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의 맥주생활 <5>맥주 메뉴 앞에 당당한 나

2016.10.21 17:00

잡지를 뒤적이다가 눈이 번쩍 뜨인 H. 기사에는 한눈에 봐도 맥주 탭(맥주를 따르는 꼭지)이 30개는 족히 넘을 것 같은 이태원, 홍대, 성수동, 가로수길 등지의 펍이 소개돼 있다. 맥주와 어울리는 안주에 그럴듯한 분위기는 덤. 이런 곳이 있었다니… 맥주가 술술 들어가겠네. 당장 가봐야겠다.

 

요즘 핫하다는 성수동 펍에 호기롭게 들어간다. H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한글과 알파벳, 숫자가 어지럽게 뒤섞여, 읽는 데만도 한참 걸리는 메뉴들이다.

 

 

황지혜 제공
황지혜 제공

‘그냥 집에서 혼술이나 할 것을… 내가 못 올 곳을 왔구나’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맥주 정복의 원대한 포부를 여기서 포기할 순 없다는 생각에 정신줄을 붙잡고 주변을 살펴본다. 다행스럽게도 개별 메뉴판에는 맥주에 대한 설명이 붙어있다.

 

“시트러스한 홉향이 돋보이며 바디감이 넘치는 인디아페일에일(IPA)”- ABV 5.5%, IBU 70
“노블홉의 잔잔한 향과 몰트의 깊은 맛이 조화를 이룬 필스너”- ABV 4.5%, IBU 30
“시트러시한 센테니얼 홉을 많이 사용해서 높은 도수에도 불구하고…” – ABV 7.0%, IBU 60
“맥아의 진항 풍미가 커피와 초콜릿향을 연상시키는 풀바디의…” – ABV 5.0%, IBU 80

 

뭐야, 나를 농락하나. 이걸 설명이라고 써놓은 건가? 인터넷을 떠돌던 ‘보그병신체’잖아. 갑자기 입술이 들썩들썩 욕이 나올 것만 같다. 대체 이런 설명을 보고 어떻게 맥주를 고른 거지? 테이블마다 모여 삼삼오오 웃고 떠들면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 참 대단하다.


그 와중에 맥주는 정말 맛있어 보인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메뉴판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pixabay 제공
pixabay 제공

크래프트 비어를 가까이 하다 보면 낯선 외래어들을 계속 마주치게 된다. 맥주 회사마다 펍마다 같은 외래어를 표기하는 방법도 제각각이고, 한글 번역도 중구난방이다. 크래프트 비어 문화가 외국에서 전해지고 시장이 초기 단계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맥주를 좋아한다는 ‘원죄’로 하나하나 찾아보면서 알아가는 수밖에….

 

맥주 메뉴판을 해독하기 위해 기본적인 사항을 알아본다. 크래프트 비어 메뉴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로 ABV(Alcohol By Volume)가 있다. ABV는 ‘알코올 도수’와 같은 말이다. 전체 맥주 중 알코올의 함량을 백분율(%)로 보여준다. ABV 5.5%는 5.5도 짜리 맥주라는 말이다.


IBU((International Bitterness Units)가 표시되는 경우도 있다. IBU는 쓴맛을 측정하는 단위로 0~100까지 숫자로 나타낸다. 쓴맛이 강할수록 수치가 커진다. 씁쓸한 맛을 강조하는 인디아페일에일(IPA)이나 스타우트(Stout) 등은 수치가 100 가까이 가는 경우도 있다.

 

자, 이제 우리를 혼돈에 빠트렸던 보그병신체를 해석해보자. 맥주 맛을 표현하는 말들이다.

 

- 시트러스(Citrus)/시트러시(Citrusy) : 귤, 오렌지, 레몬, 자몽 등 감귤류에서 나는 향과 맛
- 호피(Hoppy) : 과일향, 풀향, 나무향, 허브향 등 홉에서 나오는 상쾌한 향.
- 몰티(Malty) : 크래커나 빵에서 느낄 수 있는 고소한 향과 맛, 곡류를 오래 씹으면 느낄 수 있는 단맛
- 스파이시(Spicy) : 후추의 매콤한 맛과 향
- 스모크(Smoke) : 훈제 소시지나 훈제 고기 등에서 나는 향
- 바디(Body) : 맥주가 목을 넘어갈 때의 저항감. 술술 넘어가면 라이트(light), 묵직하게 넘어가면 풀(full), 그 중간이 미디엄(medium)

 

아직도 주문에 자신이 없다면? 맥주 샘플러(Sampler)를 시켜본다. 대부분 펍에서는 자신 있는 맥주를 모아서 맛보기용으로 샘플러 메뉴를 제공한다. 먹어보고 맛있는 것을 골라 큰 잔을 시키면 된다.

 

 

맥주 샘플러 - 황지혜 제공
맥주 샘플러 - 황지혜 제공

이도 저도 귀찮다면… 펍의 이성 직원 중 가장 훈훈한 분에게 조용히 다가가 조언을 얻어보자. 대화가 잘 통하면 전화번호도 물어보자.

 

오늘은 분위기 좋은 펍에서 한잔 해야겠다.

 

<’1일 1맥’ 추천맥주>
 

보스턴브루어리 제공
보스턴브루어리 제공

이름 : 사무엘 아담스 보스턴 라거(Samuel Adams Boston Beer)

도수 : 4.8%

 

1984년부터 생산된 사무엘 아담스 보스턴 라거는 당시 청량감과 시원한 목넘김을 강조하는 미국의 주류 맥주(버드와이저, 밀러 등)와 전혀 다른 묵직하고 깊이 있는 맛의 라거로 인기를 얻었다. 색상은 구릿빛으로 앰버라거로 분류되며 부드럽고 풍성한 거품이 생성된다.


라거지만 그동안 마셨던 라거와는 완전히 다른 맛을 경험할 수 있다. 과일향, 곡식의 단맛, 홉의쓴맛이 다양하게 느껴진다. 설탕을 태운 듯한 달콤한 향과 맛도 난다.

 

 

 

 

 

 

※ 필자소개
황지혜. 비어포스트 에디터, 전 매일경제신문 기자. 폭탄주와 함께 청춘을 보내다 이제는 돌아와 수제 맥주 앞에 선 한량한 누나.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