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출연硏 맏형 ‘KIST’가 턱걸이로 ‘최우수’ 평가 받은 사연

2016.12.28 21:14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내부 풍경 - KIST 제공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내부 풍경 - KIST 제공

최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평가’를 놓고 과학계 내부에서 여러 이야기가 오갑니다.

서울 홍릉에 자리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최근 자체평가 결과 ‘최우수’ 등급을 받았는데, 미래창조과학부가 상급평가 과정에서 이를 반려하고 다시 되돌려 보내 화제가 됐지요.

 

과학계 내부에선 여러 추측이 돌았습니다. 최우수 평가를 주면 기관장이 연임을 승인해야 하는데 이를 마땅치 않게 여긴 미래부가 일부러 기관평가 점수를 나쁘게 준 것 아니냐는 겁니다. 한 편에선 ‘정부부처의 출연연 길들이기 아니냐’는 소리도 나옵니다.

 

전후사정을 잘 모른 채 여기까지 듣고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자체평가라는 말은 ‘스스로 평가했다’는 뜻일 겁니다. 상급기관인 미래부가 이를 재고하고 다시 돌려보낼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은 사실 당연해 보입니다. 하지만 ‘공정한 심사결과를 되돌려 보내다니, 어딘가 석연치 않아 보인다’는 현장의 목소리도 설득력이 있어 보이긴 합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미래부는 27일 저녁 ‘즉시보도’라는 꼬리표를 달아 오후 늦게 보도자료를 한 편 내 보냈습니다. 자체평가에서 최우수를 받았던 KIST에 원래 그대로 ‘최우수평가’를 준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지요. 미래부는 왜 이런 복잡한 절차를 밟았던 것일까요. 과학계 여러 인사들이 가진 의혹은 과연 사실이었을까요?

 

● 기관평가가 뭐길래?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란 정부가 비용을 출연해 설립한 연구소를 말합니다. 보통 미래부 산하 25개 연구기관에 대해 출연연이란 이름을 쓰지요. 굳이 ‘출연연’이란 이름을 쓰진 않지만 방위사업청 산하의 국방과학연구소, 해양수산부 산하 3개 연구기관, 10여개의 미래부 직속 연구기관, 원자력안전위원회 산하 1개 기관도 거의 같은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정부가 설립했다고 운영마저 공무원이 직접 하지는 않습니다. 과학기술 분야 연구기관이다보니 전문성 있는 운영진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보통 과학계 인사들로 구성된 이사회를 설립하고, 이사회 의결로 기관을 이끌 원장을 임명합니다.

 

하지만 정부가 지속적으로 출연연의 운영을 지켜볼 의무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설립 목적에 따라 연구를 올바르게 하고 있는지, 해마다 투입되는 많은 연구비에 합당한 성과를 내고 있는지를 계속 확인해야 하지요. 이를 객관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기관평가’라 부르는 것을 시행하는 겁니다.

 

기관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수록 연구기관은 이듬해 운영비와 지원연구비 등을 많이 받게 됩니다. 당연히 연구기관은 되도록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노력하겠지요. 특히 최우수평가를 받게 되면 기관장의 연임이 가능하도록 돼 있습니다.

 

문제는 기관평가 체제가 계속해서 변해 왔다는데 있습니다. 먼 과거에는 1년에 한 번씩 기관평가를 시행했지요. 일률적인 기준을 정해 놓고 모든 연구기관이 같은 방식으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러다 보니 연구기간이 오래 걸리는 기초과학분야 연구기관, 많은 연구비를 투자해야 하는 원천기술 연구기관은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같은 연구비를 투자하더라도 더 빨리, 더 높은 사업화 실적을 낼 수 있는 산업이나 응용과학 분야 연구기관은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기 유리했으니까요.

 

이렇게 계속 평가제도가 변하다가 2000년대 들어 ‘연구평가는 3년마다 연구기관의 특성에 맞게 시행하고, 모든 기관은 1년마다 경영평가를 받는다’는 체제가 굳어졌지요. 과거보다 나아진 제도이긴 합니다만, 평가 기간이 길어졌을 뿐 기존 약점을 그대로 안고 있는 제도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기관장의 임기 체계와 맞지 않는다는 단점도 생겨났습니다. 새 기관장이 와도 기존에 굳어진 3년의 연구평가에 맞추려면 새로운 연구를 의욕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웠던 것이죠. 기관을 이끌 기관장이 연구과제를 뜻대로 펼 수 없어 권한이 크게 줄었던 겁니다.

 

● 2013년 ‘신(新) 평가제도’ 출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13년 평가제도를 또다시 변경하고 ‘종합평가’ 제도를 도입합니다. 기관장이 새로 선임되면 자신이 임기 동안 어떤 일을 할지 미리 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그 계획서를 얼마나 충실히 이행했는지에 따라 평가를 내리는 방법이지요.

 

이 방법대로 하면 기관장은 새로운 연구를 의욕적으로 추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기관을 잘 이끌었는지로 평가받기 때문에 기관 운영에 열성을 다하게 되지요. 또 매년 받던 평가가 사라지니 해마다 평가를 위해 쏟아붓던 행정 부담도 크게 줄어드는 장점이 있습니다. 연구 현장으로부터도 좋은 방식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답니다.

 

그리고, 다시 3년이 지났습니다. 2013년 새로 기관장을 뽑았던 연구기관은 이제 2016년말이 됐으니 기관장의 계획에 따라 올바르게 기관을 운영했는지 평가를 받을 시기가 된 거지요.

 

‘미래부가 왜 최우수평가를 반려 했느냐’고 말이 많았던 KIST도 지난 3년간 이 제도에 따라 이병권 현 원장이 기관을 운영해 왔습니다. 물론 비슷한 시기에 기관장을 뽑은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과 한국철도기술연구원(철도연), 국가보안기술연구소(보안연), 방위청 산하 국방과학연구소(ADD) 등도 모두 함께 평가를 받게 됐지요.

 

이 기관평가는 기관장 임기종료를 3~4개월 정도 남겨둔 상태에서 모두 마치게 돼 있습니다. 그 결과는 27일 보도가 나간대로 KIST 최우수, 천문연 및 ADD 우수, 철도연 및 보안연 ‘보통’ 이었습니다.

 

기관평가는 두 단계를 거치게 돼 있습니다. ‘자체평가’와 ‘상급평가’로 나뉩니다. 오해가 발생한 부분은 ‘자체평가’입니다. 흔히 이름을 듣고 기관 스스로 평가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사실 중간에 평가기관이 하나 더 있습니다. 실제로 평가는 KIST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25개 출연연의 지원기관인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연구회)’에서 진행하는 거죠.

 

평가는 공정해 보였습니다. 연구회는 자체평가를 9~10월 사이에 진행했습니다. 연구회 관계자는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10명 정도의 평가위원회를 구성해 평가했고, 정부가 정한 항목에 따라 꼼꼼하게 평가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정도 평가를 거쳤으니 KIST의 ‘최우수’ 평가는 별다른 이견이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미래부는 11월 한 달 간 상위평가를 진행하고 “KIST와 철도연의 평가 결과에 재평가가 필요하다”며 “자체평가 위원회를 다시 소집해 재평가를 통해 보완하라”고 요청했습니다.  상급평가는 직접적인 기관평가가 아닙니다. 다만 ‘평가 자체를 올바르게 했는가’를 살펴보는 평가, 즉 평가에 대한 평가지요. 그 결과 미래부는 12월 8일 “두 개 기관의 평가 자체를 다시 해 보라”고 돌려보내게 됩니다.

 

연구회 측은 “8일 통고를 받고 지적 사항을 반영해 즉시 재평가를 시작했다”면서 “그 결과 몇 가지 항목에 대한 세세한 점수 변화는 있지만, 전체 평점에 큰 변화가 없어 다시 KIST 최우수, 철도 보통 등급으로 나온 재평가 결과를 미래부에 제출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 “미래부가 직접 평가하는 일은 없어”

 

일부 언론은 “이번 KIST 재평가 요구는 미래부가 직접 기관평가를 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하가도 했습니다. 그러나 미래부 측은 이번 평가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는 점을 두고 ‘의아하다’는 반응입니다. 미래부 관계자는 “평가 과정에서 보다 중요한 과정을 다시 점검해 보라는 의미에서 돌려 보낸 것이고, 재평가 결과에서도 총점은 크게 변화가 없어 그대로 최우수 평가를 내린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자체평가 관련부서에 근무하는 한 연구회 관계자는  “미래부 상급평가를 통해 받은 어떤 서류에서도 미래부가 직접 점수를 기입하는 항목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차세대 융복합소재기술 개발’ 이라는 평가 지표가 있다고 치면, ‘이 연구는 산업화가 중요한데, 연구회는 산업체와 소통 협력이 미흡하다고 평가를 내렸다. 그런데도 전체적으로 A 평가가 나온 것이 이상하다. 그러니 기준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라’는 식으로 평가 자체에 대한 의견이 내려온다는 뜻입니다.

 

미래부 관계자는 “상급평가가 평가위원들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것이라는 말도 나오지만, 역할은 명백하게 나누어져 있다”며 “평가 시스템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 벌어진 해프닝으로 보인다”고도 말했습니다.

 

실제로 미래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상급평가를 실시했고, 어떤 의도에서 다시 재평가 결과를 받아 들였는지는 미래부의 평가담당관만이 알 수 있을 겁니다. 정부의 잦은 평가기준 변경에 지친 현장 과학자들의 쌓인 화도 이런 여론이 나오는데 한 몫 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기관평가가 절차상 하자가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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