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시선 42]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

2016년 12월 03일 18:00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일까. 오래전, 그러니까 30여 년 전 어느 겨울 낮 두세 시 경에 나는 우리 집 골방에 혼자 덩그마니 누워 있었다. 원통형 베개를 세워 카키색 철제 캐비닛에 붙이고는 비스듬히 뒤통수를 기대고 몸통과 다리를 길게 뻗은 채 벽인가 천장인가에 무심히 시선을 놓고 있었다. 무슨 이유로 그러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은 집 안에 나뿐이었던 고등학생 때 겨울방학이었다. 그 상태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를 알아차린 것은 문득 시선을 창밖으로 옮기고 나서였다. 사위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청춘이었던 그 겨울날, 나는 동면(冬眠)하듯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로 몇 시간을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GIB 제공
GIB 제공

곰, 다람쥐, 고슴도치, 박쥐 등의 포유류나 개구리, 뱀 등의 변온 동물들은 혹독한 겨울을 견디기 위해 동면에 들어가지만, 사람은 다른 이유로 때때로 모두 내려놓고 우두커니 서 있는 겨울나무처럼 아무 짓도 하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의 심신을 정지시키기도 한다. 그 까닭은 삶의 ‘지침’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그 연원을 알 수 없는 우물 같은 자신의 침잠된 안팎을 막연히 바라보기도 한다. 일테면, 인생의 가장 눈부신 청춘이 반딧불이같이 자체의 발광(發光)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검게 태울 때도 그렇거니와, 그 환한 어둠을 고요히 응시하며 오랫동안 면벽 수행을 하는 수도자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공원 산책길의 벤치에 종종 연만한 노인이 나무 그림자처럼 앉아 있는 장면은 드물지 않다. 포근한 초겨울 햇살이 아까워 나도 가끔 그런 분 옆 벤치에 앉아 해바라기를 한다. 그리고 그 두 벤치를 누군가가 혼혼한 우주를 가로질러 지구라는 행성에 다가온 태양의 빛살처럼 스쳐 지나간다. 숱한 나무인 양, 흔한 돌인 양, 가만히 놓여 있는 노인과 나에게 행인들은 무관심하다. 마찬가지로 노인은 나와 행인들이 그저 밤하늘에 옅은 꼬리를 긋다가 사라지는 별똥별인 양 자신의 눈꺼풀을 한두 번 여닫고는 시선에서 지운다.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과 조용히 걷는 사람은 각기 마치 멈춘 듯 천천히 운행하는, 자전하며 공전하는 행성들처럼 서로의 보이지 않는 인력과 척력 사이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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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또 다른 공간에서 우리는 경쟁이 가파르고 벼린 날이 지친 얼음 트랙에 속도를 반증하는 홈이 파인 첨예한 시대를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 집을 비롯해, 청소년 자식을 둔 부모들은 종종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자녀들이 스스로를 가둔 듯이 틀어박혀 가만있는 모습을 보일 때 흔히들 가슴 답답해한다. 거친 바다 같은 이 세상을 도대체 어찌 살아가려고 저토록 천하태평일까 하고 걱정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서 다시 생각보자. 공부든 어느 전문적인 분야든, ‘맨 앞’에서 달리거나 ‘정상’에 오르는 사람은 스스로를 못 살게 굴 정도로 각박할뿐더러 자기 성취를 위해 대부분 이기적이라는 것을.


나뭇가지처럼 세상의 길은 다양하고, 누구든 ‘나’의 자격으로 살아가지만, 이 땅의 아이들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최고 그룹’에 속하기 위해 스스로에게나 주변에 모서리를 드러내는 일은 예사롭다. 그 병목 현상의 대열에는 여지가 없다. 메인(main) 도로의 전방만 바라보기에 다른 길을 둘러볼 겨를이 없다. 생각해본다. 때로는 잠시나마 시동을 끄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안개의 기류 같은 미지의 자신을 가만히 놔둬 보는 것은 어떨까. 단식 같은 그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온전한 심심함이 무엇인지, 그 텅 빈 백지에 무엇을 끼적일 것인지, 그럼으로써 ‘의도’(意圖) 이전의 상태를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그 시간은 인생의 큰 덕목인 ‘성찰’을 오롯이 스스로 배우는 각별한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럴 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스페셜’ 코너에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주
뉴스를 보다보면 무엇인가를 분석해서 설명을 해주는 내용이 대다수입니다. 그래야 원인을 정확하게 찾고,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고개를 들어 사물을 그대로 보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대상을 온전히 바라보면 분석한 내용을 종합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시인의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생활의 시선’을 매주 연재합니다. 편안한 자세로 천천히 읽으면서 감정의 움직임을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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