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은 어떻게 다른가

2016.11.05 18:00

오래전 TV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어느 개그맨의 유머가 생각난다. 그의 어머니는 전화기만 잡으시면 수다가 상당해서 통화 시간이 기본 1시간은 된댔다. 그런데 한번은 어쩐 일인지 10분 만에 수화기를 내려놓기에 웬일이냐고 물었단다. 그의 어머니 왈, “잘못 걸려온 전화야!” 익살 좋은 해학이었다. 반면에, 오래전 나의 장인이 살아생전에 어쩌다가 내가 전화를 드리면, “윤 서방인가? 별일 없지? 잘 있네. 이만 끊세!” 이렇게 딱 네 마디의 말씀만 하시고는 서둘러 수화기를 내려놓으셨다. 장인의 숨은 말씀은 ‘통화 요금이 많이 나오니 안부 전화라면 길게 얘기할 것 없네’였으리라.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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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지난 오늘날은 (나의 경우는 일부 어르신들과도) 통화보다는 문자 메시지로 소통하는 경우가 더 잦아진 듯하다. 문자 메시지로서의 소통은 상호간의 의사나 정보를 더 명확히 주고받는 이점도 있다. 또한 육성으로 건네기 어색하거나 불편한 말들을 표현할 때 더 용이하다. 이를테면, 나의 장모님은 연세가 78세인데 몇 해 전 어버이날에 나는 찾아뵙지 못한 송구함으로 용돈을 조금 송금해 드린 바 있다. 그러고는 나의 죄송한 마음을 다소 긴 문자 메시지로써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몇 시간 뒤에 장모님께서 보내온 이런 답신을 받았다.


“윤서방어찌또무리하는고밤낫받기만하고큰일낫네손주손녀하나도못챙겨주었는데면목없네의미있게사용핡께요고마워건강유의해요사랑하네장모가”


이런 말은 사람에 따라서는 목소리로 건네기엔 겸연쩍을 것이다. 그러나 문자 메시지로는, 편지로는, 글로는 충분히 가능할뿐더러 그 ‘글’을 읽고 있는 수신인 역시 발신인의 진정성을 헤아리며 잠시나마 숙연해질 것이다. 메시지의 구체적인 내용을 떠나서 수신인은 당장에 발신인의 정성을 먼저 읽게 되니 말이다. 변변찮은 사위가 보내온 문자 메시지를 받으신 연로하신 장모님은 어두운 시력임에도, 익숙하지도 않은 휴대전화 자판의 자음과 모음을 일일이 찾아서 당신 마음의 목소리를 글로 쓰시기 위해서 얼마나 애쓰셨겠는가.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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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을 글로 나타낸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대면이든 전화 통화든 목소리로써 말을 꺼내기보다는 문자 메시지든 편지든 문장의 글로써 말하는 게 더 편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같더라도 ‘형식’이 다르면, 듣거나 읽는 이에게는 그 내용도 다르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열띤 강연이나 간곡한 호소의 야생적 근육이 느껴지는 웅변 같은 말에는 역동성이 있다. 반면, 생각이라는 호수의 나룻배에서 감정이라는 노를 저어 쓴 글은 읽는 이의 마음에 일렁이는 파문을 일으킨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는 유일한 생명체다. 언어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성과 용도는 의사소통이지만, 삶을 통찰하고 세상을 읽어내는 힘도 ‘언어’에서 나온다. 특히 글로써의 말은 때로는 생각보다 멀찍이 앞서 걸어간다. ‘글’이라는 달걀은 ‘생각’이라는 닭이 낳았지만, 닭은 달걀에서 태어나 자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달걀 껍질 속에서 어떤 병아리가 부화될지는 껍질을 박차고 나올 때까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이 글로써의 말의 능력이자 매력이다. 그 매력의 정도에 따라 그 글이 지나간 길에는 글의 무게와 힘과 행보에 따라 발자국이 남는다. 그리하여 좋은 글의 문양(文樣)은 읽는 이의 마음에 새겨진다. 그저 가벼운 수다처럼 휘발되지 않는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스페셜’ 코너에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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