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크무비] 인공지능 의사 왓슨이 가져온 충격?

2017년 01월 30일 18:00

조금 도발적인 질문을 하나 해보도록 하자. 가족 중에 한 명이 암 진단을 받았다. 해당 분야 최고 명의로 정평이 나 있는 전문의와 IBM으로부터 도입한 암 치료 전문 인공지능 서비스 왓슨(Watson for Oncology) 중 한 쪽이 제안한 치료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인공지능 의사 왓슨을 국내 최초로 도입한 가천대 길병원의 인공지능 암센터
인공지능 의사 왓슨을 국내 최초로 도입한 가천대 길병원의 인공지능 암센터

이 질문에 ‘도발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전문의도 혼자만의 의견이 아닌 소속 병원 의료진들의 의견을 모아서 제안할 것이고, 왓슨을 도입한 병원 역시 왓슨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 의료진들의 의견도 함께 제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해도, 두 제안의 내용이 다를 경우 당신은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전문의가 속한 병원의 전반적인 평판이 왓슨을 보유한 병원보다 훨씬 더 좋다고 한다면, 결정은 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하여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답을 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정보들이 우리나라에 축적되고 있는 중이다.  

 

이미 언론을 통해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가천대 길병원이 지난해 말부터 국내에서는 최초로 왓슨을 진료에 도입해 실재 운용 중인 것. (가천대 길병원 인공지능 암센터: https://www.gilhospital.com/wo/) 지금까지 1개월을 조금 넘게 운영하였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은 아닐 수도 있지만, 보도된 바에 따르면 환자와 그 가족들이 왓슨에 보인 반응은 충분히 긍정적이었다.


우선 가천대 전문의들의 판단과 왓슨의 판단이 다른 경우, 대부분의 환자가 왓슨의 판단을 따르기로 했다고 한다. 또한 명성이 뛰어난 병원 혹은 전문의로부터 1차 암치료 방법에 대한 제안을 받은 이후에, 왓슨으로부터 이른바 두 번째 의견(Second opinion)을 듣기 위해 찾아오는 환자들도 늘어나는 중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러한 결과를 ‘놀랍다 그리고 두렵다’라는 시각에서 다뤘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보면 이는 놀랍거나 두려워할 일이 전혀 아니다. 심지어 멀쩡히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직 초기 수준이라 할 수 있는 자율주행 기능에 운전을 맡기고 있는 현실과 비교하면, 환자 혹은 그 가족의 입장에서 인공지능의 제안을 선택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보이기 때문이다.

 

암 치료 제안을 위한 왓슨의 작동 방식을 설명한 도표
암 치료 제안을 위한 왓슨의 작동 방식을 설명한 도표 - 가천대길병원 제공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전문가들이 자료집(코퍼스, Corpus)을 만들고 이를 왓슨이 머신 러닝 방식으로 습득하여 최적의 치료 방법을 제안한다는 설명만 들어도, 왓슨에게 인간 의사를 뛰어넘는 신뢰를 부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왓슨은 어떻게 학습하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1) 해당 분야에서 만들어내 왔고 지금도 만들어내고 있는 방대한 데이터, 2) 세계적인 전문가들이 제안한 분류 및 분석 방법, 3) 기계 학습을 통해 사례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결론 도출이라는 강력한 방법론 위에, 이른바 휴먼 에러를 제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금융과 법률 분야만큼이나 의료 분야는 인공지능에 가장 적합한 분야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인공지능에 대한 신뢰를 더욱 공고히 하는데 있어 관련 서적, 뉴스, 다큐멘터리 등이 가장 큰 역할을 하지만, SF 영화도 빼놓을 수 없다. 로봇 혹은 인공지능이 탑재된 의료 기기가 인체를 스캔하여 문제를 찾아내고 적합한 치료 방법을 제안하거나 혹은 직접 치료를 하는 장면이 SF 영화에 수없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영화 패신저스에는 사람의 신체를 스캔하여 문제를 찾아내고 직접 치료도 하는 인공지능 의료 장비 Autodoc이 등장한다 - UPI 제공
영화 패신저스에는 사람의 신체를 스캔하여 문제를 찾아내고 직접 치료도 하는 인공지능 의료 장비 Autodoc이 등장한다 - UPI 제공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최근에 개봉한 크리스 프랫과 제니퍼 로렌스 주연의 ‘패신저스’(Passengers)에도 Autodoc이라는 의료기기가 등장한다. 편도만 120년이 걸리는 행성으로 이주하기 위해 동면 상태에 있다가 뜻밖의 사고로 중간에 깨어난 주인공들을, Autodoc이 스캔하여 문제점을 찾아내고 심지어 치료까지 하는 것.


이런 Autodoc이 궁극적으로 업그레이드된 형태는 영화 맷 데이먼 주연의 2013년작 ‘엘리시움’(Elysium)에 등장하는 Med-Bay일 것이다. 슬럼화된 지구 위에 떠 있는 최상위 계층의 주거 위성 엘리시움의 집들에 하나씩 놓여 있는 것으로 설정된 Med-Bay는, 모든 질병의 진료와 치료뿐만 아니라 심지어 훼손된 신체를 재생하기도 하고 노화를 역행시켜 젊음을 유지시켜주기까지 하는 기기로 그려진다.

 

영화 엘리시움에 등장하는 궁극의 의료기기 Med-Bay, 모든 질병을 치료하고 손상된 신체를 재생하며 노화를 역행할 수 있도록 해... - 소니 픽쳐스 제공
영화 엘리시움에 등장하는 궁극의 의료기기 Med-Bay, 모든 질병을 치료하고 손상된 신체를 재생하며 노화를 역행할 수 있도록 해... - 소니 픽쳐스 제공

주목할 것은 이러한 Med-Bay의 혜택을 일부 상위 계층만 누리고 이를 통해 계층간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집권 과정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오바마 케어 관련 논란의 사례처럼, 민영화에 기반한 의료체계 전반에 대한 우려가 있는 미국 사회의 현재 모습이 영화에 투영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인간 의사를 언젠가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인공지능 의사가 가져올 궁극의 충격은 아닐 수도 있어 보인다. 인공지능 의사를 통해 소득이나 지역 등의 한계를 넘어선 고급 의료 서비스의 보편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상과는 정반대로, 이를 개발하고 운용하는 기업이나 정부의 운영 방향이 잘못 설정된다면 그 충격은 훨씬 클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참고
☞ 메디칼 퓨쳐리스트 ‘SF에 등장하는 멋진 의료 로봇들’

 

 ※ 필자소개
이철민. 학부에서 계산통계학을 전공하고 국내 IT기업들에 재직하다 미국 유수의 MBA과정에서 경영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뒤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회사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국내 사모펀드(PEF)에서 M&A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씨네21』, 『동아일보』, 『한겨레신문』등에 다양한 칼럼을 연재한 바 있으며, 저서로는 『인터넷 없이는 영화도 없다』, 『MBA 정글에서 살아남기』 등이 있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관련기사

인기기사

댓글

댓글쓰기

지금
이기사
관련 태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