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눈물부터 납니다. 저 어떡해야 하나요?

2017년 01월 21일 09:00

▶ 고민

왜 이렇게 마음이 약한 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사소한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 눈물부터 왈칵 쏟아져 나옵니다. 제 처지를 생각해도 눈물이 나고,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어도 눈물이 납니다. 눈물이 헤프면 안된다는데, 허무함과 슬픔을 감출 수 없습니다. 세상은 다 왜 이렇게 슬프고 괴로운 이야기로 가득한 것일까요?

 


● 바쁜 분들을 위한 4줄 요약


1. 슬픔은 인간뿐 아니라 다른 고등 동물에서도 관찰되는 보편적 감정이다.
2. 진화심리학은 슬픔이 진화한 원인에 대해서 잘 설명하지 못한다.
3. 슬픔은 기쁨처럼 하나의 감정일 뿐이다. 어느 정도 수준을 넘지 않으면, ‘괜찮다’.
4. 종종 슬픔은 기쁨보다도 더 중요한 삶의 의미를 줄 수 있다.

 


▶ 답변

언젠가부터 우울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만, 사실 슬픔이라는 더 좋은 말이 있습니다. 우울은 생물학적으로 저조한 상태를 일컫는 임상적인 용어입니다. 많은 우울증에서 슬픔이 관찰되지만,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죠. 흔히 구분없이 쓰곤 합니다만. 사실 둘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 에리히 프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감각에 대한 무능력이며, 우리의 육체가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은 느낌을 가지는 것이다. 그것은 슬픔을 경험하는 능력이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기쁨을 경험할 능력도 없는 것을 말한다. 우울한 사람은 만일 그가 슬픔을 느낄 수만 있어도 크게 구원을 받을 것이다.”- 에리히 프롬, <건전한 사회>

 

GIB 제공
GIB 제공

동물도 느끼는 슬픔


아마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워봤다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들도 슬픔을 느끼고, 또 그 감정을 표현합니다. 사람처럼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행동, 표정, 울음소리를 통해서 충분히 느낄 수 있죠. 사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슬픔을 느낍니다. 자신에게 속상한 일이 있을 때도 슬프지만, 때로는 드라마나 소설을 읽으면서도 슬픔을 느낍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지만, 또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슬픔’을 느끼려고 영화관을 찾습니다.


가장 흔한 정신장애 중에 하나가 바로 우울증입니다. 전 인구의 30%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또한 우울증만큼 그 사회적 정의가 애매한 장애도 없습니다. 어느 정도의 우울증이 문제가 되는지에 대한 합의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혹은 문화적 논란은 둘째 치고, 같은 정신의학계 내에서도 의견이 아주 다릅니다. 심지어 과연 슬픔이 ‘병든’ 것으로 취급되어야 하는지, 단순히 ‘기쁨’은 좋은 것이고 ‘슬픔’은 나쁜 것인지 등의 논란에 누구도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주인을 잃은 개는 깊은 슬픔에 빠지고는 합니다. 그러면 이 개를 치료해야 할까요? 이제 먹이를 줄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슬픔에 빠진 것일까요? 개의 정신에 대해서는 알 도리가 없지만, 단지 ‘먹이를 줄 사람이 없어서 막막하다’라는 감정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많은 사람 (그리고 동물)이 느끼는 ‘슬픔’이라는 감정은 어떻게 진화했을까요?

 

슬퍼하는 개. 상당수의 동물, 특히 가축화된 동물들은 인간과 비슷하게 슬픔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슬픔은 보통 부정적인 감정으로 간주되지만, 슬픔이 주는 정서적인 이득은 상당하다.  - pixabay 제공
슬퍼하는 개. 상당수의 동물, 특히 가축화된 동물들은 인간과 비슷하게 슬픔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슬픔은 보통 부정적인 감정으로 간주되지만, 슬픔이 주는 정서적인 이득은 상당하다.  - pixabay 제공

슬픔의 진화


좀 오래된 진화심리학 이론에 의하면, 우울감을 ‘도움 요청’의 신호로 보는 가설이 있습니다. 가까운 가족이 죽었다고 해보죠. 그러면 가능한 주변에서 도움을 청해서 위기를 넘겨야 합니다. 원시 사회에서는 가족을 잃는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전쟁이나 기아, 혹은 포식자의 습격과 같은 위험한 일이 있었다는 뜻이고, 한 명의 노동력이 사라지면 생계가 막막해지기도 하기 때문이죠. 그러니 엉엉 울면서 주변에 도와 달라고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러한 이론은 설득력이 약합니다. 실제로 슬픔을 느끼는 사람은 오히려 생존력이 많이 떨어지는데다가, 종종 심각해지면 자살을 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인간은 말을 할 수 있는데, 굳이 ‘우울증’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온 몸으로 도움을 요청할 필요가 있을 리 없습니다. 그냥 도움이 필요하면 ‘이러저러해서 어려우니 도와 달라’고 하면 그만입니다. 물론 슬픔에 가득 차 있으면 좀 더 호소력이 있겠지만, 이득보다 손해가 너무 큽니다.


이른바 사회적 경쟁 가설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위계 질서가 뚜렷한 영장류 사회에서는, 지위가 높은 개체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복종한다는 것이죠. 그 복종심이 내재화된 것이 우울감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들뜬 기분으로 여기저기 나서면’ 공격을 당할 위험이 높아지고, ‘조신하게 시키는 대로 자신을 낮추면’ 안전하다는 것이죠. 일리가 있지만 인간 사회에서 적용이 되는지 의문입니다. 또한 이러한 행동상의 조심스러움을 ‘슬픔’과 동일시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밖에도 여러 진화적 이론이 있지만 명쾌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론이 가지는 공통점은 바로 ‘슬픔’이 건강하지 않은 상태, 즉 부정적 감정이라고 간주한다는 것입니다. 유사 과학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보다 본격적으로 펼칩니다. 심리학자 바바라 프레드릭슨은 심지어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의 완벽한 비율은 2.9’라고 주장한 적도 있습니다. 기쁨이 슬픔의 2.9배일 때, 생존율이 최대화된다는 것이죠. 

 

30세 무렵의 윈스턴 처칠. 윈스턴 처칠은 영국 총리였지만, 동시에 화가이자 노벨문학상을 받은 저술가였다. 그는 평생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그래서 자신의 우울증을 ‘검은 개(Black dog)’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일반적으로 우울증을 극복해서 위인이 되었다고 하지만, 사실 처칠의 다양한 재능은 그의 ‘슬픔’으로 인해 꽃을 피웠을지도 모른다.  - British Government 제공
30세 무렵의 윈스턴 처칠. 윈스턴 처칠은 영국 총리였지만, 동시에 화가이자 노벨문학상을 받은 저술가였다. 그는 평생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그래서 자신의 우울증을 ‘검은 개(Black dog)’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일반적으로 우울증을 극복해서 위인이 되었다고 하지만, 사실 처칠의 다양한 재능은 그의 ‘슬픔’으로 인해 꽃을 피웠을지도 모른다.  - British Government 제공

슬픔의 의미


하지만 ‘슬픔’이라는 감정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 감정으로 봐야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굳이 돈을 내고 슬픈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부정적 감정을 추구하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요? 기쁨과 슬픔은 상반된 감정 반응이지만, 기쁨은 바람직하고 슬픔은 가능한 피해야 하는 것으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아기를 낳고 결혼을 하고 어른이 되고 직장에 들어가면 기쁨을 느낍니다. 그러나 가족이 죽고 배우자와 헤어지고 늙어 병들고 퇴직을 하면 슬픔을 느낍니다. 무엇인가를 잃으면 느끼는 감정이 슬픔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집단심리학과 자아분석>이라는 책에서, 우울의 원인이 바로 ‘대상의 상실’에서 유발된다고 했습니다. 물론 모든 슬픔이 상실된 대상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대상이 사라지면 슬퍼지는 것은 어느 정도 맞는 것 같습니다.


슬픔이 주는 진화적 의미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불안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과 달리 슬픔이 주는 생존상의 이득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명 진화한 감정이니, 적합성을 올리는 어떤 이득이 있었음에 분명합니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주로 ‘슬픔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득을 주었을 것이다’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쁨의 이득에 대해서는 연구 자체가 별로 없습니다. ‘기쁨’은 좋은 것이고, ‘슬픔’은 나쁜 것이라는 기본 전제에서 시작했기 때문이죠.


슬픔은 기쁨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심리적 경험입니다. 슬픔이 심해지면 우울증이라고 하지만, 기쁨이 심해지면 조증이라고 하죠. 즉 특정한 감정의 수준이 너무 심해지면 기쁨이든 슬픔이든 정신 장애라고 할 수 있지만, 단지 ‘슬픈’ 것이 더 ‘나쁜’ 것이라고 속단할 이유는 없습니다.


‘슬픔’은 우리에게 큰 삶의 의미를 줍니다.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될 뿐 아니라, 삶의 목적과 방향이 재설정되며, 모든 관계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기쁨’이 주지 못하는 것들이죠. 어린 시절에는 ‘맛있는’ 초콜릿을 좋아하지만, 어른이 되면 ‘맛없는’ 인삼도 좋아하게 됩니다. 인삼이 몸에 좋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맛없는’ 인삼을 ‘맛있게’ 먹는 것입니다. ‘슬픔’에 대해서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정신적으로 성숙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슬픔을 껴안아야 합니다.

 


에필로그


흔히 주변에 슬퍼하는 사람을 보면서 냉담한 표정을 짓는 분들이 있습니다. 굳이 ‘부정적’인 슬픔을 나누어 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죠. 같이 공감하며 슬퍼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쳐다보기도 합니다. 기쁜 일만 해도 인생이 짧은데, 굳이 남의 슬픔까지 겪으려고 하냐며 핀잔을 줍니다. 그러나 기쁜 일이 있을 때 같이 기뻐하지 못하는 것처럼, 슬픈 일이 있을 때 같이 슬퍼하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일입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 1000일이 지났습니다. 정말 슬픈 일이었습니다만, 함께 슬퍼한 모든 사람들이 귀중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참고문헌
박한선 (2012), 네이버 정신건강 프로젝트- 마음의 소리를 들어라
지그문트 프로이트 (1921), 집단 심리학과 자아 분석(Messenpsychologie und Ich-Analyse)
Cartwright, John (2008), Evolution and human behavior. Cambridge, Mass.: MIT Press.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 병원 정신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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