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사라진 과학계 별들](1)분자화석으로 지구 역사를 재구성한 화학자, 지오프리 에글린턴

2016.12.12 19:00

지난 네 해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필자는 ‘과학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제목으로 그해 타계한 과학자들의 삶과 업적을 뒤돌아봤다. 어느새 2016년도 달력도 마지막 달만 남았다. 올 한 해 동안에도 여러 저명한 과학자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번에도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이들을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과학저널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부고가 실린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네이처’에는 ‘부고(obituary)’, ‘사이언스’에는 ‘회고(retrospective)’라는 제목의 란에 주로 동료나 제자들이 글을 기고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했다.

 

올해 ‘네이처’에는 19건, ‘사이언스’에는 7건의 부고가 실렸다. 두 저널에서 함께 소개한 사람은 6명이다. 결국 두 곳을 합치면 모두 20명이 된다. 이들의 삶과 업적을 사망한 순서에 따라 소개한다. 지난 1월 24일 작고한 마빈 민스키의 경우는 1월 27일자 동아사이언스 기사로 대신한다.

 

★ 지오프리 에글린턴 (1927.11. 1 ~ 2016. 3.11) 분자화석으로 지구 역사를 재구성한 화학자

 

아내 팸과 함께 한 지오프리 에글린턴. - 영국왕립학회 제공
아내 팸과 함께 한 지오프리 에글린턴. - 영국왕립학회 제공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동백아가씨’라는 노래의 가사는 정말 시적이다. 필자는 동백을 무척 좋아하는데 꽃도 꽃이지만 꽃의 빨간색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반질반질한 짙은 녹색의 잎이 더 인상적이다. 동백 잎이 두드러지기는 하지만 사실 대다수 잎 표면에는 왁스층이 있어 잎을 보호하고 물에 젖지 않게 한다. 1960년대 당시 최신 분석기기를 써서 잎 왁스의 화학조성을 자세히 밝힌 화학자 지오프리 에글린턴(Geoffrey Eglinto)이 지난 3월 11일 89세로 작고했다.

 

1927년 영국 카디프에서 태어난 에글린턴은 맨체스터대에서 화학을 공부하고 유기합성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고안한, 각각 삼중결합을 지닌 두 분자의 탄소 사이의 결합반응은 ‘에글린턴 반응’으로 불린다. 학위를 받은 뒤 에글린턴은 천연물화학으로 관심을 돌렸다. 그는 기체크로마토그래피 같은 최신 분석기기를 써서 복잡한 혼합물을 분리해 구성 성분을 규명했다. 특히 잎의 표면을 덮고 있는 왁스를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1967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14쪽에 이르는 논문으로 정점을 찍었다.

 

에글린턴은 잎의 왁스 분석 경험을 바탕으로 ‘분자화석(molecular fossil)’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즉 잎의 왁스를 이루는 성분처럼 안정한 분자는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기 때문에 화석의 분자를 분석하면 당시 지구환경과 생물계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운석에 포함된 유기분자도 초기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밝히는데 영감을 줄 것이다. 실제 에글린턴은 1969년 아폴로 11호 우주인인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달에서 가져온 월석의 성분을 분석하기도 했다. 이런 분야를 ‘유기지구화학’이라고 부른다.

 

1967년 글래스고대에서 브리스톨대로 옮긴 에글린턴은 유기지구화학단위(OGU)라는 대학원 과정을 개설해 이 분야의 연구를 이끌었고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2008년 동료 수전 게인즈, 위르겐 룰쾨터와 함께 지구역사를 밝히는데 분자화석이 어떤 기여를 했는가를 소개한 ‘Echoes of Life(생명의 메아리)’라는 책을 펴냈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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