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사라진 과학계 별들](16) 극저온에서 새로운 물질 상태를 구현한 데보라 진

2016년 12월 31일 15:00

지난 네 해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필자는 ‘과학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제목으로 그해 타계한 과학자들의 삶과 업적을 뒤돌아봤다. 어느새 2016년도 달력도 마지막 달만 남았다. 올 한 해 동안에도 여러 저명한 과학자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번에도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이들을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과학저널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부고가 실린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네이처’에는 ‘부고(obituary)’, ‘사이언스’에는 ‘회고(retrospective)’라는 제목의 란에 주로 동료나 제자들이 글을 기고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했다.


올해 ‘네이처’에는 20건, ‘사이언스’에는 8건의 부고가 실렸다. 두 저널에서 함께 소개한 사람은 7명이다. 결국 두 곳을 합치면 모두 21명이 된다. 이들의 삶과 업적을 사망한 순서에 따라 소개한다. 지난 1월 24일 작고한 마빈 민스키의 경우는 1월 27일자 동아사이언스 기사로 대신한다.

 

 

★ 데보라 진 (1968. 11.15 ~ 2016. 9.15) 극저온에서 새로운 물질 상태를 구현한 실험물리학자

 

데보라 진. - 콜로라도대 제공
데보라 진. - 콜로라도대 제공

이론적으로 최저 온도인 절대0도보다도 불과 수백만 분의 1도 높은 극저온을 구현해 이때 나타나는 물질의 기이한 특성을 연구해온 물리학자 데보라 진(Deborah Jin)이 한창 나이인 48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196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린스턴에서 물리학자 부부의 딸로 태어난 진은 생물을 공부하려고 했지만 동물해부를 견디지 못해 프린스턴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공부에 시큰둥하던 진은 방학 때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인턴을 하며 물리학자들이 연구 모습을 지켜보고 물리학에 진지하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시카고대에서 초전도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95년 미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의 에릭 코넬 교수팀에 박사후연구원으로 합류한다. 진이 오기 수개월 전 코넬 교수팀과 그의 스승이자 동료인 칼 위먼 교수팀은 이론이 나온 지 70년 만에 루비듐원자로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상태를 극저온에서 실현하는데 성공했다.

 

즉 1925년 인도의 물리학자 사티엔드라 보스와 아인슈타인은 광자(빛알갱이)처럼 스핀이 정수인 입자인 보손이 무리지어 있을 때 보이는 현상을 설명하는 ‘보스-아인슈타인 통계’이론을 완성했다. 이에 따르면 극저온에서 동일한 양자상태(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의 보손 입자들이 하나의 거대한 입자처럼 행동한다. 두 사람은 이 업적으로 200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2년 동안 코넬 교수의 실험실에서 극저온 기술과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상태에 대한 측정 연구를 진행한 진은 1997년부터 자신의 실험실을 운영하며 새로운 물질 상태를 만드는 연구에 착수했다. 즉 페르미온 응축 상태다.

 

페르미온은 전자나 양성자처럼 스핀이 반(半)정수인 입자로 두 입자가 같은 양자상태에 놓일 수 없다. 즉 파울리의 배타원리를 따른다. 많은 양성자, 중성자, 전자로 이루어진 원자가 입자 하나의 차이로 보손이 되기도 하고 페르미온이 되기도 하는데 그 결과 전혀 다른 거동을 보인다는 게 바로 양자역학의 기괴한 면이다.

 

데보라 진은 교묘한 방법으로 페르미온인 칼륨40 원자의 에너지를 극도로 낮춰 극저온을 만든 뒤 원자들을 접근시켜 페르미온 분자(두 원자가 화학결합을 한 진짜 분자는 아니고 강하게 상호작용하는 쌍이다)가 보손처럼 행동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즉 2003년 페르미온 응축 상태를 구현한 것이다. 최근에는 두 원자로 이뤄진 진짜 분자로 극저온의 화학반응을 연구하고 있었다. 즉 극저온의 양자화학으로 연구의 지평을 넓히던 참이었다.

 

‘네이처’ 10월 20일자에 실린 부고를 쓴 세 사람 가운데 이론원자물리학자 존 본(John Bohn)은 진의 남편이다. 두 사람은 대학원시절 만나 결혼했고 같은 연구소에서 일하며 공동연구도 많이 했다. 천재 여성 과학자의 때 이른 죽음이 더 안타까운 이유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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