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 스타트업에게 기회의 땅이 될까

2016년 11월 20일 07:00

초기 기업에 주로 투자하는 빅뱅엔젤스는 지금 직접 투자한 스타트업들과 함께 해외 스타트업 시장을 돌고 있습니다. 사실 그 동안 스타트업 붐이 일면서 스타트업들을 데리고 해외에 나가는 행사는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특히 실리콘밸리는 스타트업 관련 업계의 단골집이었지요. 몇몇 스타트업은 "해외에 나가는 게 시간 낭비"라는 이야기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해외에 왜 나가느냐'가 1차적인 문제일테고, '그래서 뭘 얻으려는 거냐'가 2차적인 물음일 겁니다. 제 개인적인 관심사로는 해외 스타트업 환경이 어떤지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일정의 시작이었던 싱가폴에서 이들과 함께 했습니다.

 

 

최호서 제공
최호섭 제공

싱가폴이 바라보는 국내 스타트업, ‘K-문화’

빅뱅엔젤스는 10월30일부터 8개 팀과 함께 해외 스타트업 시장을 둘러보고, 현지의 투자자와 파트너 등을 만나고 있습니다. 종종 이뤄지는 투자자 중심의 해외 부트캠프라고 보면 비슷합니다. 이들의 첫 번째 행선지는 싱가폴입니다. 두 번째는 중국, 그리고 세 번째는 핀란드입니다. 요즘 스타트업 업계에서 시쳇말로 ‘핫하다’고 하는 지역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싱가폴은 좁은 땅덩어리와 500만 명의 인구라는 불리한 조건에도 스타트업 육성에 꽤 힘을 쏟고 있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 싱가폴은 세계적인 기업들의 아시아 본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스타트업이 피어나고 있다는 점은 꽤 흥미로운 일입니다.

이번에 싱가폴을 찾은 스타트업들은 완전 초기 단계는 아니고 창업후 2~3년 정도가 지난 기업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안정적인 궤도에 오른 정도는 아니지만 일부는 시리즈A 단계 투자가 진행중이기도 합니다. 싱가폴에서의 일정은 시장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 그리고 실제 투자자나 다른 기업을 만나는 자리로 이어졌습니다. 역시 투자자들과 만나 사업을 설명하고 그 반응을 보는 것이 가장 재미있는 일이겠지요.

 

 

엠트리케어 이새암 매니저 - 최호섭 제공
엠트리케어 이새암 매니저 - 최호섭 제공

일정은 꽤 딴딴하게 짜여 있었습니다. 스타트업들은 각자 사업에 맞는 투자자들을 1대 1로 만날 기회를 얻었습니다. 저도 일단 싱가폴에 도착하자마자 한 팀을 따라 갔습니다. 비접촉식 체온계를 만드는 엠트리케어를 따라 나섰습니다. 첫 피칭 대상은 ‘에어메이커’였습니다. 사물인터넷을 중심으로 투자 및 액셀러레이터 역할을 하는 회사입니다.

미팅은 대체로 한 시간 정도 이어졌는데 발표와 제품에 대한 피드백, 방향성에 대해서 꽤 심도 있는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재료나 패키징, 규제, 사업 모델 등 해외 진출과 관련된 여러 요소들이 검토됐습니다. 엠트리케어의 이새암 매니저는 ”당장 직접적인 투자 유치에 대한 이야기보다 해외 진출에 대한 가능성이 더 궁금했는데 피드백 자체가 놀라웠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늘 스타트업이라고 하면 해외 시장으로 나가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해외 진출은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시장을 우습게 보고 무작정 나갔다가 쓴 맛을 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최근 스타트업들의 해외 진출 노력이 예전만큼 많이 눈에 띄지 않는 것도 그 경험들과 관계가 없진 않을 겁니다.


일단 가장 어려운 건 진심을 담아서 이야기해주는 투자자, 혹은 파트너사들을 만나는 것 같습니다. 비슷한 기회를 몇 번 겪어봤는데, 대체로 현지 코디네이터들이 섭외한 투자자들과 사무적으로 만나고, 사무적인 피드백만 받아서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것도 경험이긴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마치 실리콘밸리 관광 프로그램을 돌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코니카미놀타 비즈니스 이노베이션과 인터뷰 - 최호섭 제공
코니카미놀타 비즈니스 이노베이션과 인터뷰 - 최호섭 제공

‘SPH 미디어 펀드’와 만난 자리도 흥미로웠습니다. SPH는 싱가폴 최대의 미디어 그룹입니다. 이들은 미디어와 관련된 스타트업을 찾고 있었습니다. SPH를 찾은 스타트업은 음악과 공연, 그리고 문화를 다루는 스타트업들이었습니다. 일단 신문사가 스타트업에 직접적으로 투자도 하고, 액셀러레이터도 겸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시장에도 밝아서 K-팝을 비롯한 연예계 상황이나 아프리카TV 등 미디어 플랫폼에 대한 이야기에도 밝았습니다. 시장에 대한 호기심은 물론이고, 그 밑바탕에서 나온 스타트업이 어떤 기술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 직접적인 관심을 내비쳤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는 해외 진출의 목적

한 자리에 모여 싱가폴에서의 일정을 돌아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이번 일정의 중심에 있었던 액셀러아시아의 조에리 지아노튼(Joeri Gianotten)은 “한국 스타트업의 기술 수준은 높은 편이고, 드라마나 음악 등 문화적으로도 세계와 맞물려 있지만 아직 대부분의 기업들이 한국에만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흔히 듣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스타트업이 정말 밖에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을 갖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직접 사업을 설명하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일이 중요합니다.

셰어앤케어의 황성진 대표는 “직접적으로 해외 투자자들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는 기대로 싱가폴을 찾았다고 말했다. “미팅 자리가 계속해서 질문들과 호기심으로 채워져서 놀라웠다”며 적극적인 반응에 자신감을 얻었다는 설명이다. 다른 팀도 비슷하다. 커플 사이에서 성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홀라컴퍼니의 박민경 대표도 막연하던 불안감이 씻겨 나갔다는 반응이다.

 

 

홀라컴퍼니 박민경 대표 - 최호섭 제공
홀라컴퍼니 박민경 대표 - 최호섭 제공

“싱가폴의 투자자들을 만나서 얻은 반응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여성들도 성에 대한 관심이 있지만 그걸 드러내기 쉽지 않다는 공통점은 어느 문화권이나 있는 것 같습니다. 공통적인 고민이라는 답을 얻은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됐어요”

문화는 모든 사업의 중심에 깔리는 기본 조건이다. 국내에서 잘 되던 사업이 해외로 나갔을 때 먹히지 않는 이유는 서비스 그 자체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대체로 환경이 서로 다르고, 문화에 대한 이해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국내 스타트업들이 문화 콘텐츠 기반으로 해외에 나서기는 아주 좋은 환경이라는 점도 확인했다. 음악 콘텐츠 플랫폼을 만드는 ‘싱잇’의 김단열 이사는 직접적으로 한국 문화의 힘을 체감했다는 반응이다.

 

 

싱잇 김단열 이사(왼쪽)과 셰어앤케어의 황성진 대표(오른쪽) - 최호섭 제공
싱잇 김단열 이사(왼쪽)과 셰어앤케어의 황성진 대표(오른쪽) - 최호섭 제공

“장기적으로는 싱가폴에 법인을 내고 동남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는 게 목적입니다. 그래서 싱가폴이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는데 여기 와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K컬처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문화가 산업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사업을 하지 못하는 게 이상하다는 반응도 많았습니다.”

의외로 시장 분석이 꽤 잘 되어 있고, 한 미팅에서는 아프리카TV 이야기를 꺼냈는데 싱가폴측에서 이미 플랫폼 환경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관심이 많았습니다. 멜리펀트의 임재원 부사장은 무엇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싱가폴에 직접 e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점만으로도 큰 기회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싱가폴, 그리고 동남아 시장의 가능성


싱가폴은 국내 스타트업이 나가기 괜찮은 시장일까요? 으레 이렇게 한국에서 한 팀이 큼직하게 움직이면 긍정적인 부분을 많이 보여주곤 합니다. 스타트업 유치는 전 세계적인 추세고, 특히 싱가폴은 정부부터 해외 스타트업을 끌어들이는 데에 적극적입니다.

“싱가폴 자체가 다문화 국가여서 그런지 서비스들이 대체로 글로벌을 노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스타트업 뿐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체가 그런 느낌이었어요.”

싱잇의 애초 목표중 하나는 아예 싱가폴에 자리를 트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대해 오히려 싱가폴 투자자들의 반응은 “한국은 어느 정도 내수 시장 규모가 나오지 않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싱가폴이나 이스라엘처럼 자체 시장이 작은 국가들은 아예 주변 시장들을 함께 묶어서 사업을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싱가폴은 작지만 큰 시장이었습니다. 그 기회가 우리에게도 올 것이냐가 문제라면 문제인 셈입니다. 빅뱅엔젤스 황병선 대표는 그 가능성에 도전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최호섭 제공
황병선 빅뱅엔젤스 대표 - 최호섭 제공

“싱가폴을 비롯해 동남아시아와 한국 스타트업 사이에 서로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은 듯 합니다. 미국 이야기는 듣지만 다른 나라 환경은 잘 모르는 건 비슷하죠. 분명한 건 K웨이브라고 하는 문화 기반의 에너지가 꽤 강한 힘을 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국내의 좋은 통신 환경을 통해서 성장한 서비스는 적절한 시점에 동남아시아로 가져오는 게 효과를 낼 것 같습니다.”

물론 사업의 가능성만으로 모든 부분이 풀리는 건 아닙니다. 유통이나 생산, 그리고 규제 등 따져봐야 할 게 상당히 많습니다. 비접촉식 체온계를 만드는 엠트리케어의 이새암 매니저는 그런 점에서 큰 산을 넘은 것 같다고 말합니다.


“싱가폴에서 만난 투자자들이 현지 생산이나 공급에 대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주더군요. 의료 시장은 어느 나라나 아주 예민한 규제가 흐르는데, 미국의 FDA 라이선스를 받는다거나, 해외 시장 진출 전에 특허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전반적으로 한 주를 해외에서 보낸 다섯 개 스타트업은 상당히 고무된 느낌이었습니다. 일정이 만만치 않았을 뿐더러, 해외 경험도 많지 않았지만 분명한 가능성을 봤다는 게 공통적인 반응입니다. 직접적인 투자를 바랐던 것도 아니고, 시간적으로도 부족하긴 했지만 싱가폴 시장 진출을 노려볼 수 있다는 기대와 발판은 확실히 얻었다는 반응입니다.

 

 

멜리펀트 임재원 부사장(오른쪽)과 빅뱅엔젤스 김다정 매니저(왼쪽) - 최호섭 제공
멜리펀트 임재원 부사장(오른쪽)과 빅뱅엔젤스 김다정 매니저(왼쪽) - 최호섭 제공

사실 국내 스타트업이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것에 대한 기대가 예전같진 않습니다. 한때는 모두가 실리콘밸리를 내다보기도 했고, 중국은 쉽게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쉽게 이뤄지진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근래 주목받는 시장이 바로 동남아시아입니다. 눈높이를 낮췄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그렇다고 동남아시아가 쉬운 시장도 아닙니다. ‘쉽다’는 말은 시장 규모나 문화 눈높이가 우리와 비슷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 합니다.

빅뱅엔젤스가 스타트업들과 함께 싱가폴을 찾은 이유도 동남아시아를 만만한 시장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문화적 차이가 비교적 적은 시장에서 적절한 투자자와 파트너를 찾는 데에서 해외 진출을 시작해보자는 쪽에 가깝습니다. 이는 비단 이번 부트캠프에 참여한 스타트업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지난 8월 부산에서 열렸던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에서 나왔던 동남아시아 시장에 대한 이야기들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제게는 이를 간접적으로나마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자리였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은 결국 “서로 몰라서 함께 하지 못할 뿐”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달라진 시선만큼 다시 한번 그 기회와 가능성에도 변화를 기대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 필자소개

최호섭. PC사랑을 시작으로 최근 블로터까지 IT 분야만 팠다.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서 들여다보기 시작한 노트북과 팜 파일럿 PDA는 순간이 아니라 인생을 바꿔 놓았다. 기술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역사와 흐름을 읽고자 한다. 세상은 늘 배울 게 많고, 기술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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