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사라진 과학계 별들](8) 힉스 메커니즘을 제안한 토머스 키블

2016.12.21 11:00

지난 네 해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필자는 ‘과학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제목으로 그해 타계한 과학자들의 삶과 업적을 뒤돌아봤다. 어느새 2016년도 달력도 마지막 달만 남았다. 올 한 해 동안에도 여러 저명한 과학자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번에도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이들을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과학저널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부고가 실린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네이처’에는 ‘부고(obituary)’, ‘사이언스’에는 ‘회고(retrospective)’라는 제목의 란에 주로 동료나 제자들이 글을 기고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했다.


올해 ‘네이처’에는 20건, ‘사이언스’에는 8건의 부고가 실렸다. 두 저널에서 함께 소개한 사람은 7명이다. 결국 두 곳을 합치면 모두 21명이 된다. 이들의 삶과 업적을 사망한 순서에 따라 소개한다. 지난 1월 24일 작고한 마빈 민스키의 경우는 1월 27일자 동아사이언스 기사로 대신한다.

 


★ 토머스 키블 (1932.12.23 ~ 2016. 6. 2) 힉스 메커니즘을 제안한 이론물리학자

 

영국 신사 톰 키블은 2014년 기사작위를 받았다. - Thomas Angus/ICL 제공
영국 신사 톰 키블은 2014년 기사작위를 받았다. - Thomas Angus/ICL 제공

2013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선정위원들은 역대 위원들 가운데서도 아마 가장 난감한 처지였을 것이다. 2012년 힉스입자가 검출된 뒤 그 이론적 바탕이 되는 힉스 메커니즘을 제안한 물리학자들이 수상하는 게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다섯 명 가운데 선택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힉스 메커니즘은 1964년 학술지 ‘피지컬리뷰레터스’에 몇 달 간격으로 실린 논문 세 편에서 각각 독립적으로 제안됐다. 첫 번째 논문의 저자는 두 명, 두 번째는 단독 저자(피터 힉스), 세 번째는 세 명이었다. 만일 이들 여섯 명이 모두 살아있었다면 먼저 출간된 두 논문의 저자 세 명을 선정하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첫 논문의 저가 가운데 한 명(로버트 브라우트)이 2011년 사망했기 때문에 세 번째 논문의 저자 세 명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결국 위원회는 힉스와 첫 논문의 저자 프랑수아 앙글레르 두 사람만 수상자로 선정하기에 이르렀다.


세 번째 논문 저자 세 사람은 다들 아쉬웠겠지만 이게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지난 2014년 이 가운데 한 사람인 제럴드 구럴닉이 강의 직후 심장마비로 쓰러져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지난 6월 2일 토머스 키블이 84세에 작고했다.


1932년 당시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 마드라스(현 지명은 첸나이)에서 수학교수의 아들로 태어난 키블은 1944년 영국 에든버러로 보내져 교육을 받았다. 1958년 에든버러대에서 수리물리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이듬해부터 타계할 때까지 60년 가까이 임페리얼컬리지런던(ICL)의 이론물리학그룹에 적을 두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입자물리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1963년 박사후연구원으로 ICL에 온 제럴드 구럴닉은 네 살 연상인 키블과 친해졌고 두 사람은 당시 화제가 되고 있던 자발적 대칭성 깨짐에 대한 연구를 함께 했다. 이 무렵 구럴닉의 친구인 칼 헤이건이 ICL에 오면서 세 사람의 공동연구로 발전했고, 약력을 매개하는 기본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 메커니즘을 제안하는 논문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들의 논문은(앞서 나온 두 논문을 포함해서) 당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67년 키블은 학술지 ‘물리학 리뷰’에 대칭성 깨짐 메커니즘을 일반화한 단독저자 논문을 발표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전자기력과 약력을 통합한 전기약력 이론을 만드는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1970년대 키블은 관심을 우주로 돌려 고에너지물리학과 응집물리학 이론을 적용해 초기우주에서 일어난 현상을 설명하는 가설을 제안하기도 했다.


2013년 노벨상 수상자 발표 뒤 많은 사람들이 그가 포함되지 않은데 대해 아쉬워했지만 정작 키블은 말을 아꼈다고 한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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