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꼬마

2016년 11월 19일 18:00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 이야기의 소재도 아파트다. 아파트는 공동 주택이다. 한 건축물에서 독립적인 여러 가구가 생활할 수 있도록 지어진 주택이 아파트이니 당연히 밀도가 높다. 언제부터 이렇게 벌집처럼 촘촘한 구조의 집에서 살게 되었을까.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인류 최초의 아파트는 고대 로마의 집합 주택인 ‘인술라’(insula)에서 시작되었다. 서민들이 생활한, 5층으로 된 당시의 아파트는 1층은 상가, 그 위층으로는 주거 공간으로 쓰인 이른바 주상 복합 건물이었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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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년이 지난 오늘날도 우리는 ‘현대적’이라는 관형사만 덧붙여진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우리 가족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는 9개 동의 982세대가 밀집돼 있다. 반면 어촌인 나의 처가 마을은 ‘이’(里) 단위인데, 250여 가구에 불과하다. 비교하자면 그 밀도의 차이는 엄청나다. 4개 마을이 1개 아파트 단지에 모여 있는 셈이다. 따라서 아파트 입주민끼리는 곳곳에서 만나기 마련이다. 아파트 상가에 딸린 마켓의 계산대 앞에서도 순서를 기다리며 마주치고, 출퇴근과 등하교 시간이면 단지 앞 횡단보도나 버스 정류장에서도 그렇거니와, 각 세대로 이동하기 위해 사용하는 엘리베이터 안팎에서도 입주민들은 마주친다. 하지만 그 여러 곳에서 만나게 되는 대부분의 이웃들은 서로 데면데면하다.


왜일까? 하고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기에 번번이 알은체하는 게 상대방을 침해하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일까? 그런 범범한 분위기가 어색했던 나 역시 언제부턴가 엘리베이터 안팎에 가만히 서 있을 때면 관리사무소에서 붙여놓은 공지문에서 맞춤법 오류를 찾고 있거나, 손글씨로 쓴 입주민의 호소문, 즉 층간 소음 내지 흡연을 삼가라는 글귀를 바라보면서 ‘공중도덕’의 정체는 배려에서 시작된 자발적 미덕이 아니라 피해를 줄이려는 목적의 규제 캠페인일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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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한낮, 나는 우리 집 앞 복도로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에 올라 1층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8층에서 멈추고, 나이 가늠이 잘 안 되는 중년의 외국인 남성이 네댓 살쯤 돼 보이는 딸아이와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예사로운 이웃들과는 다른, 순한 황소 눈매 같은 그의 시선이 내 얼굴에 닿았다. 중앙아시아 사람으로 보이는 그는 나를 향해 약간 어색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영어를 거의 못하는 나는 얼결에 “Hi!” 하고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라고 응답한 그는 “한국에, 오래, 살아, 한국말, 알아요, 10년, 됐어요” 하고 덧붙였다. 소통에 안도한 나는 여자애에게 눈길을 주며 딸아이냐고 물었고, 손가락 다섯 개를 세워 보이는 그는 “다섯 살,이에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꼬마 아이는 곧바로 튼실한 아빠의 청바지 다리 뒤로 숨었다. 층계 표시등에 ‘1’이라는 숫자가 뜨고 문이 열리기 직전에 나는 아이 아빠에게 여전히 수줍어하는 딸아이의 이름을 물었다.
“아치아! 아치아”예요.
“아치아? 알파벳으론 어떻게 써요?”
“a, t, r, i, y, a.”


우리는 공동 현관문 앞에서 헤어졌다. 그날 이후, 후덕한 아빠와 함께 늘 낡은 봉고 차에 오르내리는 그 아이를 보면 나는 “아치아!” 하며 손을 흔든다. 여전히 아이는 수줍어 고개를 숙였지만 그 인사가 아이의 나이만큼 반복되자 어느 날 아치아는 빙그레 웃으려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만약에 아치아가, 밀집된 공간에서 웬만해서는 서로 눈길을 피하는, 혹은 이민족이라는 이유로 다른 눈길을 던지는 이 땅의 아파트가 아니라, 중앙아시아의 어느 고장에서 자랐다면 어떤 표정이었을까. 우리가 사는 곳을 쓸쓸하게 하는 것은 늦가을이라는 계절만이 아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스페셜’ 코너에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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