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구원인가, 또다른 나치즘인가

2013.07.21 17:59

 

외젠 들라크루아의
외젠 들라크루아의 '단테의 조각배'  -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 제공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에 선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단테 알리기에리 ‘신곡’中)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에 나오는 구절로 시작하는 소설. 범상치 않다.

 

  댄 브라운의 최신작 ‘인페르노’는 문학과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오마주를 탄생시킨 신곡에 대한 현대적인 감각의 새로운 오마주다. 기존의 오마주 작품들과는 약간 다른 점이라면 속도감이다.

 

  독자들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것은 모든 작가들의 로망이지만 그런 정도의 글솜씨는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댄 브라운은 손에서 책을 떼지 못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속도가 지나쳐 전체 749쪽을 읽는 내내 롤러코스터를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것 같아 다 읽고 나면 속이 울렁거릴 정도다.

 

  이전에 나온 ‘다빈치 코드’나 ‘천사와 악마’, ‘로스트 심벌’때와는 달리 각 장을 3~4쪽 씩 총 104장으로 구성해, 이제는 대놓고 영화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단테의 신곡을 형식적으로 잘 오마주한 작품이다.

 

  단테의 신곡은 지옥, 연옥, 천국 각 33장씩 짓고, 지옥 앞에 한 장을 추가로 할애해 총 100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더군다나 한 개의 장은 150행 전후로 짧게 써서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단테의 '신곡' 형태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팩션 작가, 과학에 도전하나?

 

 주인공은 이번에도 하버드대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 교수.

 

'다빈치 코드'로 스타덤에 오른 작가 댄 브라운이 멜서스의 인구론과 단테의 신곡을 조합한 새로운 작품을 들고 나왔다. - 교보문고 제공

 이탈리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하나의 암호가 다른 암호와 연결돼 시종일관 독자들과 숨바꼭질을 시도한다. 짐짓 단순하게 보일 수도 있는 구성 방식을 작가는 유명 건축물의 역사와 접목해 흥미롭게 풀어간다.

 

  작가는 랭던 교수를 통해 피렌체의 베키오 궁전, 피티 궁전, 두오모 광장,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산 조반니 세례당,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대성당, 터키 이스탄불의 하기아 소피아 박물관의 역사와 그 속에 들어있는 미술과 미술사에 대해 재미있게 풀어간다. 랭던 교수의 미술사 가이드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예술작품들 설명을 암호와 미스터리와 연결해 엮어가는 솜씨는 역시 명불허전이다.

 

  사실 과학기자로써 스릴러 작가이자 ‘팩션’작가인 브라운을 눈여겨보는 이유는 1998년 ‘디지털 포트리스’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부터 모든 작품에 과학기술 관련 소재가 한 두 개씩은 등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화로 만나 익숙한 천사와 악마에서는 ‘반물질’이, 다빈치 코드에서는 ‘아이작 뉴턴’이 사건을 풀어가는 실마리이거나 줄거리를 관통하는 주요한 소재다.

 

  이번 작품에서는 생물학적 테러가 소재다. ‘흑사병’인 듯 싶지만, 책을 읽어보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심각한 생물학 테러. 이를 위해 단테의 신곡과 멜서스의 인구론을 이용해 작품의 얼개를 교묘하게 짜나간다.

 

  이 때, 문득 든 생각 하나. 과학대중화를 위해 SF까지는 아니더라도 과학기술을 소재로 한 대중소설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어떨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미국의 대표적인 과학대중화 작가 중 하나로 꼽는 아이작 아시모프 박사도 여러 저작들이 있지만, 그를 유명케 만든 것은 ‘로봇 5부작’과 ‘우주 3부작’‘파운데이션 10부작’과 같은 소설들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 1970년대부터 ‘전 국민의 과학화’라는 대중화 운동을 해왔지만, 그만큼 효과가 있었나는 것은 의문이다. 외국에서는 SF 소설이나 과학대중화 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 1위에도 공공연히 오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베스트셀러는 둘째치고 변변한 책도 선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지 않나.

 

● 인구론의 부활인가, 우생학의 부활인가

 

인류 역사상 첫 전업 경제학자인 멜서스는
인류 역사상 첫 전업 경제학자인 멜서스는 '인구론'을 내놔 '경제학은 우울한 학문'이라는 별명을 얻게 만들기도 했다. - 네이버 제공

  이번 작품은 이전 작품보다 더 긴박감 넘쳐 잠시도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렇지만 책을 덮고 난 뒤 불편함 혹은 개운치 않은 기분은 뭘까? 스릴러나 추리소설 등 장르문학에서는 권선징악의 결론이 일반적인데, 이 작품은 요즘 유행하는 열린 결말로 끝나서 일까.

 

  앞서 언급한대로 이 작품은 신곡과 인구론의 교묘한 조합으로 탄생한 팩션이다.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기하급수의 수학이 당신의 새로운 신으로 등극할 거요. 그런데 그 신은 복수의 신이지. 바로 이 뉴욕 한복판에 단테가 말하는 지옥의 풍경이 펼쳐질거라구. 무리를 지은 군중은 자신이 내지른 배설물 속을 뒹굴겠지. 한때 우리가 어머니라고 불렀던 자연, 그 자연이 직접 나선 정화가 시작될거요.”

 

  인페르노의 한 구절처럼 과연 인류는 인구 증가 때문에 멸종이라는 파국으로 치닫게 될까. 그렇다면 소설에서 나온 것처럼 생물학적 테러를 통해 적절히 인구 솎아내기를 해야 인류가 멸망을 피할 수 있는 것일까.

 

  토머스 로버트 멜서스는 1798년, 그의 나이 32세 때 익명으로 발표한 ‘인구의 원리에 관한 소론: 고드윈 씨, 콩도르세 씨 및 기타 저술가의 연구를 논평하면서 장래의 사회개혁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함’, 즉 ‘인구론’으로 유명세를 탔다.

 

멜서스는 인구론을 통해 인구증감을 자연법칙으로 보려 시도했다. 논리전개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현상에 대한 통찰과 비판의식은 아직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 교보문고 제공
멜서스는 인구론을 통해 인구증감을 자연법칙으로 보려 시도했다. 논리전개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현상에 대한 통찰과 비판의식은 아직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 교보문고 제공

  인구론의 핵심은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손을 많이 낳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를 방치할 경우에는 식량 생산이 인구 증가를 따라잡지 못해서 인류는 공룡과 같이 멸망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 때문에 파국을 피하려면 빈민의 인구 증가를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억제 방법에는 전쟁, 기아, 질병처럼 사망률을 높이는 ‘적극적 억제’와 출산율을 낮춰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예방적 억제’가 있는데, 멜서스는 예방적 억제에 더 주목하고 빈민들에게는 결혼을 늦추거나 출산을 자제하도록 교육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론만 보면 사회 불평등을 옹호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또 멜서스의 의도는 그렇지 않더라도, 그의 인구론은 다윈의 진화론과 함께 우생학이라는 치명적인 유사과학을 만들게 한 계기가 됐다.

 

●자연의 정화능력이 전쟁과 재앙?

  아돌프 히틀러의 독일 제3제국에서 유대인과 집시를 포함해 라틴민족 등 아리안민족을 제외한 모든 인종을 제거해야 한다는 ‘최종 계획’이 우생학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최종계획이 실제로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에서 수행된 것은 독일 제국 내 잡종(?)인간들의 증가로 인해 순수(?)인종의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도 그 저변을 이루고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의 독일 제3제국은 아리안민족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아돌프 히틀러의 독일 제3제국은 아리안민족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최종 계획'이라는 이름의 유대인 및 집시, 정신질환자들을 절멸시키려 했다. 최종 계획의 배경은 우생학이라는 유사과학이었다. - 네이버 제공

  사실 인페르노에서 나온 것처럼 자연 스스로 파국을 피하기 위해 개체 수를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다는 주장은 꾸준히 있어왔다. 중세 이후 갑자기 인구가 급증하니까 흑사병 같은 전염병이 돌아 유럽인구를 3분의 1로 줄게 만들고, 서로 전쟁을 일으키거나, 소빙하기 같은 자연변화가 발생해 비정상적인 개체 수를 정상으로 돌린다는 등의 이야기들이다.

 

  개체 수 조절을 위한 자연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할 것이라는 생각은 무척 우울하고, 수동적인 생각이다. 물론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지구온난화와 같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인간의 자유의지가 문제를 일으켰다고 자연의 정화작용을 기다리는 것도 무책임한 행위다.

 

  자유의지가 인류 생존에 문제를 일으켰다면 그 자유의지를 다시 가동시켜 해결책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위기의 시대에 내 일 아니니까라고 ‘멍’하며 중립적인 위치에 있다가는 지옥의 가장 뜨거운 불 구덩이 속으로 던져진다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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