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건강 연구’ 크라우드펀딩으로 시도한다

2017.01.24 15:00

김승섭 고려대 교수팀 25일부터 트랜스젠더의 건강과 의료접근성 펀딩 나서

스토리펀딩 플랫폼을 통해 그간 영화제작, 시민단체 후원 등 다양한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었다. 연구자가 직접 학술연구 지원을 요청하는 프로젝트는 이번이 처음이다.  - 스토리펀딩 제공
스토리펀딩 플랫폼을 통해 그간 영화제작, 시민단체 후원 등 다양한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었다. 연구자가 직접 학술연구 지원을 요청하는 프로젝트는 이번이 처음이다.  - 스토리펀딩 제공

과학연구를 정부ㆍ기업 연구비 없이 크라우드 펀딩으로 한다?

 

대중을 상대로 과학 학술 연구를 직접 크라우드펀딩하는 사례가 나왔다. 보통 이공계에선 국가연구개발(R&D) 사업이나 기업R&D 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는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례적인 일이다. 국가나 기업에서 자유로운 학술 연구의 활성화 시도가 눈길을 끈다.


김승섭 고려대 일반대학원 보건과학과 교수팀은 25일부터 두 달간 다음 ‘스토리펀딩’ 플랫폼에서 1000만원을 목표로 크라우드 펀딩(대중모금)에 나선다. 연구 주제는 트랜스젠더의 건강과 의료접근성. 민간단체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가 모금액에 비례해 최대 1000만 원을 추가로 후원한다(※펀딩 사이트 바로가기). .

 

크라우드 펀딩은 그간 영화 제작, 시민단체 캠페인 후원, 취재 지원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됐다. 하지만 학술연구는 보기 힘들었다. 큰 돈이 들고 대중들이 이해하기 힘든 전문 내용을 다루는 경우가 많아서다. 얼만큼의 호응이 있을지 예상하기 힘든 상황이라 이번 도전은 모험에 가깝다.

 

김 교수가 크라우드펀딩의 리워드로 준비한 물품들. - 김승섭 교수 제공
김 교수가 크라우드펀딩의 리워드로 준비한 물품들. - 김승섭 교수 제공

모금에 성공하면 김 교수는 박사과정 연구원 4명과 함께 5월부터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를 진행한다. 트랜스젠더는 생물학적 성별과 본인이 스스로 생각하는 성별이 다른 사람이다. 정확한 숫자는 알려진 바 없지만, 해외 연구를 참고했을 때 한국에도 약 5만~25만 명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 교수는 2015년 트랜스젠더 A씨의 군 입대 관련 소송에 참여했는데, 성전환 수술을 해야 병역 면제를 받을 희망이 보이는 현실을 마주하고 의문을 품게 됐다.

 

성전환 수술이나 호르몬 투여를 받으면 몸에 되돌리기 힘든 큰 변화가 생긴다. 그런데 이런 시술은 의대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의료보험도 안 된다. 시술 이후 가족이나 주변 사람과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연구된 바 없다. A씨의 경우 병역면제를 받기 위해 얼마나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 정보가 없는 셈이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연구는 국내에 거의 없는 상황이다. - GIB 제공
트랜스젠더에 대한 연구는 국내에 거의 없는 상황이다. - GIB 제공

이들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김 교수는 국가연구개발 사업에 지원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시민들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스토리펀딩에 올릴 글은 여럿의 지혜를 짜내기로 했다.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본인의 경험에 대해 쓰기도 하고, 군 면제 소송을 맡았던 변호사가 자신이 느낀 점을 쓰기도 할 계획이다.

 

김 교수는 그동안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보건 연구에 천착해왔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건강, 세월호 참사 생존자들의 경험, 소방관의 인권, 인턴·레지던트 근무환경,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 등을 연구해 논문과 보고서로 발표했다.


그는 “국가연구비를 지원할 때보다 이번 크라우드펀딩 준비가 더 어려웠다”며 “후원을 해줄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부담감이 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번 펀딩처럼 국가나 기업으로부터 독립된 학술 연구가 좀 더 많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문일답>

김승섭 교수는 “크라우드펀딩을 하려니 빚지는 마음이 들어 부담이 크다”며 “좋은 학술연구를 출판해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 변지민 기자 제공
김승섭 교수는 “크라우드펀딩을 하려니 빚지는 마음이 들어 부담이 크다”며 “좋은 학술연구를 출판해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 변지민 기자 제공

-왜 크라우드 펀딩에 나섰는지?

트랜스젠더 건강연구로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기가 어려웠다. 작년에 두 차례 시도했는데, 연구비 획득에 실패했다. 성소수자 이슈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보수성 때문일 수도 있고, 연구제안서가 부실해서일 수도 있다. 트랜스젠더 건강연구는 기존 연구가 거의 없다보니 상대적으로 연구제안서에 약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일반 연구과제 지원과 비교해보면 어떤 게 더 힘든가?

크라우드펀딩이 더 어렵다. 2000만 원이면 연구비로 큰 돈은 아닌데, 같은 비용의 펀딩을 받는 연구재단 지원보다 훨씬 더 많이 준비해야 한다. 일단 일반인에게 이 연구가 왜 중요하고 의미 있는지 설득하는 글을 쓰는 게 어려웠다. 후원자에게 리워드(보상)를 뭘 줘야하나 고민하는 것도 어렵다. 그리고 부담감이 더 크다. 국가의 연구비를 받을 때와 비교해서, 시민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려니 빚지는 마음이 있다.

  

-국가 연구비도 세금인데 왜 시민에게 더 미안함을 느끼나?

짐작하건대 크라우드펀딩에 후원하는 사람 절반 이상은 나와 우리 연구팀을 실제로 만났거나 SNS를 통해 우리를 아는 친구들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성소수자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응원하는 분들일 거다. 그들 대부분이 넉넉해서 우리를 돕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있다.

 

김승섭 교수가 이번 트랜스젠더 건강연구의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은 이혜민 박사과정 연구원(오른쪽, 김 교수 연구실 소속)과 대화하고 있다.  - 변지민 기자 제공
김승섭 교수가 이번 트랜스젠더 건강연구의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은 이혜민 고려대 일반대학원 보건과학과 박사과정 연구원(오른쪽)과 대화하고 있다.  - 변지민 기자 제공

-모금이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보는지.

실패할 수 있단 생각도 당연히 하는데 그리 두렵진 않다. 실패하더라도 나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모두 해보고 있으니까. 에너지를 아끼거나 적당히 하고 있지 않다. 마땅한 리워드(보상)를 주고자 에코백과 핀버튼을 디자인했고, 얼마 전에는 출판사를 만나서 ‘한국 트랜스젠더 건강(가제)’이라는 책도 계약했다. 펀딩 연재를 위해 호르몬 치료를 하는 가정의학과 의사와 성전환 수술을 하는 산부인과 의사의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 앞에 놓인 장벽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면서 얻은 경험이 국내외 다른 성소수자 연구자에게 좋은 사례로 남을 수 있다고 본다. 아시아에선 성소수자 연구가 환영받는 곳이 드물다. 연구비를 모으고 출판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가 경험하고 또 기록해야 할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펀딩이 성공하면 좋겠다. 안 되면 알바라도 뛰어서 돈을 마련해 진행할 생각이다. 더 이상 연구를 미룰 생각은 없다. 


-크라우드펀딩 연구가 앞으로 더 늘어날 거라 보는지?

국가나 기업으로부터 독립된 학술연구가 좀 더 많아질 필요가 있다. 국가연구는 많은 경우 기획하고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려 기동성 있게 움직이기 어렵다. 예를 들어, 서해안 기름 유출 사건 같은 경우는 사건 터지고 곧바로 연구에 들어가야 하는 사안이었다. 지역 주민의 피해나 자원봉사자의 건강에 대한 연구를 할 때, 국가가 용역을 내고 6개월 뒤에 시작하면 중요한 자료는 다 사라진 다음에 연구가 시작되기 쉽다. 특히나 재난 사건의 경우에 그렇다. 세월호 참사도 4월 16일 이후 한두 달 이내 기록들이 매우 중요했다.

 

-2000만원은 어떻게 쓰이는지?

스토리펀딩을 받으면 후원자들에게 리워드를 해야 한다. 리워드로 에코백, 핀버튼, 텀블러를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데 비용이 든다. 스토리펀딩 플랫폼과 ESC에 들어가는 수수료도 있다. 2000만원 중 1400만원이 실제 연구비로 남는다. 그 돈으로 연구에 참여하는 트랜스젠더에게 드리는 연구 참가 비용을 충당한다. 또 문헌검토, 학회참가, 설문조사, 결과 코딩, 논문게재료, 박사과정 연구원 4명의 인건비로 쓰인다. 연구책임자인 교수는 돈을 하나도 받지 않는다는 점을 꼭 써달라(웃음).


-크라우드펀딩 해줄 분들께 할 말이 있다면?

펀딩 후원금이 얼마나 귀한 마음에서 나온 돈인지 잘 알고 있다. 이 돈으로 당장 변화에 도움이 되는 사회운동이나 캠페인이 아닌 학술연구를 하는 게 맞는지, 스스로도 의심이 든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단단한 증거를 축적하는 학술연구도 필요하다. 그동안 쌍용차, 세월호, 소방관 연구 등에서 했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 연구하고, 좋은 학술연구를 출판해 올바른 현실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만드는 것으로 보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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