이 소명은 동일합니다. 다만 환경이 바뀐 만큼, 기술사업화로 창조경제 구현에도 이바지하는 것이 또 다른 시대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효율성 높이고 자율성 보장한다면 창의성 높아져

 

(주)동아사이언스 제공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 기관장이 아닌 원자력계에 오래 종사한 연구자로서 꼭 이뤄내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원자력계에 35년 정도 몸담았습니다. 1985년에 원자력 기술 자립을 위해 처음으로 미국에 파견된 팀장이었고, 그 뒤 국가원자력연구개발기획, 신형 한국형 원자로 개발에 참여해 왔습니다. 짧은 기간에 참 많은 것을 이뤄왔던 거죠. 이제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잠시 뒤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기록을 정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했습니다. 급히 오느라 간과했던 자원의 낭비나 오류를 막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거지요.”

 

- 기록을 정리하는 시스템이란게 뭘 얘기하는겁니까.

 

  “‘다담스(DADAMS)’라는 시스템인데 연구계획서부터 연구노트, 결과보고서, 성공·실패 요인 분석까지 연구개발 전 과정을 관리하는 DB 프로그램입니다. 새로운 걸 할 때 기존 연구 역량을 참고할 수 있고, 사전 시뮬레이션을 통해 시간과 자원 낭비를 막을 수 있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와 함께 우수한 인재라면 국적 불문하고 데려오기 위한 전략도 세우고 있습니다.”

 

- 요즘 개인적으로나 업무적으로 가장 큰 관심사는 뭡니까?

 

  “어떻게 해야 연구자들이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연구자들에게 자유와 미래에 대한 보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년, 연금, 사회적 지위 문제 등 여러 가지가 걸려 있더군요. 국민 여론과 정부의 판단에 맡겨야겠지만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당장 비용이 들더라도 자율성을 보장한다면 훨씬 커다란 성과로 돌아올 거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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