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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노보를 롤모델로 삼아야 할까?

2016년 10월 25일 13:00

침팬지보다 더 잔인하고 보노보보다 공감 능력이 더 뛰어난 우리는 양극성이 가장 심한 유인원이다. 우리 사회는 완전히 평화롭거나 완전히 경쟁적이었던 적이 없다. 또한 순전한 이기심에 지배당한 적도, 완전히 도덕적이었던 적도 없다. 순수한 상태는 자연의 방식이 아니다.
- 프란스 드 발, ‘내 안의 유인원’에서


20여 년 전 기업체 연구소에서 일할 때 하루는 미국 원료공급업체 사람들과 점심을 같이 하게 됐다. 당시 20대 후반인 필자는 얼굴선이 고운 시고니 위버처럼 생긴 30대 후반 여성과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게 됐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 해외 마케팅 담당자가 여성인 경우는 드물었다.


아무튼 밥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다보니 인도에 한 일주일 들렀다 한국에 온 거였다. 피곤하겠다는 필자의 말에 그분은 미소를 띠며 이렇게 대답했다.


“아뇨. 한국에 오니 너무 좋네요. 밤에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고...”


어디서 묵었는지 인도에서는 밤은커녕 낮에도 혼자 다닐 엄두가 안 났다며 미국에서도 해가 떨어지면 밖에 나가기 겁난다고 했다. 한마디로 한국은 밤에 여자 혼자 마음 편히 다녀도 되는 안전한 사회라는 인상을 받았다는 말이다.


수 년 전 필자는 미국에 한 열흘 출장을 다녀왔는데 그분의 얘기와는 달리 한국과 별 차이를 못 느꼈다. 유럽풍 도시라는 동부 보스턴과 프로비던스에만 머물러(그나마 밤에는 돌아다니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난주 일어난 충격적인 살인사건을 접하며 만일 요즘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에게 그런 말을 듣는다면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인터넷을 보고 만든 총으로 경찰을 쏴 죽인 이 사건은 어쩌면 우리사회의 폭력성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범죄사에 기록될지도 모른다.


물론 필자가 지나치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다. 뉴스는 인구 5000만이 사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아 전하는 것이므로 실제로 내 주변에서 그런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은 CCTV나 스마트폰 동영상 등 현장을 기록한 자료가 많아 뉴스가 생생해져 이런 착시현상이 더 심할 수도 있다.


실제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살인발생건수는 연간 10만 명 당 1.1명으로 20년 전 1.3명과 별 차이가 없다. 반면 미국은 5.2명으로 20년 전 9.4명보다는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우리보다는 훨씬 높다. 20년 전 그 분이 우리나라에서 편안함을 느낀 게 과장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자랑할 일은 아닌 게 일본은 0.3명에 불과하다.


문득 인간은 어쩌다 동족을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폭력적인 동물이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동물도 동족을 죽이는 경우가 있다. 짝짓기 기간 테스토스테론 과다분비로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수컷끼리 싸우다 치명상을 입히거나 새로 우두머리가 된 수사자가 이전 우두머리의 새끼를 물어죽이기는 한다. 하지만 다양한 상황에서 동족을 죽이는 동물은 인간뿐 아닐까.

 

이미지 확대하기포유류에서 동족살해 폭력성의 진화를 나타내는 계통분류도. 노란색에서 짙은 빨간색으로 갈수록 폭력성이 크다는 뜻이다. 치명적인 공격성 사례가 없는 종들은 회색으로 표시했다. 영장류(10시 방향)가 폭력성이 높음을 알 수 있다. 빨간 삼각형이 인간이다. - 네이처 제공
포유류에서 동족살해 폭력성의 진화를 나타내는 계통분류도. 노란색에서 짙은 빨간색으로 갈수록 폭력성이 크다는 뜻이다. 치명적인 공격성 사례가 없는 종들은 회색으로 표시했다. 영장류(10시 방향)가 폭력성이 높음을 알 수 있다. 빨간 삼각형이 인간이다. - 네이처 제공

영장류는 잔인해


학술지 ‘네이처’ 10월 13일자에는 동족을 죽이는 폭력성의 기원을 계통분류학의 방법을 써서 규명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이에 따르면 포유류 가운데 인간의 폭력성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예외적인 경우는 아니다. 즉 인간이 속한 영장류의 폭력성과 비슷한 수준으로 결국 진화의 산물이라는 말이다.


스페인의 연구자들은 사람을 포함해 포유류 1024종을 대상으로 400만 건이 넘는 죽음 가운데 동종 살해의 비율을 조사했다. 그 결과로 유추한 포유류 공통조상의 폭력성, 즉 동종에게 살해된 비율은 0.3%로 나타난 반면 영장류 공통조상은 2.3%였고 유인원의 공통조상은 1.8%였다. 사람은 2%로 이 범위 내에 들었다. 참고로 사람의 수치는 5만 년 전 구석기시대 인류의 뼈를 조사한 연구에서 최근 연구까지 600여 건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동물의 동종살해 유형을 분석한 결과 새끼살해, 동종 잡아먹기, 무리 사이의 싸움이었고 사람은 전쟁(집단), 살인(개인), 유아살해, 처형 등이 주원인이었다. 문화의 허울을 벗겨내면 사람도 동종을 죽이는 유형이 동물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렇다면 포유류 가운데 특정 종류들, 특히 영장류에서 동종살해의 비율이 높게 진화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참고로 고래류, 토끼류 등은 동종살해 비율이 낮았다.


연구자들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집단생활을 하고 영역성이 큰 종일수록 동종살해의 비율이 높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즉 무리를 이루며 살다보니 내부에서 서열경쟁을 하다 죽을 수도 있고 때로는 무리끼리 영역이나 암컷을 두고 집단싸움이 벌이다 죽기도 한다. 예상대로 동종살해를 하거나 당한 성(sex)은 대부분 수컷이다.


필자는 이 논문을 읽으며 두 가지 사실에 주목했다. 하나는 시대에 따른 인류의 동종살해 비율 변화추이로, 수렵채취를 하던 구석기시대, 즉 인류역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은 영장류 평균 수준인 2%대였지만 3000~500년 전에는 무려 15~30%까지 올라갔다 그 뒤 떨어지지 시작해 현대사회에 와서는 1% 미만으로 급감했다는 사실이다. 2010년의 경우 세계에서 사망한 5621만 명 가운데 46만8000명이 살해돼 0.83%다.


다음으로 유인원 가운데 유독 보노보가 동종살해의 비율이 낮아 사실상 0이라는 점이다. 반면 보노보와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는 꽤 높다. 2014년 ‘네이처’에 실린 논문을 보면 수십 년에 걸쳐 침팬지 18개 무리를 조사한 결과 15개 무리에서 동종살해가 일어나 152건(목격 58건, 확실 41건, 의심 53건)에 이르는 반면, 보노보의 경우 4개 무리에서 단 한 건(그것도 의심) 뿐이었다. 평소 유인원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사진을 보고 침팬지인지 보노보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가까운 두 종이 폭력성에서 어떻게 이런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는 걸까.


사람의 조상과 침팬지/보노보 공통조상은 약 700만 년 전 갈라졌고 침팬지와 보노보는 약 200만 년 전 갈라졌다. 따라서 둘이 사촌이라면 사람은 이들과 육촌쯤 될 것이다. 그런데 폭력성으로 분류하면 사람과 침팬지가 묶인다. 영장류 폭력성 진화를 봐도 보노보가 별종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보노보에서 폭력성을 줄이는 해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미지 확대하기보노보는 동족살해 사례가 거의 보고되지 않았을 정도로 비폭력적인 유인원이다. 이들은 성(sex)을 매개로 해서 화합을 유지하므로 현실적으로 인간이 따라 하기는 쉽지 않다. - 위키피디아 제공
보노보는 동족살해 사례가 거의 보고되지 않았을 정도로 비폭력적인 유인원이다. 이들은 성(sex)을 매개로 해서 화합을 유지하므로 현실적으로 인간이 따라 하기는 쉽지 않다. - 위키피디아 제공

성개방된 여성상위 사회


미국 에모리대의 저명한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의 2005년 저서 ‘내 안의 유인원’은 침팬지와 보노보의 차이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통찰하고 있는데 꽤 흥미롭다. 드 발은 “인간의 사회 조직은 첫째 남성끼리의 유대, 둘째 여성끼리의 유대, 셋째 핵가족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결합돼 있다”고 요약한다. 이 가운데 남성끼리의 유대는 침팬지와 공유하는 특성이고 여성끼리의 유대는 보노보와 공유하는 특성이고 핵가족(일부일처제)은 인간만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안타깝게도 보노보의 평화 비결은 일부일처제를 무너뜨리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적용할 수 없다. 


보노보는 외모가 침팬지보다 왜소할 뿐 아니라 무리의 구조도 꽤 다르다. 보통 침팬지 무리는 암컷의 숫자가 더 많지만(수컷의 상당수가 동종살해로 죽기 때문에) 보노보는 암수가 비슷하다. 그럼에도 암컷들이 끈끈한 유대를 구축해 수컷들을 제압하고 있다. 일대 일로 싸우면 힘이 더 센 수컷이 이길 가능성이 높지만 암컷 여러 마리한테는 안 된다. 보노보 수컷들은 침팬지처럼 수컷들끼리 동맹을 구축해 권력을 찬탈하지 않고 여성상위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암컷들이 수컷을 달래는 무기가 바로 성(sex)이다.


보노보의 성생활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개방돼 있어서 자연다큐멘터리를 찍을 수 없을 정도다. TV에서 침팬지는 자주 나와도 보노보는 거의 나오지 않는 이유다. 이들은 양성애자로 어미자식 관계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암컷은 사춘기가 되면 다른 무리로 떠나므로 남매 사이의 성행위도 없다) 서로 성행위를 하는데, 수컷의 고환 크기는 조금 과장하면 테니스공만하다.


동종살해의 주원인은 서열 다툼과 영역 다툼, 즉 암컷과 먹이 차지와 관련이 돼 있는데 보노보 암컷은 난교(亂交)를 즐기므로 집단 내 수컷끼리 싸울 주요 동기가 사라진다. 대신 고환을 키워 짝짓기를 할 기회가 됐을 때 더 많은 정액을 사정해 자신의 새끼를 배게 할 확률을 높이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한편 보노보가 살고 있는 서식지(현재 2만 여 마리에 불과하다)는 콩고민주공화국의 삼림지대로 먹이가 풍부해 다른 무리들이 만나더라도 싸우는 일이 드물다고 한다.

 

이미지 확대하기인류의 동족살해 폭력성의 발자취. 수렵채취인 시절에는 유인원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문명이 발달하며 증가하다가 현대사회로 넘어오며 감소했다. 즉 인간은 문화로 동족살해 본능을 증폭하거나 억제할 수 있는 종이다. 아래 왼쪽부터 구대륙의 구석기, 중석기, 신석기, 철기, 중세, 신대륙의 고대, 형성기, 고전기, 후고전기, 세계의 현대, 동시대. - 네이처 제공
인류의 동족살해 폭력성의 발자취. 수렵채취인 시절에는 유인원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문명이 발달하며 증가하다가 현대사회로 넘어오며 감소했다. 즉 인간은 문화로 동족살해 본능을 증폭하거나 억제할 수 있는 종이다. 아래 왼쪽부터 구대륙의 구석기, 중석기, 신석기, 철기, 중세, 신대륙의 고대, 형성기, 고전기, 후고전기, 세계의 현대, 동시대. - 네이처 제공

측은지심을 살려야 할 때


폭력성 통계가 가리키듯 인간의 심리나 행동의 어두운 면은 보노보보다 침팬지와 훨씬 더 가까운 것 같다. 드 발 교수는 책에서 “의도적으로 이웃 수컷들을 죽임으로써 세력권을 확장해 가는 동물이 인간과 침팬지뿐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고 쓰고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분쟁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는데, 다양한 명분이 있지만 결국은 외부 집단에 대한 인간 수컷(남성)들의 적개심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인간은 워낙 머리가 좋게 진화하다보니 과학기술이 발전했고 그 결과 조직의 규모와 무기의 살상력이 커져 침팬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폭력성을 갖추게 됐다. 3000~500년 전 사망자 가운데 살인 비율이 15~30%까지 이른 것도 숱한 전쟁과 독재, 무법천지의 결과다. 그 뒤 국가체계가 정교해지고 법치가 확립되면서 비율이 떨어졌지만 지금도 지구촌 수십 곳에서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보노보의 전략을 택할 수 없는 인류로서는 어떤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을까.

    
드 발 교수는 앞에 인용한 말처럼 인간 정신의 유연성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즉 인간은 침팬지 이상으로 잔인할 수도 있지만 보노보 이상으로 타인에 대해 배려할 줄도 아는 존재라는 말이다. 흥미롭게도 드 발 교수는 책에서 중국의 철학자 맹자의 ‘측은지심(惻隱之心)’ 일화를 인용하고 있다. 이 말에 공감은 하면서도 오늘날 과학이 인간의 폭력성의 기원은 설명할 수 있을지언정 이를 줄일 해결책은 2300년 전 살았던 맹자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만약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하는 모습을 본다면, 누군들 놀라고 불쌍한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중략) 이러한 예를 통해 측은지심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지닌 본성이라는 걸 알 수 있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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