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차벽, 적인줄 알았더니 동지? 100만 군중 안전하게 대피하려면

2017.01.12 09:00

1분 요약
● 차벽을 광화문 광장의 가장자리가 아닌 내부에 설치하면, 촛불집회 현장에서 대피 시간을 최대 8%까지 줄일 수 있다.
● 보행자의 흐름을 시뮬레이션하는 ‘셀룰러 오토마타’ 기법은 사람을 바둑알로, 공간을 바둑판으로 설정해 단위 시간 뒤 사람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방법이다.
● 대피 상황에서 군집행동을 일으키는 사회적 이끌림을 ‘사회 장’이라고 한다. 보행자 움직임을 예측할 때 사회 장을 얼마나 잘 반영했는지가 정확도를 결정한다.

 

동아일보 D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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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지난해10월 29일부터 매주 열리고 있습니다(2016년 12월 19일 기준). 거리에는 촛불을 든 시민들과 함께 경찰버스를 이용한 ‘차벽’ 역시 매주 등장합니다. 차벽이 설치되는 주된 이유는 집회를 하는 사람들이 신고한 집회 장소 이외의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데요. 차벽 설치가 ‘위헌이다’, ‘집회의 진행을 과도하게 막는다’는 지적은 매번 있었습니다. 그래서 차벽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차단하는 존재로만 인식돼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 과학자가 “차벽을 잘만 설치하면 혹시 모를 위험 상황에서 좀 더 안전하게 대피로를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나섰습니다.

 

동아일보 D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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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기적처럼, 인파를 두 갈래로 가르는 장애물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서로 못 잡아 먹어 안달이던 오나라와 월나라의 사람이 함께 배를 타고 가다가 강풍을 만나, 서로 힘을 합쳐 그 위기를 넘겨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어려운 상황을 만나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됐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차벽과 시민이 오월동주하기 위해서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설치하면 안 된다는 것이죠. 지금까지는 광화문 광장을 둘러싸는 형태로 차벽이 설치돼 왔습니다. 좌우로 빠질 수 있는 큰 길들은 열어 뒀지만, 길 중간에 위치한 경찰버스 때문에 폭이 매우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매우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지난해 11월 24일 광화문의 최적 대피 경로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한 권석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나노포토닉스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차벽을 잘못 설치해서 그렇다”며 “차벽을 광장 내부에 설치하면 시민들이 대피하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발 디딜 틈 없는 광장 안에 장애물을 설치하라니, 여기서부터 의아해지기 시작합니다.


권 선임연구원은 “광화문 광장이 비정방형인 것과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다. 정사각형이나 원이 아니라 직사각형이나 타원과 같은 비정방형은 관성이 존재합니다. 즉, 한 쪽 방향으로 쏠림이 더 심합니다. 광화문 광장은 긴 축이 되는 광화문 방향의 쏠림이 존재하고 동서축에 비해 남북축에 더 많은 대피로(빠져나갈 수 있는 길)가 있습니다. 때문에 광화문으로 움직이는 행렬을 좌우로 나눠줄 장애물이 필요합니다.


차벽의 수와 배치 간격도 대피 시간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권 선임연구원은 광화문에 모인 사람을 입자로 표현한 뒤 광화문 광장을 아주 작은 단위의 공간(셀)으로 쪼갰습니다. 바둑판과 바둑알에 비유할 수 있겠네요. 이런 시뮬레이션 방법을 ‘셀룰러 오토마타’라고 합니다. 사람들의 행동 방향이나 정보의 전파 등을 셀 단위로 모사하는 방법이죠. 이 방법으로 광화문 광장에서 빠르고 신속하게 대피하도록 도와주는 차벽을 설치해 보겠습니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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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1 사람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라


사람들의 행동을 어떻게 예측할까 싶지만, 의외로 우리의 행동은 몇 가지 규칙으로 설명됩니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의 더크 헬빙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인간의 보행은 몇 가지 특징을 보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을 몇 가지 나열하면, ‘보행자는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할 때 가고자 하는 방향이 혼잡하더라도 우회하거나 반대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목적지까지 가는 대체 경로가 동일한 거리라면, 가던 방향으로 최대한 길게 가려고 한다’, ‘시간 안에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 더 속도를 내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최대한 개인이 편안한 속도를 지키려고 한다’, ‘서로 친분이 없다면 가능한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이동한다’ 등이 있습니다. 납득이 되는 특징들이죠. 이런 보편적인 보행 특징들을 가지고 보행자의 움직임을 예측합니다.


하지만 대피를 해야 할 만큼 긴급한 상황, 전형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움직임도 분명히 있습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오차를 줄이고자 연구자들은 셀의 크기를 가능한 작게 만듭니다. 권 선임연구원의 경우 셀의 크기를 사람이 독립적으로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인 0.25m2(0.5m×0.5m)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권 선임연구원은 “셀의 크기가 작아진다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는 의미로 통계학에서는 다수의 법칙이라고 한다”며 “마치 해상도가 높은 화면처럼 보고자 하는 현실을 더 정확히 볼 수 있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인파가 몰리는 콘서트장이나 블랙프라이데이 때의 쇼핑몰의 경우 압사와 같은 재난 상황이 발생하기 쉽다. 이런 장소 역시 최적화된 대피로 설계가 중요하다. 오른쪽은 인파가 몰리는 곳에서 찍힌 CCTV 영상을 바탕으로 패턴인식을 한 결과다. - YG엔터테인먼트, Arianna Bottinelli 제공
인파가 몰리는 콘서트장이나 블랙프라이데이 때의 쇼핑몰의 경우 압사와 같은 재난 상황이 발생하기 쉽다. 이런 장소 역시 최적화된 대피로 설계가 중요하다. 오른쪽은 인파가 몰리는 곳에서 찍힌 CCTV 영상을 바탕으로 패턴인식을 한 결과다. - YG엔터테인먼트, Arianna Bottinelli 제공

STEP 2 과거 재난 상황의 데이터를 분석하라


대피 상황에서 정말 중요한 요소는 주변 사람들의 행동입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갑자기 한 사람이 소리를 지르면서 한쪽 방향으로 뛰어간다고 생각해봅시다. 평소의 이성적인 나라면 뛰어온 곳을 쳐다보며 원인을 파악하고 가장 가까운 출구를 찾겠죠. 하지만 뛰어가는 사람이 둘이 되고, 셋이 되면서 하나의 장(field)을 이루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피로의 위치와 상관없이 그들의 흐름에 동참하게 됩니다. 헬빙 교수는 저서 ‘복잡성과 시스템 과학 백과사전’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패닉 상황에서는 순간적인 관심에 의해 많은 것이 결정된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행동은 쉽게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군집행동은 한 곳에 사람이 과하게 몰리거나 탈출을 지연시키는 등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대피동역학에서는 이런 군집행동을 유발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사회 장(Social Field, Social Force)’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쿠르트 레빈이 제안한 개념으로, 행동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이끌림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집단의 크기가 클수록 또 거리가 가까울수록 영향을 많이 받게 되죠. 보행자 흐름을 시뮬레이션할 때 적용하는 수학 모델에는 사회 장과의 관계를 반드시 정의합니다. 권 선임연구원은 “보행자의 움직임과 사회 장의 관계가 지수함수를 따를지 로그함수를 따를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그래서 과거 재난 현장의 정보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객관적인 자료는 CCTV 데이터입니다. 단순히 재난 상황만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대조군이 되는 평상시의 모습을 찍은 CCTV 자료도 필요합니다. ‘재난’을 하나의 변수로 놓고 그 외의 모든 변수, 예컨대 시간대가 출퇴근 시간인지 아닌지, 휴일인지 아닌지 등을 면밀히 통제한 뒤 어떤 요소가 중점적으로 바뀌는지를 계산합니다. 권 선임연구원은 “CCTV 속 사람들을 패턴인식한 뒤 수식으로 모델링하는 작업이 흐름을 예측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과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권석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선임연구원은 광화문 광장을 세로 562m, 가로 82m 직사각형으로 설정해, 13만 명이 모였을 때를 기준으로 차벽에 따른 대피 효율을 시뮬레이션 했다. 대피를 시작한 지 5초가량 지나면 대피로를 경계로 그룹이 생긴다. n개의 대피로가 있을 때 1/n만큼의 인원이 고르게 그룹을 만드는 것이 가장 최적화된 대피로다. - 자료 권석준, 과학동아 제공
권석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선임연구원은 광화문 광장을 세로 562m, 가로 82m 직사각형으로 설정해, 13만 명이 모였을 때를 기준으로 차벽에 따른 대피 효율을 시뮬레이션 했다. 대피를 시작한 지 5초가량 지나면 대피로를 경계로 그룹이 생긴다. n개의 대피로가 있을 때 1/n만큼의 인원이 고르게 그룹을 만드는 것이 가장 최적화된 대피로다. - 자료 권석준, 과학동아 제공

STEP 3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의 대피로를 설계!


완성된 수식을 통해 시뮬레이션을 할 차례입니다. 광화문 광장 가운데에 차벽을 설치하는 방법을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눴습니다. 광화문 광장의 세로 길이를 562m로 설정하고 각각 차벽을 5개 설치(A), 4개 설치(B), 중간에 틈이 없이 연속적으로 설치(C), 11개 설치(D), 10개 설치(E)했다고 가정했습니다.


그 결과 대피 상황에서의 ‘골든 타임’이라고 불리는 초반의 대피 효율이 눈에 띄게 향상됐습니다. 초기 1분 동안 효율이 가장 많이 향상된 경우는 차벽을 촘촘하게 10개 설치하되, 광장의 양 끝 단에는 차벽을 설치하지 않은 경우(E)였습니다. 차벽을 설치하지 않았을 때보다 효율이 약 8% 증가했습니다. 권 선임연구원은 “인구밀도가 높은 초기 골든 타임에는, 진행을 가로막는 장애물로서의 단점보다 대피로로 안내해주는 가이드로서의 장점이 더 크게 작용한다”며 “100만 명 이상이 모인 집회인 만큼 차벽을 적절히 설치하고 유도등과 같은 안전대비 장치를 하면 초기 대피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대피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어떻게 개발할까


대피 상황을 시뮬레이션 하는 소프트웨어는 많이 개발돼 있습니다. 미국 국가표준기술위원회(NIST)에서 개발한 ‘BFIRES-Ⅱ’가 대표적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철민 서울시립대 공간정보공학과 교수팀이 개발하고 있는데요. 올해 ‘EgresSIM’이라는 이름으로 프로그램을 등록했습니다. 전 교수의 프로그램은 유전자 알고리즘에 기반합니다. 유전자 알고리즘은 최적화 탐색 방법 중 하나로, 생물이 교배하는 일련의 규칙을 적용해 최적의 해를 찾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방이 8개, 출구는 3개(A,B,C)라 하고, 각 방에 임의로 대피로를 지정한 뒤 마치 유전자를 조작하듯이 섞어줍니다. 방의 순서대로 (AABBCABC), (AABCABBC) 등과 같이 대피로가 설정돼 있을 때 절반씩 나눠서 섞어주는 식입니다. (AABBABBC), (AABCCABC)가 되겠죠. 이런 식으로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만들고, 대피 시간이 짧은 일부 상위 유전자들끼리 다시 같은 알고리즘을 반복하는 식입니다. 전 교수는 “실제 서울시립대에 설치한 센서가 실시간으로 보내주는 데이터를 이용해 건물에서 최소 시간에 대피하는 방법을 개발했다”며 “정확한 공간 모델과 실시간 인원을 파악할 수 있다면 광화문 광장과 같은 실외 공간에서도 정확한 대피로를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도움 | 전철민 서울시립대 공간정보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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