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303] 현대인들에게 수탉의 울음이 필요한 이유

2017년 01월 04일 18:00

일찍 잠자리에 들고 일찍 일어나라. 그러면 건강하고 부유하고 현명해질 것이다.
- 벤저민 프랭클린


2017년 정유년(丁酉年) 새해가 밝았다. 가공할 조류독감유행으로 단군 이래 최대의 시련을 겪고 있는 닭들을 생각하면 올해가 닭띠해라는 게 오히려 얄궂다. 그럼에도 닭띠인 필자는 올해가 새삼스럽다. 십이간지(十二支)에서 그 해가 해당하는 띠라는 건 인생에서 새로운 12년 주기가 시작됨을 뜻하기 때문이다. 물론 1957년 정유년생인 분들은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 즉 새로운 60년 주기를 시작하므로 더 뜻 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주기들은 문화의 유산이다. 즉 동양문화에 관심이 없는 서구권 사람들은 닭띠해가 뭔지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새해맞이라는 1년 주기 행사는 보편적이다(물론 문화에 따라 시작점이 다르기는 하다). 지구의 공전이라는 자연현상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런 자연의 주기성 가운데 대표적인 건 아무래도 지구 자전에 따른 낮과 밤, 즉 하루 24시간 일주기(circadian cycle)일 것이다.


그리고 닭이야말로 일주기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우리 조상들은 매일 새벽 수탉이 홰를 치는 소리에 잠을 깼고 하루를 시작했다. 대다수 사람들이 도시에 거주하는 지금은 잊힌 풍경이 됐지만 닭의 해를 맞아 ‘일주생물학(circadian biology)’ 연구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참고로 지난해 ‘사이언스’(11월 25일자)에 관련 특집이 실렸다.   

 

지구의 자전으로 비롯된 하루 24시간 주기는 많은 생명체에서 생체시계를 진화시켰다. 자연의 주기성에 최적화할 수 있게 진화된 생체시계가 외부환경으로 교란될 경우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 사이언스 제공
지구의 자전으로 비롯된 하루 24시간 주기는 많은 생명체에서 생체시계를 진화시켰다. 자연의 주기성에 최적화할 수 있게 진화된 생체시계가 외부환경으로 교란될 경우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 사이언스 제공

위상은 바꿔도 주기는 못 바꿔


지구 자전에 따른 낮과 밤의 주기적 순환은 빛을 감지하거나 이용하는 생명체 모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실제 25억 년도 더 된 아득한 옛날 등장한 시아노박테리아도 24시간에 적응한 생체시계를 지니고 있다. 생체시계 유전자 발견 과정을 봐도 이런 보편성이 느껴진다.


1971년 미국 칼텍의 시모어 벤저 교수팀은 24시간 일주리듬을 잃어버린 돌연변이 초파리를 만들어 이를 ‘피리어드(Period, 줄여서 Per)’라고 불렀다. 1984년 Per초파리에서 고장 난 유전자를 찾았고(자연스럽게 Per유전자라고 명명됐다), 1997년 생쥐와 사람에서도 여기에 해당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7억 년 전 공통조상에서 갈라진 무척추동물과 척추동물이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1994년 하루 28시간 주기를 보이는 돌연변이 생쥐가 나왔다. 생체시계가 고장 난 이 생쥐에게 연구자들은 ‘클럭(Clock)’이라는 이름을 붙여줬고 3년 뒤 Clock유전자가 밝혀졌다. 이번엔 거꾸로 초파리에서 해당 유전자를 찾았고 물론 발견했다.


21세기 게놈시대를 맞아 생체시계 유전자 연구도 급진전했고 이제 생체시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그림이 완성됐다. 즉 Per단백질이 Cry단백질과 짝을 이룬 한 편과 Clock단백질과 Bmal1단백질이 짝을 이룬 한 편이 상호작용하면서 24시간 리듬이 생긴다. 그리고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시신경교차상핵(SCN)에서 인체의 일주리듬을 관장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편 우리 몸에 있는 모든 세포는 자체의 생체시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인체는 중앙정부의 입김이 센 지방자치제로 운영되는 셈이다.


SCN에 자리한 핵심 생체시계의 놀라운 점은 알아서 움직이는 데 있다. 즉 빛의 정보가 차단된 곳에서 지내도 생쥐나 사람은 24시간에 가까운 일주리듬을 유지한다. 그리고 생체시계는 고집이 세다. 인공조명으로 하루 주기를 줄이거나 늘리면(예를 들어 20시간이나 28시간으로) 거기에 맞춰 생체시계가 조절될 것 같지만 결코 적응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낮과 밤의 시간대가 바뀌는 경우는 생체시계가 결국은 따라서 맞춘다. 시차가 꽤 나는 유럽이나 미국으로 여행을 갈 경우 며칠이 지나면 시차를 극복할 수 있는 이유다. 즉 생체시계를 사인함수 y=sin(ax+b)(여기서 x는 일)로 표시할 경우, b를 달리해 위상(시차)을 바꿀 수는 있어도 a는 2π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즉 오랜 기간 하루 24시간의 주기에 맞춰 진화한 생체시계는 생명체가 예상 가능한 주변의 주기성에 맞춰 몸의 기능을 최적화하는 수단인 셈이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생명체가 과학기술을 지나치게 발전시켜 자연의 순리에 거스르게 되면서 생체시계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시련을 맞고 있다. 시차가 있는 곳으로의 해외여행이야 흔치 않은 일이므로 별 문제가 아니지만 하루 24시간 생활 자체가 갈수록 뒤죽박죽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주생물학 연구결과는 자신의 생체시계를 무시하는 인류의 이런 행태가 결국은 스스로를 망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언제 먹느냐가 문제일수도 있다. 똑 같은 양의 고지방 사료를 먹어도 활동시간대(밤. 쥐는 야행성)로 먹는 시간을 제한한 쥐(왼쪽)는 그런 제한이 없는 쥐(오른쪽)보다 날씬하다. - Joe Belcovson/소크연구소 제공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언제 먹느냐가 문제일수도 있다. 똑 같은 양의 고지방 사료를 먹어도 활동시간대(밤. 쥐는 야행성)로 먹는 시간을 제한한 쥐(왼쪽)는 그런 제한이 없는 쥐(오른쪽)보다 날씬하다. - Joe Belcovson/소크연구소 제공

사회적 시차의 만연


요즘 사람들 가운데는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도 아닌데 시차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사회적 시차(social jetlag)이라고 부른다. 교대근무를 하는 사람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경기불황으로 밤새 돌아가는 공장은 줄었지만 대신 24시간 식당이나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처럼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사회적 시차는 만연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주말 시차’다. 즉 주말에는 자고 깨는 시간이 서너 시간 뒤로 밀리고 주중에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는 1주일 단위의 교란이 만성화된 경우다. 또 많은 사람들이 자연의 주기에서 몇 시간 밀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즉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또는 늦게 자고 출근 때문에 아침에 억지로 깨는) 생활습관이 몸에 배었다. 도시에서 애완용 수탉을 키울 수 없는 이유다. 실제 도올 김용옥 교수는 수년 전 수탉을 키우다 동네 사람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회적 시차로 생체시계가 교란된 생활을 지속하면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특집에 실린 리뷰논문들에 따르면 다양한 문제들이 생기고 이는 오늘날 만연한 질병들로 나타난다. 먼저 인체생리에 미치는 영향을 보자. 예를 들어 비만이나 당뇨는 단순히 칼로리나 당분의 과잉섭취가 원인이 아니라는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다.


지난 2013년 학술지 ‘비만’에 발표된 다이어트 임상결과를 보면 칼로리를 똑같은 양 줄여도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저녁을 가볍게 먹은 그룹이 아침을 가볍게 먹고 저녁을 든든하게 먹은 그룹보다 몸무게가 훨씬 더 많이 줄었다.

 

또 같은 칼로리를 하루 내내 분산해 먹는 것보다 하루 10시간 이내에 먹어치우는 경우 다이어트 효과가 크고 수면의 질도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즉 저녁을 일찌감치 먹은 뒤 다음날 아침까지 일체 음식을 먹지 않을 수만 있다면 배불리 먹어도 살찔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의 생활습관을 조사한 결과 절반은 음식을 먹는 시간 범위가 하루 15시간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야식을 먹는다는 얘기다.


이처럼 음식을 먹는 시간대에 따라 몸의 생리반응이 다른 건 대사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상당수가 생체시계의 지배를 받아 주기성을 띠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음식을 제때 먹으면 혈당이 오른 뒤에 곧 떨어지지만 야식을 먹으면 혈당이 올라간 뒤 오랫동안 유지되는 고혈당증이 나타난다. 이는 밤에 분비되는 수면호르몬인 멜라토닌이 췌장의 인슐린 분비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생체시계는 밤에 음식을 먹을 일이 없다고 상정하고 몸의 생리기능이 최적화되게 세팅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놀랍게도 식습관의 교란은 비만뿐 아니라 암발생 위험성도 높인다. 다른 암들 대부분인 정체기에 들었음에도 유방암은 여전히 증가세이고 특히 젊은 여성에서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데 이런 식습관도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하루 13시간 이상 금식할 경우 유방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고 유방암 환자의 경우도 예후가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각종 알레르기나 자가면역질환 등 면역계 관련 질환에 시달리고 있는데 여기에도 생체리듬 교란이 관련돼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면역에 관여하는 유전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일주리듬을 보이고 있는데, 사회적 시차를 겪는 사람들의 면역계에서는 이 리듬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면역계의 활성이 일주리듬을 보이는 이유 역시 낮과 밤에 따른 활동성의 차이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면역계는 양날의 검이기 때문에 너무 지나치면 우리 몸도 다친다. 그렇다고 너무 약하게 맞춰놓으면 외부의 침입에 대응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 몸은 다양한 면역 수단을 하루 24시간 주기에 맞춰 고루 나눠 배치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런데 생체시계가 교란돼 이런 대응수단들이 한꺼번에 작동될 경우 과잉면역으로 만성염증이 생길 수 있고 심하면 패혈증 같은 면역쇼크가 일어날 수도 있다.

 

최근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는 파란빛의 발생을 줄여 생체시계 교란을 완화할 수 있는 모드가 도입되고 있다. - LG전자 제공
최근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는 파란빛의 발생을 줄여 생체시계 교란을 완화할 수 있는 모드가 도입되고 있다. - LG전자 제공

수면장애, 신경퇴행성질환의 결과에서 원인으로


대사질환과 면역질환과 더불어 오늘날 환자수가 급증하는 또 다른 질병이 알츠하이머병 같은 신경퇴행성질환이다. 물론 고령화로 수명이 늘어난 게 주된 이유겠지만 그 배경에는 역시 생체시계 교란이 있다. 신경퇴행성질환 환자들이 흔히 보이는 증세가 수면의 질 저하다. 뇌회로가 점차 망가지는 과정이므로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수면의 질 저하가 오히려 신경퇴행성질환의 주요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즉 많은 환자에서 증세가 나타나기 오래 전부터 수면장애가 선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운동신경조절장애인 파킨슨병도 대부분 수면장애가 선행된다. 즉 렘수면행동장애를 보이는 사람의 80% 이상이 결국은 파킨슨병이 발병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렘수면행동장애란 흔히 꿈을 꾸는 렘수면 동안 근육이 마비되지 않고 따라 움직이는 경우로, 버둥대다가 본인은 물론 옆에서 자는 사람도 다칠 수 있다.


이처럼 수면장애가 만성화될 경우 신경퇴생성질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수면이 부족할수록 뇌에 변이단백질아 더 많이 더 빨리 축적되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병은 아밀로이드단백질과 타우단백질, 파킨슨병은 시누클레인단백질, 헌팅턴병은 헌팅턴단백질이 관여한다.


물론 이런 수면장애의 주원인이 생체시계 교란이다. 생체시계의 주요 유전자인 Bmal1이 고장 난 생쥐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이상 가운데 하나가 사람의 신경퇴행성질환에 해당하는 증상인 이유다. 한편 Bmal1이나 Clock 유전자의 단일염기다형성(SNP)을 조사한 결과 특정 변이형을 지닌 경우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에 걸릴 위험성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한편 실험동물에게 수면이나 먹이를 먹는 시간대를 늦추는 사회적 시차를 겪게 하면 학습과 기억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뇌세포의 염증수치가 올라가 있고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에서는 신경생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실 동물실험 결과가 아니더라도 이런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데 우리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주리듬과 관련해 21세기 들어 밝혀진 연구결과들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나름의 해결책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SCN의 생체시계는 외부 빛의 신호에 맞춰 시간을 조절한다. 그런데 10여 년 전 밝혀진 메커니즘에 따르면 망막에 있는 멜라놉신이라는 제3의 광수용체가 파란빛을 감지해 이 일을 한다. 따라서 밤에 일을 하더라도 파란빛에 노출되는 걸 최소화하면 사회적 시차 영향을 줄일 수 있다. 최근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 ‘파란빛 감소 모드’가 도입되는 것도 그런 예다.


앞으로 이 분야의 연구가 더 진행될 경우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생체시계 교란으로 인한 건강 문제를 해결하는데 생활패턴을 자연의 일주리듬에 맞추는 것 외에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어디 여행이라도 가서 새벽 닭 울음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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