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 탑’ 이전으로 돌아갈 인류에겐 어떤 미래가?

2016년 11월 26일 10:30

EV-9D9: “몇 가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지?”
C-3PO: “600만가지의 의사소통 방식에 능통합니다. 그리고…”
EV-9D9: (말을 자르며) "아주 좋아, 우리 주인님을 실망시키지 말도록, 왜냐하면 주인님이 통역 드로이드에게 화가 많이 나셔서 그 녀석을 분해해버리셨거든"
C-3PO: 분해?

 

스타워즈에서 6백만가지 언어를 통역할 수 있는 것으로 등장하는 C-3PO가 EV-9D9과 대화하는 모습
스타워즈에서 600만가지 언어를 통역할 수 있는 것으로 등장하는 C-3PO가 EV-9D9과 대화하는 모습 - 20세기 폭스 

스타워즈 에피소드 6편 <제다이의 귀환>에서 자바 더 헛의 집사 역할을 하는 여성형 드로이드 EV-9D9이 C-3PO와 나눈 대화의 일부다. 6백만가지 의사소통 방식에는 비단 언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비언어 수단들도 포함되어 있기는 하겠지만, 굳이 600만 이라는 숫자를 고른 시나리오 작가의 의도는 분명 언뜻 하찮아 보이는 C-3PO가 가진 변역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인류가 탄생한 이래 다른 언어를 쓰는 집단과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아 발생해온 그 천문학적인 비용을 생각해보면, 모든 언어를 번역할 수 있는 C-3PO와 같은 로봇의 등장은 분명 인류의 가장 오래된 꿈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 꿈이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일찌감치 간파됐고, 그에 대한 납득할만한 이유를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구약성경 창세기의 바벨 탑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게 종교 차원에서마저 포기한 것처럼 보였던 인류가, 언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최초로 공식적인 선언을 한 것은 1954년이었다. 그 해 초 조지타운대 언어학자들과 IBM의 연구진들이 러시아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전자 두뇌’(electronic brain)를 세상에 내놓았기 때문이다. 개발진들은 이러한 전자 두뇌의 개발이 미국의 전략적인 입지를 소련보다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조지타운대 언어학자 중 한 명인 레온 도스터트(Leon Dostert)는 아무리 길어도 5년 내에 주요 언어들을 자동 번역해주는 전자 두뇌가 개발될 것이라고 확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로부터 6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는데 들이고 있는 시간과 돈을 생각하면, 우리의 기대수준에 부합하는 자동 번역이라는 것은 요원한 일이라고 봐야할 듯 하다. 

구글이 인간, GNMT 그리고 PBMT(기존 문구 단위 번역 방식)간의 번역 퀄리티를 비교한 결과
구글이 인간, GNMT 그리고 PBMT(기존 문구 단위 번역 방식)간의 번역 퀄리티를 비교한 결과

그렇기 때문에 지난 15일 구글이 신경망 기계 번역(GNMT, Google Neural Machine Translation)을 통해 한국어를 포함한 8개 주요 언어간의 번역 결과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음을 알렸을 때, 이는 아주 큰 화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알파고를 통해 인공 지능의 능력을 실감하게 된 상황에서, 실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는 번역에까지 인공 지능이 도입된다는 사실 자체가 기대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국내 주요 언론들이 논란이 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 등 문장의 번역 결과를 GNMT 관련 기사에 썼다는 것이다. 그 만큼 결과가 만족스러웠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일부에서는 향후 구글의 번역 시장 잠식이 커지면서, 정부와 기업의 내부 정보가 고스란히 구글에 축적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는 우려가 나왔을 정도다.

 

업그레이드된 구글 번역의 번역 사례
업그레이드된 구글 번역의 번역 사례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러한 구글 번역의 획기적인 개선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가 원하는 ‘언어 장벽이 없는 세계’의 구현이라는 꿈의 실현까지는 갈 길이 멀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자사의 비디오 채팅 서비스인 스카이프에서 베타 테스트하고 있는 스카이프 트랜스레이터(Skype Translator)처럼, 실시간으로 말하는 내용을 번역해주는 서비스/기기가 개발되어야만 여행이나 회의 등의 실생활에서 일반인들이 체감할만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설국열차에서 송강호(남궁민수)가 들고 다니며 쓰던 동시 통역기
설국열차에서 송강호(남궁민수)가 들고 다니며 쓰던 동시 통역기 - CJ E&M

영화 <설국열차>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남궁민수가 휴대하고 다니던 동그란 형태의 동시 통역기처럼 별도의 기기보다는, 스마트폰에 설치할 수 있는 실시간 번역/통역 앱이 아마도 단기적으로는 가장 현실적인 미래의 번역/통역기의 모습일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등장하는 바벨 피쉬처럼, 스마트폰과 연동되어 귀에 넣으면 모든 언어가 다 동시 통역되는 보청기형태의 기기도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등장하는 바벨 피쉬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등장하는 바벨 피쉬 - 터치스톤 픽쳐스

중요한 것은 이번에 GNMT로 업그레이드된 구글 번역 서비스가 분명 그러한 기술적 진보로 가는 하나의 전기임에는 틀림 없다는 사실이다. 거기에 더 많은 데이터들이 축적되면서 번역 결과의 정합성이 놀라울 정도로 개선되는 상황을, 우리는 실시간으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궁극적인 결과물이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적 금전적 여유를 주고, 외국어 장벽으로 인해 소외되었던 계층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는 결과를 목도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바벨 탑을 보고 ‘인간이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못 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걱정해 인간들의 언어를 섞어 놓았던 신이 실재한다면, 그 형벌로부터 스스로 벗어나고 있는 인간들을 보며 무엇을 생각할지는 SF적인 시각에서도 매우 흥미진진한 소재다. 제발 신의 분노가 기술적 특이점이라는 형태로 나타나, 인공지능에 의한 인류의 절멸이라는 참담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참고
☞ 구글의 NMT 블로그
☞ Machines, Lost In Translation: The Dream Of Universal Understanding
 

※ 필자소개
이철민. 학부에서 계산통계학을 전공하고 국내 IT기업들에 재직하다 미국 유수의 MBA과정에서 경영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뒤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회사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국내 사모펀드(PEF)에서 M&A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씨네21』, 『동아일보』, 『한겨레신문』등에 다양한 칼럼을 연재한 바 있으며, 저서로는 『인터넷 없이는 영화도 없다』, 『MBA 정글에서 살아남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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