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시선 52] 사찰에서 본 털신

2017년 02월 11일 18:00

오래된 사찰은 절일까, 문화재일까. 물론 사찰은 불교 시설이고 불교계에서 운영하기에 절이지만, 그 역사가 오래되어 방문객을 상대로 관람료를 받는다면 문화재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유명 사찰은 절이자 문화재여서 석탑, 철불상 등의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여러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니 사찰은 어떤 이에게는 종교 공간이고 나 같은 무신자에게는 문화유적지다.

 

le ciel est bleu(F) 제공
le ciel est bleu(F) 제공

지난 주말, 설 명절 때 못 간 처가를 향해 차를 몰았다. 평일처럼 교통 흐름이 좋았다. 시간 여유가 생겨 오랜만에 한 유명 사찰에 잠시 들렀다. 충남 예산에 위치한 그곳은 예전에는 그 이름대로 덕(德)을 수양하기에 좋을 만큼 고요하고 아늑한 사찰이었다. 그러나 이번 방문 때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음에도 그곳은 다소 산만해져 있었고 고풍(古風) 분위기는 퇴색돼 있었다.


넓어진 주차장에 들어설 때부터 신축 상가에서 소란스레 들려오는 지르박 박자의 녹음기 소리가 고속도로 휴게소를 방불케 했을뿐더러,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우뚝 서 있는 일주문 기둥은 이제껏 보지 못한 엄청난 굵기의 통나무로 세워져 있어서 이국적이었다. 또 금강문과 사천왕문을 지나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가에는 거북인지 용인지 현무인지조차 알 수 없는 기괴한 만화 캐릭터 같은 형상의 석상이 보란 듯이 방문객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더욱이 마음을 씁쓸하게 한 조형물은 대웅전 아래 근방에 커다랗게 조각해놓은 승려 석상이었다. 익살스레 활짝 웃고 있는 여럿의 동자승 한가운데 지나치게 뚱뚱한 승려상도 마냥 풍요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승려상은 한때 유명했던 한 소주 상표 인물 그림으로 연상됐을 뿐 아니라, 지극히 넉넉한 체구의 그 모습은 마치 부유한 삶을 기원하는 제단으로 느껴져 내가 알고 있는 불교 정신과는 위배돼 보였다. 나른할 정도로 살집이 많아 풍족해 보이는 그 승려상 모습이 오랜 역사를 지닌 그 사찰의 단아하고 소박한 분위기를 훼손하고 있다고 느꼈다면 나의 인색한 생각이었을까.


그 제단을 지나쳐 천 년 세월 속에서도 비틀림 없는 견고한 축대 위의 대웅전으로 올라섰다. 봉정사 극락전과 부석사 무량수전에 이어 현존하는 국내 목조 건물로는 가장 오래되어 국보로 지정된 그곳의 대웅전은 여전한 품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열려진 격자무늬 목조 여닫이문으로 시선만 들여보냈다. 높은 천장 아래 보물로 지정된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이 수백 년 동안 한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중 석가모니불의 눈매는 그동안 중생들의 무수한 사연과 기원의 불공을 듣고도 그윽한 평정의 눈길을 정면에 두고 있었다. 그 앞에, 사계를 넘은 내 마음속 근심을 부려놓고 싶었지만 신앙 없는 사람의 민낯의 이기심이 부끄러워져 슬그머니 걸음을 옮겼다.


대웅전 왼편은 아늑한 공간이었다. 대웅전 건축 양식 구조도 어렴풋하게 엿볼 수 있었다. 또한 대웅전 바로 뒤편에 병풍처럼 펼쳐진 여러 개의 커다란 바위와 그 사이사이에 자리 잡은, 수령이 수백 년은 돼 보이는 소나무들을 올려보며 애초에 사찰을 왜 그곳에 세웠는지 느낄 수 있었다.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되기 전에도 그곳은 아마 원시 무속 신앙의 터전이었을 정도로 신령스러워 보이는 큰 바위들이 산을 지고 있는 형세였다. 그러고 보면 모든 신앙적 수행은 산기슭에 박힌 바위처럼 우직하고, 굽은 채 수백 년을 자란 소나무처럼 묵묵한 모습으로 스스로 고행하며 생의 안팎을 통찰하는 행위가 아닐까.

 

윤병무 제공
윤병무 제공

그런 생각을 하며 대웅전 주변을 서성이고 있는데, 대웅전 옆문 섬돌 위에 벗어놓은 털신 한 켤레가 시선에 닿았다. 사찰에서 겨울이면 스님들이 신는, 자그마한 털신이었다. 족히 한두 해는 신었을 듯한 그 검정 털신에 흰 글씨로 이렇게 씌어 있었다. “환희.” 한글이었지만 ‘歡喜’로 읽혔다. 불교에서 그 뜻은 일반 의미에서의 ‘큰 기쁨’이 아니라, 자기의지와 극락왕생과 불법(佛法)을 만났을 때의 종교적 기쁨을 의미한다. 하지만 속세를 떠난 한 비구니가 그곳 섬돌 위에 벗어놓은, 낡은 털신에 씌어진 “환희”라는 글자가 내게는 역설적이게도 세속에서의 비애의 흔적으로 느껴져, 마치 곤충이 탈바꿈하며 벗어놓은 쓸쓸하고 텅 빈 허물로 읽혔다.


걸어 나오는 길 오른편에 스님들의 수행처인 환희대(歡喜臺)가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 털신은 환희대에서 불도를 닦는 여승의 것이었을 테다. 그것은 속세를 떠나서도 소속을 떠날 수 없는, 태어난 이상 어떻게든 세상과의 인연을 벗어날 수 없는 인생의 행로와 함께하는, 닳고 있는 신발이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주

뉴스를 보다보면 무엇인가를 분석해서 설명을 해주는 내용이 대다수입니다. 그래야 원인을 정확하게 찾고,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고개를 들어 사물을 그대로 보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대상을 온전히 바라보면 분석한 내용을 종합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시인의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생활의 시선’을 매주 연재합니다. 편안한 자세로 천천히 읽으면서 감정의 움직임을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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