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거품 없는 맥주는 시든 꽃이다: 맥주 편

2016년 10월 08일 18:00

지난주에 이어서 두 번째 집술[家酒] 이야기는 ‘맥주’다. 10년 전쯤엔 한창 와인 열풍이 불더니, 최근 몇 년 전부터는 수입 맥주의 판매량이 급상승했다. 한동안 그래프는 계속 상향으로 그어질 것 같다. 이런 소비 성향에 화들짝 놀란 국내 맥주 생산업체들도 품질 수준을 높여 1~2년 전부터 출시된 2개 품목의 일반 맥주는 나로서는 마실 만하다. 맥주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반갑다. 맥주 종류가 다양해졌으니 고르는 일만 남았다. 수입 맥주를 살 거면 많은 종류를 구비한 대형 매장에서 한꺼번에 구입하는 게 낫고, 그럴 시간이 없으면 가짓수는 적지만 편의점에서도 만 원에 4캔(500ml)을 구입할 수 있다.

 

GIB 제공
GIB 제공

국내산 맥주를 선택할 때면 라벨에 씌어 있는 ‘all malt’ 여부를 살핀다. 내가 본 바로는 현재 국내산 일반 맥주 중 3종의 맥주가 ‘all malt’다. 100%의 맥아(麥芽)로만 발효시켰다는 말이다(물론 모든 맥주에는 홉과 효모도 들어간다). ‘all malt’가 아닌 맥주는 맥아의 양을 줄이고 줄인 만큼 옥수수 전분을 부가물로 넣는다. 다소 싱거운 이런 맥주는 아메리칸 라거가 대표적이며 그 방식을 따라 오래전부터 국내에서도 많이 생산되고 있다. 반면 ‘all malt’ 맥주는 체코나 독일 등의 유럽식 맥주가 많은데 당장 맥주를 잔에 따라보면 잔거품이 풍부하다. 나에게 잔거품 없는 맥주는 시든 꽃이다.


그다음 주목할 것은 홉(hop)이다. 어떤 홉을 첨가했는가를 살핀다. 두 가지다. 언급한 3종의 ‘all malt’ 맥주는 모두 독일산 홉을 사용했는데, ‘아로마 홉’(Aroma hop)과 ‘노블 홉’(Noble hop)으로 나뉜다. 아로마 홉은 특유의 향이 있으며, 노블 홉은 향은 거의 없지만 쌉싸래한 맛이 강해 진하고 무겁게 느껴진다. 물론 그저 청량감이 좋아 맥주를 마시는 분들은 가장 오래된 상표의 흔한 맥주를 구입하면 된다. 하지만 구수하고 쌉싸래하고 진한 맛을 좋아하는 분들은 맥아(malt) 함유량과 첨가된 홉의 종류를 살펴서 선택하시라.


맥주 맛의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온도’다. 냉장고는 보통 섭씨 2도로 설정해놓기에 냉장고에서 꺼낸 맥주의 온도도 그렇다. 하지만 최상의 맥주 맛을 내는 온도는 겨울에 6도, 여름에 3도, 봄가을에 4도다. 아이스커피를 마실 때 그 향이 덜한 것처럼 맥주도 너무 차가우면 맥아와 홉의 향이 반감되기 때문이다. 수제 생맥주집에서 방금 내놓은 맥주를 떠올려보시라. 많이 차갑지 않은 그 온도가 제 맛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니 집에서도 안주를 만드는 동안 냉장고에 맥주잔은 넣어두고 맥주는 미리 꺼내두는 게 좋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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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가 빠질 수 없다. 사람에 따라서 안주는 술 자체보다 주인공이기에 술의 애인이 되기도 하지만, 내 경우는 심심함을 잊게 해주는 친구 정도다. 어쨌든 맥주와 궁합이 잘 맞는 안주는 내 경우엔 건어물과 골뱅이무침이다. ‘슈바인 학센’이라는 독일식 오븐 구이 족발도 좋아하지만 집에서 조리하기는 쉽지 않다(족발은 모든 술에 잘 어울리는 안주다). 나는 식사를 겸할 때는 골뱅이무침을, 그렇지 않을 때는 건어물을 친구 삼는다. 내가 만드는 골뱅이무침의 핵심은 다른 야채와 함께 깻잎과 미나리를 넣는다는 것과 맨손으로 버무리지 않고 집게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 두 야채는 맛과 향을 배가시키며 집게를 사용하면 흥건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소면은 딱 3분만 삶아야 면발이 찰지다.


건어물은 물기 없이 짭조름하기에 맥주와 잘 어울린다. 그중 나는 (‘바람태’가 본명인) 먹태를 좋아한다. 분무기로 습기를 뿌려두고 이튿날 그것을 구우면 식빵처럼 부드럽고 맛있다. 껍질이 가장 맛있는데 프라이팬에 바삭하게 구우면 일품이다. 소스 또한 중요한데, 물을 많이 섞어 짠맛을 낮춘 옅은 간장에 식초를 추가하고 청양고추와 마요네즈를 얹는다. 먹태는 내가 아는 가장 담백한 맥주 안주다. 국내 최대의 건어물 시장은 을지로5가에 있는 ‘중부시장’이다. 구경도 할 겸 둘러보다가 한 꾸러미를 사면 어느 대형 매장보다 값싸서 귀가할 택시비는 충분히 빠진다. 그곳은 물기를 모두 제거한 또 다른 바다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스페셜’ 코너에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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