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내 실패는 내 탓이 아니라고!

2017년 02월 01일 10:00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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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스스로 파다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다’라는 생각은 한 때 꽤 인기가 있었다. 사실 우리는 꽤 똑똑한, 고등인지기술을 가진 동물이고 종종 지식과 이성을 통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항상 그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때로는 합리적인 행동과 심리/정서적 이득이 서로 상충될 때가 있다. 이 경우 우리는 자주 자신의 정서적 이득을 위해 객관적 이득을 포기하는 행동을 하곤 한다. 대표적인 예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Self-handicapping, 자기 자신에게 핸디캡을 주는 행위이다.

 


실패를 얻되 자존감은 지키는 행위


중요한 자격 시험을 앞두고 있었을 때였다.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보나마나 실패할 것이 뻔했다. 하지만 그 원인이 ‘내’가 되기는 싫었다. 내가 무능해서 시험에 실패한 것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아닌 다른 핑계가 필요했다. ‘나는 무능하지 않아. 아직 진지하지 않고 노력을 안 한 것 뿐이야. 시험은 그냥 경험 삼아 한 번 보는 것일 뿐이야.’ 이 핑계를 성립시키기 위해 시험 직전까지 왕창 놀고 새벽까지 깨있다가 늦게 잤다. 시험 날 지각까지 했다.


물론 이러지 않았어도 능력 부족으로 못 봤을 시험이지만 이런 노력이 더해져 더더욱 못 보는데 성공했고 나는 정신승리에 성공했다. 실패를 얻고 자존감을 지켰다. 전형적인 Self-handicapping의 한 예이다. ‘내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스스로 만듦으로써 실패할지언정 자존감은 지키는 행위이다.

 


다치기, 아프기, 술, 시끄러운 환경 등


이러한 self-handicapping은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예컨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자신의 팔을 부러트린 후 다쳤다고 이야기 하는 다소 극단적인 예나, 보다 일상적으로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일부러 추운데 옷을 얇게 입고 다녀서 심한 감기에 걸린다던가(아파서 일을 잘 못 할 수 밖에 없다는 핑계 만들어 두기), 또는 약물이나 술을 사용해서 스스로의 인지능력을 저하시키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또는 도무지 일을 할 수 없는, 시끄럽고 번잡하며 주의를 집중할 수 없는 환경에 자신을 일부러 노출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언뜻 보면 매우 비합리적인 행태이나 저런 행동들을 감당하게 할만큼 인간에게 자존감은 목숨처럼 중요하며, 실패에 대한 공포는 두려우며, 실패자라는 낙인은 사람이 차라리 스스로를 다치게 만들만큼 아프다는 이야기도 되겠다(Kolditz & Arkin, 1982).


참고로, ‘오늘 일을 내일로 잘 미루는 사람들(procrastinator)’의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이런 self-handicapping 행위들을 잘 보인다고 한다(Ferrari, 1991). ‘내가 일을 미룰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부합되는 인지적(술?) 또는 환경적(산만한 환경?, 너무 많은 약속?) 장애물을 스스로 구축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많이 찔리는 부분이라고 고백한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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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두려움은?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혹시 여러분도 self-handicapping을 한두가지 쓴 적 있다면, 어떤 것들을 주로 쓰고 있는가? 그 때 피하려고 하는 대상은 무엇인가?


이러한 행위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조금의 정신적 도피가 필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빈도’가 너무 많아서 문제에 대한 직면 없이 항상 도피만 하고 있다던가, 핸디캡의 ‘강도’가 너무 심해서 나를 파괴하는 정도가 너무 심할 때이다. 이럴 때는 잠깐 멈춰 보는 게 좋다.


또한 나한테 핸디캡을 주는 이유가 결국 사람들의 ‘시선’이라면, 중요하지 않은 누군가의 시선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한테 너무 가혹한 건 아닌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적당히 나를 지키기 위한 선에서만 잠깐 도피했다가 다시 돌아올 것.

 


치킨은 여전히 맛있을테니까


개인적으로는 저렇게 몇 번 시험 등에서 자가 핸디캡핑 후 단기적으로는 자존감을 지켜냈으나 장기적으로는 더 큰 자괴감이 들고 말았기에 (나는 과연 무슨 짓을 하고 말았는가..) 조금 덜 노골적인 방법의 필요를 느꼈다.


실은 그보다 실패를 덜 특별하게 생각하게 되었는데.. 특별히 실패했다고 호들갑 떨 일이 아닌거 같달까 삶에 큰 지장을 주는 종류를 제외하고는 ‘그냥 하는 거지 뭐..’라고 생각하려는 편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쓰라리겠지만 지구는 여전히 돌아가고 치킨도 여전히 맛있고 마음은 언젠가 평정심을 회복한다는 것, 또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내 문제에 큰 관심을 갖지 않으며 따라서 남들의 시선은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됨을 알기 때문에.

 

 

※ 참고문헌
Kolditz, T. A., & Arkin, R. M. (1982). An impression management interpretation of the self-handicapping strategy.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43, 492-502.
Ferrari, J. R. (1991). Self-handicapping by procrastinators: Protecting self-esteem, social-esteem, or both?. Journal of Research in Personality, 25, 245-261.

 

※ 필자소개
지뇽뇽. 연세대에서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적인 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고하는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jinpark.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과학동아에 인기리 연재했던 심리학 이야기를 동아사이언스에 새롭게 연재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한 주를 건강하게 보내는 심리학을 다룬 <심리학 일주일>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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