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의 맥주생활 (24)] ‘맥주 애호가들의 성지’ 포틀랜드 맥주여행

2017년 03월 03일 17:00

‘비어바나(Beervana)’


모든 것은 이 한 단어에서 시작됐다. 맥주 책을 읽던 H의 눈을 사로잡은 한 단어. ‘미국 북서부 오리건주의 포틀랜드는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많이 몰려 있어 비어바나라는 별칭이 붙었다.’


도시의 별칭이 ‘맥주(Beer)로 열반(Nirvana)’이라니 커트 코베인 오빠도 기뻐할 것만 같다.

 


가고 싶다… 가고 싶다… 세계에서 가장 맥주 양조장이 많은 도시이자 가장 많은 종류의 맥주가 만들어지는 도시. ‘맥주 애호가들의 성지’로 불리는 포틀랜드.


포틀랜드병은 점점 깊어만 갔다. 알면 알수록 포틀랜드는 예사로운 도시가 아니었다. 자연 속의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킨포크 트렌드가 시작된 곳이자 자유와 낭만, 아날로그 감성이 살아 있는 도시. 지역성을 가득 담고 있는 맥주와 커피와 먹거리들이 거리거리를 채우고 있는 곳.


나도 가보련다. 정성 담아 만든 맥주로 세파에 찌든 나를 씻어내고 여유와 용서를 마음에 담아 오겠다.

 

포틀랜드 위치 - 구글맵 제공
포틀랜드 위치 - 구글맵 제공

시애틀 공항에서 내려 남쪽으로 3시간 차를 타고 내려간다. 저 멀리 한여름임에도 정상에 눈이 쌓인 후드산이 보인다. 역시 맥주 도시다운 영험한 기운이 느껴진다.


포틀랜드는 서울의 절반 정도 되는 면적(376.5㎢)에 인구는 60만명에 불과하다. 이 작은 도시에 80여개에 이르는 맥주 양조장이 들어서 있다. 포틀랜드의 맥주 붐은 1980년대 양조장에서도 맥주를 마실 수 있도록 오레곤주법이 바뀌면서 시작됐다. 윌러멧 밸리에서 재배되는 홉과 보리, 또 풍부한 수자원도 맥주 붐을 뒷받침했다.

 


차 없이 살기 힘들다는 미국이지만 포틀랜드만은 다르다. 경전철인 트라이멧(TRIMET)이 촘촘하게 연결돼 있고 버스도 자주 다닌다. 또 도시 중심부는 쉬엄쉬엄 걸어서 정복 가능. 운전하지 않아도 되니 맥주를 양껏 마실 수 있다!! 여기는 맥주 천국 포틀랜드!!! 시내 중심가에는 맥주 양조장 겸 펍(브루펍)이 밀집해 있어 딱히 지도가 없어도 어디선가 양조장을 만나게 된다. 말 그대로 ‘걷다가 발에 차이는 게’ 맥주 양조장이다.


드디어 양조장 투어를 시작한다. 워낙 많다 보니 즐기고 싶은 분위기에 따라 골라서 갈 수 있다는 게 큰 장점. 맥주를 오랜 시간 많이 먹기 위해선 적당히 배를 채워줘야 한다. 제대로 된 식사와 맥주를 즐기고 싶다면 시내 중심가에 모여 있는 양조장 겸 레스토랑에 가면 된다. 데슈트 브루어리(Deschutes Brewery), 팻헤즈 브루어리(Fat Head’s Brewery) 등이 있다. 세 살배기 아이부터 흰머리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가족들이 펍에 와서 즐기는 모습이 정말 좋아 보인다. 아이들을 위한 키즈 메뉴와 하이체어는 물론이고 색연필과 종이까지 준비해 준다.

 

데슈츠 브루어리 - 황지혜 제공
데슈츠 브루어리 - 황지혜 제공

분위기를 잡고 싶다면 시내 중심가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탁 트인 공간에서 마실 수 있는 텐 배럴 브루잉(10 Barrel Brewing)과 로그 증류소&펍(Rogue Distillery and Public House)이 제격이다. 젊은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이 곳에 앉아 있다 보면 금새라도 즉석미팅이 성사될 것만 같다.

 

텐 배럴 브루잉 - 황지혜 제공
텐 배럴 브루잉 - 황지혜 제공

 

텐 배럴 브루잉 - 황지혜 제공
텐 배럴 브루잉 - 황지혜 제공

음식과 분위기를 즐겼으니 이제 맥주에 집중해본다. 강을 건너서 동쪽으로 넘어가면 안주가 없거나, 앉을 자리가 없거나, 수시로 맥주가 동 나거나 ‘내 맥주는 최고니 이정도 불편함은 참을 수 있겠지’라는 식으로 운영되는 양조장들이 있다. 이럴 줄 알고 배를 채우고 왔지.


이 동네에서 맥주 덕후들에게 가장 칭송 받는 곳은 캐스케이드 브루잉 배럴 하우스(Cascade Brewing Barrel House). 신맛 맥주를 오크통에 과일과 함께 숙성시켜 쿰쿰함과 새콤함과 과일맛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사워 맥주의 명가다. 몇 년씩 숙성하기 때문에 같은 맥주라도 빈티지가 있다. 욕심난다 다 집에 싸가고 싶다. 내일도 또 오리라 마음을 먹고 일단 세 병을 사서 가방에 짊어진다.

 


다음은 커먼스 브루어리(The Commons Brewery)다. 안주는 치즈 몇 조각이 전부지만 여기서 유명한 어반 팜하우스 에일(Urban Farmhouse Ale)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꽃향기가 스치고 드라이하게 마무리되는 깔끔한 맥주다.


업라이트 브루잉(Upright Brewing)은 아예 양조장비 옆에서 쭈구리처럼 앉아서 맥주를 맛봐야 한다. 하지만 벨기에 농가에서 마셨다는 세종 (Saison) 맥주나 맥주에서 단짠 (달고 짠 맛)을 느낄 수 있는 고제 (Gose)를 특별하게 잘 만들기 때문에 누구도 불만 없이 찾아가 맥주를 마신다. 한 테이블에 끼어 앉은 낯선 남자에게서 강한 맥덕의 향기를 느낀다.

 


사흘 동안 하루 너댓 곳씩 돌며 마셔댔더니 숙취 때문인지, 시차 때문인지, 맥주 고행을 하고 있는 동반 가족 때문인지 영 컨디션이 좋지 않다. 하지만 진정한 맥주 애호가라면 여기서 멈출 순 없다. 포틀랜드 외곽에도 정복해야 할 브루어리가 널려있다. 두 시간쯤 운전해 소박하고 따뜻한 느낌의 캐논비치로 간다. 파도는 너울치고 하늘은 파랗고 마음이 열린다. 이 와중에 또 펠리칸 브루잉이 날 맞아준다. 따뜻한 햇살 아래 피자와 한잔.

 

펠리칸 브루잉 - 황지혜 제공
펠리칸 브루잉 - 황지혜 제공

7~8월에는 포틀랜드에서 맥주 관련 축제도 자주 열린다. 30년 동안 전화영어, 화상영어, 외국인 영어회화 등 각종 영어학원에 돈을 쏟아 부어도 안 트였던 영어 말문이 트이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


포틀랜드에는 맥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딜 가든 자유와 여유가 느껴진다. 독립 서점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파웰 북스(Powell’s Books)에서는 싼 값에 중고책을 득템한다. 수백 개의 푸드 카트가 곳곳에 포진해 있어 길거리 음식을 골라먹는 재미도 엄청나다.


토요일마다 오레곤주립대 인근에서 열리는 파머스 마켓에서는 지역에서 재배된 온갖 과일과 채소와 핫도그, 버거, 크로와상, 거기에 김치도 있다. ‘장미의 도시’라는 또 다른 별명답게 장미정원도 아름답고 서부 개척시대 전초 기지였던 만큼 박물관에서는 강인하고 독립적인 개척민들의 자취도 찾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 포틀랜드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소비세(Sales tax)가 0%라는 데 있다. 면세점뿐 아니라 포틀랜드의 어떤 가게에서 물건을 사도 소비세가 붙지 않는다. 온 도시가 면세점이다. 이월상품이 쌓여있는 노드스트롬 랙(Nordstrom Rack)에 가서 마음껏 골라본다. 맥주병과 옷가지로 빵빵해진 가방에 내 마음도 풍성해진다.


맥주를 다 까먹을 때까지, 또 매년 옷을 꺼내 입을 때마다 포틀랜드는 나와 함께하겠지. 오늘도 여행 뽐뿌를 추억으로 진정시켜본다…

 


<’1일 1맥’ 추천맥주>
 

스톤 브루잉 제공
스톤 브루잉 제공

이름 : 루이네이션 더블 인디아페일에일(Ruination Double IPA)
도수 : 7.7%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대표 맥주 양조장 중 하나인 스톤 브루잉에서 만든 더블 인디아페일에일(IPA). 미국식 IPA로 유명한 스톤 브루잉이 여러 자극적인 맛을 더해 ‘파괴(Ruination)’라는 이름을 붙여 내놨다.


기존 IPA에 비해 더 강한 감귤류의 향과 소나무의 향을 느낄 수 있다. 마시면 입 안에 달콤함이 퍼지다가 마지막에 강한 씁쓸함을 남긴다.

 

 

※ 필자소개
황지혜. 비어포스트 에디터, 전 매일경제신문 기자. 폭탄주와 함께 청춘을 보내다 이제는 돌아와 수제 맥주 앞에 선 한량한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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