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집단행동의 심리학(상): 시위는 왜 일어나나?

2016년 12월 05일 15:00

※편집자주:  매주 토요일, 광화문 광장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보통 시위현장에서는 긴장감, 폭력, 공포감 등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주 심각한 정치적 이슈임에도 축제를 연상하게 합니다.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조직화되어 나왔다기 보다는 헌법에 명기된 '주권'을 지키기 위한, 주권자 개개인들이 모여서 큰 흐름을 만들고 있습니다.  본지는  인류학을 전공한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 집단 행동에 나서는 심리에 대해서 3회에 걸쳐 연재를 합니다.

 

<게재 순서> 

(상)시위는 왜 일어나나? 
(중)어떤 사람이 시위에 참여하나?
(하)시위는 어떻게 종결되나?

 

12월 3일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12월 3일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 포커스뉴스 제공

 

▶ 고민

추워지는 날씨에도 계속되는 시위와 집회, 그리고 한번에 수백만명이 넘게 촛불을 드는 모습을 보면 놀라운 생각이 듭니다. 평소 잘 나서는 편이 아닙니다만, 이제는 한번 나가보아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도대체 시위나 집회와 같은 집단 행동은 왜 일어나는 것인가요? 그리고 주로 어떤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하나요? 또 시위는 어떻게 발전해 나가는 것인가요?

 

 

○ 정신과 전문의가 답합니다!


● 바쁜 분들을 위한 4줄 요약


1. 삶에 대한 불만에서 시위와 집회는 시작된다.
2. 절대적인 삶의 수준보다 “상대적인 불평등”이 중요하다.
3. 그러나 불평등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바로 사회적 “불공정”이다.
4. 각각의 불만이 사회적 공감대를 얻는 순간, 자발적인 행동이 시작된다.


▶ 답변

세계에서 우리의 시위문화를 칭찬(?)하고 있다고 합니다. 칭찬받았다고 해서 기뻐할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최근 촛불 시위는 이전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이며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정한 이익집단이나 정치적 세력이 주도하는 집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입니다. 앞으로 3편에 걸쳐, 자발적인 집단 행동이 왜 일어나는지, 누가 이러한 집단 행동에 참여하는지, 그리고 결국 집단 행동은 어떻게 진행하게 되는지에 대해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집단 행동은 “불만”에서 시작한다.


집단 심리학의 오랜 이론에 따르면 시위나 파업, 데모 등의 집단 행동은 바로 사회적 불만에서 시작됩니다. 이를 ‘불만 이론(Grievance Theory)’라고 하는데, 사실 아주 당연한 말입니다. 만족스러운 사람들이 굳이 고생스럽게 길거리에 나와 시위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유롭고 행복한 사람은, 사랑하는 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에도 바쁩니다.


물론 세상이 누구에게나 만족스러울 수는 없습니다. 학생들은 공부하고 시험을 보느라, 직장인은 업무를 하고 고객을 응대하느라, 주부는 살림을 꾸리고 가족을 돌보느라 힘들고 괴롭습니다. 그러나 공부하기 싫다고, 살림하기 싫다고 해서 집단 행동에 나서는 경우는 없습니다. 시위와 같은 집단 행동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단지 높은 수준의 ‘불만’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아이슬랜드의 반정부 시위. 아이슬란드는 수년전부터 지속된 경제 침채와 더불어, 다비드 귄뢰이그손 총리가 해외에 재산을 빼돌린 것이 드러나자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결국 총리가 사퇴하고, 6개월 이른 총선을 치렀다. - Thorgnyrthoroddsen 제공
아이슬란드의 반정부 시위. 아이슬란드는 수년전부터 지속된 경제 침채와 더불어, 다비드 귄뢰이그손 총리가 해외에 재산을 빼돌린 것이 드러나자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결국 총리가 사퇴하고, 6개월 이른 총선을 치렀다. - Thorgnyrthoroddsen 제공

절대적인 ‘부족’ 보다는, 상대적인 ‘불평등’


2011년 9월, 미국에서는 아주 유명한 군중 시위(Occupy Wall Street)가 일어났습니다. 단 30명으로 시작된 이 월가 점령 시위는, 뉴욕을 중심으로 무려 73일 동안이나 지속되었습니다. 전 세계 1500개 도시로 퍼져 나갔고 일부 지역에서는 해를 넘겨서 지속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전세계를 뜨겁게 한 이 시위에서 볼 수 있는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소위 주동세력이 없었다는 입니다. 모두 자발적으로 모였고, 자발적으로 행동했습니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상당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세계적인 기준으로 보면 ‘아주 부유한’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끼니를 굶는 사람도, 치료비가 없어 죽어가는 사람도, 잘 곳이 없어 노숙을 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들의 불만은 절대적인 수준의 ‘부족’이 아니라, 상대적인 ‘불평등’이었습니다.


당시 월가 점령 시위의 구호 중 하나는 “우리가 99%다(We are the 99%)”였습니다.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상위 2%에 속한 사람도 시위에 참여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보수적인 정치권은 이들을 ‘폭도’로 규정했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안이한 해석은, 월가의 부도덕한 횡포에 대한 군중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는 셈이었습니다. 시위는 한 달 만에 최고조에 달했고, 세계적으로 동조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 장면. 시위에 참여한 미국인의 대부분은, 세계적 기준으로 보면 아주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불만은 부족이 아니라, 불평등에서 시작한다. - David Shankbone 제공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 장면. 시위에 참여한 미국인의 대부분은, 세계적 기준으로 보면 아주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불만은 부족이 아니라, 불평등에서 시작한다. - David Shankbone 제공

불평등보다 더 중요한 ‘불공정’


영국 심리학자 리처드 위킨슨(Richard Wikinson)과 케이트 피켓(Kate Pickett)에 의하면, 불평등한 사회가 빈곤한 사회보다 더 불안정하다고 합니다. 사회적 불안정을 예측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가, 앞서 말한 사회적 불평등입니다. 다른 사람은 천원을 받는데, 자신만 오백원을 받는다면 우리는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차라리 모두 오백원을 받는 편을 택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입니다.


하지만 상대적 빈곤이 크게 느껴진다고 해서, 반드시 집단 행동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불만이 집단 행동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사회적 역동성의 소실입니다. 사회심리학자 나오미 엘레머스(Naomi Ellemers)에 의하면, 높은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더 이상 없다고 느낄 때, 낮은 계층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서 강력한 내집단 결속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불평등뿐 아니라, 여기에 ‘불공정’이 더해져야 합니다. 비록 지금은 불평등해도, 규칙이 공정하다면 노력을 통해 얼마든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한참이나 뒤처져 있는데, 경기 규칙도 선두 주자에게 유리하다면 사람들은 분노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불공정은 단지 게임의 규칙이 공정하지 않은 것 외에도,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도 포함합니다. 사회 정의 이론(social justice theory)에 의하면, 사회적 불평등은 분배적 정의가 깨진 것이고 사회적 불공정은 과정적 정의가 깨진 것입니다. 지위가 낮거나 돈이 없다고 해서, 인간으로서 받아야 할 존엄까지 보장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분노하게 됩니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갑질 현상도, 바로 이러한 사회적 불공정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공정(Injustice)를 벌주는 정의의 여신(Justice). 인간은 세상이 불공정하다고 느낄 때, 가장 분노한다. - Jean-Marc Nattier 제공
불공정(Injustice)를 벌주는 정의의 여신(Justice). 인간은 세상이 불공정하다고 느낄 때, 가장 분노한다. - Jean-Marc Nattier 제공

사회에 누적된 불만이 공감대를 얻는 순간, 행동이 시작된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고조되고, 그 와중에 불공정한 일마저 빈발한다면 사람들의 불만이 커지고 분노가 점증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여기에 더해서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바로 자신이 경험하는 불만, 그리고 분노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것인 가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심리학자 리처드 라자루스(Richard Lazarus)등이 제안한 감정의 사회적 검증 이론(appraisal theory of emotion)에 의하면, 인간은 어떤 감정을 경험하거나 행동을 의도할 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받아들여지는 것인지 미리 검증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검증이 실패하거나 도무지 검증할 방법이 없다면, 섣부른 감정 표현이나 행동은 자제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서, 주변 눈치를 보는 것이죠.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검증 과정이 아주 편리해 졌습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교류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좋아요’ 숫자나 ‘리트윗’ 정도를 보고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월가 점령 시위도,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촛불 시위도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일어난 자발적인 시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실상 모든 참여자가 주동자인 것입니다.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는 SNS 등을 통해서 확산되었고, 이는 곧 전세계로 퍼져서 약 1500개의 도시에서 동조 시위가 진행되었다. 누적된 불만이 사회적 공감을 얻는 순간, 큰 폭발력을 보이게 된다. - Rsauders 제공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는 SNS 등을 통해서 확산되었고, 이는 곧 전세계로 퍼져서 약 1500개의 도시에서 동조 시위가 진행되었다. 누적된 불만이 사회적 공감을 얻는 순간, 큰 폭발력을 보이게 된다. - Rsauders 제공

에필로그


10월 29일, 1차 촛불 집회에는 2만명(이하 주최측 추산)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것이 2차 집회에는 20만명이, 3차 시위에는 100만명, 4차 집회 80만명, 5차 집회 190만명, 6차 집회 232만명 등으로 급격히 불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다음 편에서는 과연 누가 집회에 참석하고 있는지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참고문헌
van Stekelenburg, J., and B. Klandermans 2013 The Social Psychology of Protest. Current Sociology 61(5–6).
Mark van Vugt 2011 Why We Protest | Psychology Today. Psychology Today, accessed December 4, 2016.
scott stinson 2011 Five Reasons the Occupy Wall Street Movement Failed, and One Reason It Didn’t | National Post. National Post, accessed December 4, 2016.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 병원 정신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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