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피하지 않는 사람이 더 행복한 이유

2016.12.20 18:00

흔히들 부정적 감정은 가급적 덜 느끼고 긍정적 감정은 자주 느끼는 것이 행복에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다일까?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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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구분하기(emotion differentiation)


최근 심리과학지(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에 실린 한 리뷰논문에 의하면, 즐거움, 행복 등의 긍정적인 감정을 많이 느끼고 불안, 슬픔, 화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덜 느끼는 것도 행복에 중요하지만, 감정을 ‘구체적’으로 구분할 줄 아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한다.


일례로 똑같이 ‘기분이 나쁘다’는 상태도 “음 잘 모르겠는데 그냥 기분이 나빠요”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처음에는 좀 혼란스럽다가 곧 화가 나더니 지금은 불안감이 커요”라고 하는 등 감정을 하나의 큰 덩어리로 뭉뚱그리기보다 그 안의 서로 다른 정서들을 잘 구분(emotion differentiation)해 낼 줄 아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일련의 연구들에 의하면 서로 다른 감정들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보다 감정을 잘 구분해낼 줄 아는 사람들이 삶의 다양한 스트레스에 더 적응적이라고 한다.


일례로 우울증이나 대인공포증 등을 겪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서로 다른 부정적인 감정들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기분이 나쁘다/불편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또한 거미에 대한 공포증 등 특정 공포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도 그냥 밑도 끝도 없이 무섭다고 하는 것보다 “처음에는 저 징그러운 것이 끔찍하고 소름돋고 역겨운데 자세히 보니까 흥미로운 부분도 있는 것 같다”며 그 공포를 구성하는 정서 경험을 자세히 구분해낼 줄 아는 사람들이 비교적 두려움을 잘 극복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정서 반응을 구체적으로 구분해 낼 줄 아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경험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렇게 사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그 스트레스를 이전에 비해 잘 견디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 연구자들의 견해이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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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풍부하게 느끼는 것


또한 최근 실험심리학저널: 일반(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eneral)지에 실린 한 연구에 의하면 감정의 ‘다양성(diversity)’ 또한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관련을 보인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생태계에서 종의 다양성을 측정하는 원리에서 착안해 사람들마다 평소에 느끼는 감정의 다양성이 어느정도 되는지를 수치화했다. 평소에 느끼는 감정의 수가 0이라면 감정 다양성 수치는 0이고, 감정의 수가 늘어날수록 감정 다양성 수치 또한 증가하는 식이었다.


약 3만 명의 프랑스인과 약 1000 명의 덴마크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부정적 정서든 긍정적 정서든 한 두가지만 주로 느끼는 사람보다 여러가지를 ‘다양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우울 증상을 덜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성격, 나이, 성별, 평소 긍정적 정서와 부정적 정서를 얼마나 많이 느끼는지 등과 상관 없었다.


또 부정적 정서든 긍정적 정서든 감정을 다양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의사를 찾는 횟수나 약을 복용하는 횟수도 적고 운동도 많이 하는 등 더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쉽게 말하면 감정을 풍부하게 느끼고 특정 감정을 편식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대체로 더 건강한 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쩌면 이미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감정이 풍부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감정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느끼는 것 자체도 우리의 웰빙(wellbeing)에 중요한 기여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결국 자신의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지금 자신이 느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아는 것, 즉 내면의 소리를 좀 더 잘 이해하려 애쓰는 것, 그리고 다양한 감정을 무시하지 말고 또 편식하지 않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골고루 느끼는 것이 우리의 삶을 좀 더 건강하게 만들어 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감정을 소홀히 하고 있었다면, 기분이 나쁘거나 좋다고 생각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그 이상의 풍부한 감정들을 발견해보도록 하자.

 


※ 참고문헌
Kashdan, T. B., Barrett, L. F., & McKnight, P. E. (2015). Unpacking emotion differentiation; transforming unpleasant experience by perceiving distinctions in negativity. 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 24, 10–16.
Quoidbach, J., Gruber, J., Mikolajczak, M., Kogan, A., Kotsou, I., & Norton, M. I. (2014). Emodiversity and the emotional ecosystem.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eneral, 143, 2057-2066.

 

※ 필자소개
지뇽뇽. 연세대에서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적인 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고하는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jinpark.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과학동아에 인기리 연재했던 심리학 이야기를 동아사이언스에 새롭게 연재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한 주를 건강하게 보내는 심리학을 다룬 <심리학 일주일>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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