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사라진 과학계 별들](13) 11년 만에 지구에서 천연두를 추방한 의사 도널드 헨더슨

2016.12.28 09:00

지난 네 해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필자는 ‘과학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제목으로 그해 타계한 과학자들의 삶과 업적을 뒤돌아봤다. 어느새 2016년도 달력도 마지막 달만 남았다. 올 한 해 동안에도 여러 저명한 과학자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번에도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이들을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과학저널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부고가 실린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네이처’에는 ‘부고(obituary)’, ‘사이언스’에는 ‘회고(retrospective)’라는 제목의 란에 주로 동료나 제자들이 글을 기고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했다.


올해 ‘네이처’에는 20건, ‘사이언스’에는 8건의 부고가 실렸다. 두 저널에서 함께 소개한 사람은 7명이다. 결국 두 곳을 합치면 모두 21명이 된다. 이들의 삶과 업적을 사망한 순서에 따라 소개한다. 지난 1월 24일 작고한 마빈 민스키의 경우는 1월 27일자 동아사이언스 기사로 대신한다.

 

 

인류를 괴롭힌 가장 치명적인 바이러스 전염병인 천연두는 1977년 10월 26일 공식적으로 마지막 환자가 보고된 뒤 지구촌에서 자취를 감췄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해마다 1000만~1500만 명의 환자가 발생해 세 명에 한 명꼴로 사망한 상황을 생각하면 기적 같은 일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천연두박멸프로젝트를 이끈 의사 도널드 헨더슨(Donald Henderson)이 8월 19일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1970년대 아프리카에서 헨더슨(가운데)과 동료가 한 아이에게 천연두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 WHO 제공
1970년대 아프리카에서 헨더슨(가운데)과 동료가 한 아이에게 천연두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 WHO 제공

 

 

1928년 미국 오하이오주 레이크우드에서 태어난 헨더슨은 로체스터대 의학대학원을 다녔다. 임상보다 역학(epidemiology)에 흥미를 느꼈던 헨더슨은 ‘1832년 뉴욕 콜레라 역병’을 주제로 논문을 써 입상하기도 했다. 1955년 미 질병예방통제센터(CDC)에 들어간 헨더슨은 저명한 역학자 알렌산더 랭뮤어 밑에서 배우며 그가 만든 역학전문요원(EIS) 프로그램에 참여해 훗날 책임자 자리까지 올랐다.

 

1960년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천연두가 만연하자 WHO는 대책마련에 부심했고 38세의 헨더슨은 스위스 제네바로 파견돼 천연두 퇴치 프로그램을 지휘하게 된다. ‘천연두 제로’를 목표로 삼은 헨더슨은 의사소통 부재와 내전, 자연재해, WHO의 관료주의와 싸우며 73개국에서 파견된 812명과 함께 현장을 동분서주했다. 당시 제네바에 있던 본부에서 직원이 열 명이 넘게 보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백신접종률이 올라가면서 마침내 천연두가 퇴치되기에 이르렀다.  천연두 박멸은 WHO 역사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프로그램으로 그 뒤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토대가 됐다. 헨더슨은 1977년부터 1990년까지 존스홉킨스 공중보건대 학장으로 일했다.

 

천연두를 퇴치했음에도 병을 일으키는 배리올라(variola) 바이러스 시료는 여전히 몇몇 기관에 보관돼 있다. 헨더슨은 이런 시료들도 완전히 없애야한다며 WHO에서 뜻을 관철하려고 했지만 미국과 러시아 정부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그는 “다음으로 박멸해야 할 것은 나쁜 정부”라고 푸념하기도 했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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