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사라진 과학계 별들](9) 교육에 대한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꾼 제롬 브루너

2016.12.23 14:00

지난 네 해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필자는 ‘과학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제목으로 그해 타계한 과학자들의 삶과 업적을 뒤돌아봤다. 어느새 2016년도 달력도 마지막 달만 남았다. 올 한 해 동안에도 여러 저명한 과학자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번에도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이들을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과학저널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부고가 실린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네이처’에는 ‘부고(obituary)’, ‘사이언스’에는 ‘회고(retrospective)’라는 제목의 란에 주로 동료나 제자들이 글을 기고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했다.


올해 ‘네이처’에는 20건, ‘사이언스’에는 8건의 부고가 실렸다. 두 저널에서 함께 소개한 사람은 7명이다. 결국 두 곳을 합치면 모두 21명이 된다. 이들의 삶과 업적을 사망한 순서에 따라 소개한다. 지난 1월 24일 작고한 마빈 민스키의 경우는 1월 27일자 동아사이언스 기사로 대신한다.

 

 

★ 제롬 브루너 (1915.10. 1 ~ 2016. 6. 5) 교육에 대한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꾼 심리학자

 

제롬 브루너는 여러 실험을 통해 교육이 어린이의 인지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EDC 제공
제롬 브루너는 여러 실험을 통해 교육이 어린이의 인지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EDC 제공

한동안 ‘스토리텔링’이 유행했다.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얘기하느냐가 중요하다며 등장한 스토리텔링 기법은 신문기사는 물론 TV광고까지 넓은 영역에 영향을 미쳤고 이제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 인간은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게 아니라 내러티브, 즉 서사를 통해 사고한다며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간파한 심리학자 제롬 브루너(Jerome Bruner)가 100년을 넘는 삶을 마치고 지난 6월 5일 영면했다.


브루너는 1915년 미국 뉴욕에서 눈이 먼 상태로 태어났다. 다행히 두 살 때 백내장 수술을 받아 시력을 얻었는데, 이 경험은 훗날 지각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낳게 했다. 브루너는 듀크대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뒤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군 복무 뒤 1945년 하버드대에 자리를 잡았다.


브루너는 시지각(visual perception)이 단순히 눈을 통해 들어온 감각정보를 뇌에서 처리한 결과가 아니라 감각정보와 정신요인이 합쳐진 결과임을 여러 실험으로 보여줬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큰 동전은 더 크게, 작은 동전은 더 작게 지각하는데 가난한 집 아이들은 부잣집 아이들보다 이런 경향이 더 크다. 그 뒤 관심을 인지과정으로 확장해 사람들이 개념과 범주를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탐색했다.


브루너는 이런 연구결과를 교육에 적용하기 시작했고 1960년 ‘The Process of Education(브루너 교육의 과정)’이란 책을 냈다. 그는 아이들의 인지발달이 단순히 나이가 들면서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교육의 질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네갈의 아이들을 조사해 쓰기와 읽기를 배우지 못하면 마음이 ‘현대화’될 수 없음을 보이기도 했다.


1972년 영국 옥스퍼드대로 자리를 옮긴 브루너는 아기들을 대상으로 일련의 흥미로운 실험을 수행했다. 생후 8개월만 돼도 아기는 어른이 응시하는 방향으로 시선이 따라가는 반응을 보인다는 관찰로부터 그는 아기가 어른과 초점을 공유하려는 시도가 사물에 단어를 연결하는 언어습득에 필수적인 메커니즘이라고 주장했다.


1980년 미국(뉴욕대)으로 돌아온 브루너는 내러티브, 즉 스토리텔링으로 관심을 돌렸다. 그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논리보다 서사가 더 보편적으로 통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이유를 심리적 관점에서 파헤쳤다. 1986년 출간한 책 ‘Actual Minds, Possible Worlds(교육 이론의 새로운 지평)’은 지금까지 1만4100회가 넘게 인용됐다. 책에서 브루너는 “내러티브는 인간 의도의 변화를 다룬다”며 “내러티브에 대한 민감성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세계 속에서 자아와 타인의 마음을 잇는 주요한 연결고리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브루너는 “인간은 ‘이야기하는 동물(Home narraticus)’이다. 자신의 삶을 통일된 이야기로 구성할 수 있는 사람이 훌륭한 인간”이라며 “교육은 자신의 삶에 대한 서사적 통일성을 기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브루너는 개인의 성격 자체가 아니라 성격과 주변 환경의 궁합 여부가 그 사람의 행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즉 “어떤 성격의 비극은 그 성향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은 환경에 있다”는 것이다. 브루너는 “당신이 누군가를 많이 믿게 될 때, 나쁜 일들이 일어난다”, “다른 사람을 해석하는 행위는 거의 불가피하게 문제를 일으킨다” 등 인간 이해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담은 명언들을 남기기도 했다.


그의 제자인 UCLA 심리학과 패트리시아 그린필드 교수는 ‘네이처’에 실린 부고에서 “브루너는 많은 영역에서 큰 기여를 했다”며 “그의 궁극적 목표는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게 무엇인지 찾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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