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의 맥주생활](7) 맥주를 욕되게 하지 말라

2016.11.04 17:00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H. 대학 동기인 친구는 술을 마시면 끝을 보고야 마는 진정한 주당이었기에 H는 오늘도 각오를 단단히 하고 나왔다. 언제나처럼 소맥으로 시작해 소주를 거쳐 맥주로 마무리하는 코스를 머리 속에 그리며, 1차에 안주를 충분히 먹고 물을 마시며 장기전을 준비하겠다는 전략을 세워본다.


술집에 들어가 안주를 고른 친구가 오늘따라 주류 주문을 망설인다. 미적미적하면서 수줍은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요즘 맥주를 많이 마셨더니 몸무게가 불은 것 같아. 다이어트하고 있어서… 오늘은 맥주 마시지 말자”


뭐, 맥주 때문에 살이 쪘다고? 영 듣기 거북하다. 20년 지기 술친구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믿기 어렵다. 살찐 걸 맥주 탓으로 돌리다니… 너 그 뱃살 대학 때부터 그랬거든?


내가 아는 맥덕(맥주덕후)들은 모두 날씬하다, 친구야. 너를 설득해 다시 맥주의 세계를 함께 누비겠다.

 

 

unsplash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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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우리 과학적으로 따져보자. 간만에 숫자 좀 읊어볼게. 나 ‘대학수학’ 과목 삼수강 한 것 알지? 방학에도 못 놀고 계절학기 들었다. 전공 필수만 아니었어도… 그래도 오늘만은 초집중 해본다. 잘 들어보렴.


맥주에도 물론 열량이 있어. 330~360ml 작은 캔 기준 150kcal 정도다. 두 캔이면 300kcal, 세 캔이면 450kcal… 많아 보이니? 워어워, 그건 표면적인 칼로리에 불과해.


맥주 열량은 주로 알코올에서 나오지. 너도 어디선가 들어봤겠지만, 알코올의 열량은 ‘뻥 칼로리’야. 몸을 살찌우지 않는다는 거지. 알코올 1g으로부터 7kcal가 나오는데 이 열량은 지방이나 단백질처럼 우리 몸에 축적되지 않아. 술 먹으면서 숨쉬고 떠들고 웃고 화장실 다녀오면서 신진대사로 쓰이고 열로 발산되지. 맥주 열량 중 알코올에서 나온 부분을 빼면 열량이 3분의1로 줄어든다. 맥주 두 캔을 마셔도 100kcal 이하야.


(이건 모든 술에 적용되는 진리야. 소주나 보드카 같은 증류주 계열의 경우 대부분 알코올과 물로 이뤄져 있어 살이 찔만한 열량은 거의 없다고 보면 돼. 어떤 술이라도 니 살에 대한 책임은 없다, 친구야.)

 

 

신사가든 제공
신사가든 제공

알코올에서 나온 열량을 뺀 맥주 열량은 콜라(250ml당 112kcal), 오렌지주스(200ml당 100kcal), 우유(200ml당 130kcal)보다도 낮지. 이래도 자기 전에 맥주 마시고 싶은 걸 억지로 억지로 눌러 참으면서 주스 한잔을 마시고, 오늘도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고 만족하며 숙면할래?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체중계에 올라가서 왜 살이 안 빠지냐며 원망하겠지.


전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많이 배운 교수들이 돌아가면서 거듭해서 연구했지만 맥주가 비만과 관계 있다는 근거는 없대. 세계에서 가장 맥주를 많이 소비하는 국가인 체코에서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봤지만 맥주를 마시는 사람과 안 마시는 사람, 또는 많이 마시는 사람과 적게 마시는 사람 간 비만에 있어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지.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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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 뱃살은 어디서 왔을까? 네가 1차부터 3차, 4차까지 끊임 없이 집어먹는 그 안주가 바로 범인이야. 맥주 재료인 홉에 함유된 ‘알파산’이 식욕을 높이는 역할을 한대. 식욕은 높아지는데 취해서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안주를 폭식하게 되지.


친구야, 가슴에 손을 얹고 각자 자신을 뒤돌아보자. 구운 치킨 대신 튀긴 치킨을 찾진 않았는지, 기름이 줄줄 흐르는 얼굴만한 버거를 감자튀김까지 빠짐없이 먹고, 감자탕 집에 가서 밥까지 신나게 먹고 난 후 집에 돌아와 이상하게 속이 허하다며 라면 물을 올리진 않았는지…


맥주엔 죄가 없다. 무고한 맥주는 그만 원망하자. 맥주를 끊어 살을 빼겠다는 엄한 다짐은 넣어두고 이제 돌아와. 아직도 세상엔 우리가 마셔봐야 할 맥주가 너무나 많다.


나 먼저 마시고 있을게.


<’1일 1맥’ 추천맥주>

 

브루독 제공
브루독 제공

이름 : 펑크(Punk) IPA
도수 : 5.6%


영국 내 판매 1위 크래프트 비어로 풍부한 자몽, 파인애플 등 열대과일의 상큼한 향과 쌉싸름한 마무리가 조화롭다.


펑크IPA를 만드는 브루독(Brewdog) 브루어리는 지난 2007년 맥주를 좋아하는 23세 젊은이 두 명이 창업해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대표 맥주 ‘스타트업’이다. 대기업 맥주를 단두대에서 처형하는 광고를 내보내고 런던 시내에 탱크를 몰고 나타나는가 하면,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동성애 광고를 금지하자 그를 풍자한 맥주를 만드는 등 파격적인 행보로 눈길을 모으고 있다.

 

 

※ 필자소개
황지혜. 비어포스트 에디터, 전 매일경제신문 기자. 폭탄주와 함께 청춘을 보내다 이제는 돌아와 수제 맥주 앞에 선 한량한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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