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시선 49] ‘이해하는 것’과 ‘신뢰하는 것’이 다른 이유

2017.01.21 18:00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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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기로는 생맥주에 물을 타는 술집은 없다. 그럼에도 그것을 의심해, 단지 그 이유로 생맥주 대신 병맥주를 주문하는 사람들도 있단다. 간혹 생맥주가 싱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생맥주통 속의 생맥주를 냉각기로 밀어내는 탄산가스의 압력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추출한 생맥주에는 당연히 그 속에 적절히 섞여야 할 탄산가스 함유량도 떨어져 있을 테다. 톡 쏘는 맛을 내는 탄산가스의 양이 적으니 청량감이 떨어지고 청량감이 부족하니 싱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업주가 재료비를 아끼려고 생맥주에 물을 탔다고 오해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탄산가스 압력을 제때 체크해서 가스통을 교체하지 않은 업주의 소홀에서 비롯된 오해다.

 

오해는 ‘그릇된 해석’을 뜻하는 말이다. ‘이 맥줏집의 생맥주 맛이 싱거운 이유는 업주가 손님 몰래 물을 섞었기 때문일 것이다’라는 그릇된 해석은 사실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품질 낮은 생맥주를 제공한 업주를 의도적으로 사기를 친 양심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는다. 그러나 그런 판단이 오해였다는 사실을 다행히 동행인의 설명을 듣고 깨닫게 된다면, 그는 업주의 부주의를 불평할지언정 업주를 부도덕한 사람으로 평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업주는 일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지 인성이 못된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해한 사람은 생맥주가 싱거워진 사정을 잘못 이해한 사람이지 타인을 무조건 믿지 않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니 ‘오해하는 것’과 ‘신뢰하지 않는 것’은 다른 것이다.

 

십여 년 전 나는 영국에 유학 중이었던 친구를 만나러 케임브리지에 가서 사흘 동안 머문 적이 있었다. 친구의 안내로 난생처음 캠강(River Cam)을 따라 이국적인 거룻배도 타보고 저물녘에는 한인 유학생들의 환대를 받으며 캠 강변의 술집에서 아일랜드 흑맥주를 마시며 세계적인 학풍의 대학 도시 케임브리지의 봄밤에 한껏 고무되었다. 둘째 날부터는 본격적으로 그곳을 여행했다. 그 고장에 대학(college)만 서른 개가 넘으니 그곳의 여행이란 주로 캠퍼스들을 방문하는 거였다.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할 때 힌트를 얻었다는 사과나무는 건재했고 노란 수선화 무리가 흐드러진 정원의 벤치에 앉아 그곳에서는 꽤 반가워한다는 햇볕을 잠시 누렸다.

 

Wikimedia Common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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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 대학들 중 가장 웅장한 트리니티 칼리지, 킹스 칼리지, 퀸스 칼리지를 먼저 둘러보았다. 그곳들은 캠퍼스에 들어설 때 입장료를 받는다. 고풍 복장을 한 장년 남성이 대학 정문 한쪽에 서서 일일이 매표를 확인했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매표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친구가 케임브리지 대학의 학생이라는 것, 즉 오래전 광고에서나 듣던 “케임브리지 멤버스”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걸 증명할 학생증은 없었다. ‘나는 케임브리지 멤버’라는 친구의 말 한마디에 매표 관리인은 입례까지 하며 우리를 통과시켜주었다. 똑같은 응대로 우리는 여러 대학을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확인할 바 없지만 의심하지 않는 것, 그것이 그곳 풍경들의 내면이었다.

세계적인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도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이다. 그가 그곳 학생일 때 한번은 시험 성적이 2등이었단다. 그런데 늘 1등에게 주어지던 장학금이 러셀에게 돌아갔단다. 의아한 마음으로 러셀은 교수를 찾아가 물었단다. 교수의 답변은 이랬단다.


“성적은 네가 2등이지만 앞으로의 가능성은 네가 낫다고 생각한다. 그게 네게 준 이유다.” 교수의 그런 결정으로 억울했을 1등 학생은 교수에게 항의했을까? 그것은 알지 못한다. 그건 중요하지 않기에 후일담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일화가 주목한 것은 ‘권위와 자율과 신뢰’였기 때문이다. 스승의 권위와 제자의 신뢰는 그곳을 자율적 평가를 믿는 세계적인 대학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매표를 확인하는 문지기도 ‘케임브리지 멤버’라고 말하는 추레한 차림의 한 동양인을 믿고 학생증을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두 사례에서 나는 ‘이해하는 것’과 ‘신뢰하는 것’이 다른 이유를 확인했다. 서두에 언급한 싱거운 생맥주 맛에 대해 ‘오해하는 것’과 ‘신뢰하지 않는 것’이 다르듯 말이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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