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은 왜 공항으로 비행기를 돌리지 않았을까?

2016년 10월 03일 14:34

※이 기사는 최근 개봉한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에 대한 스포일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9월 28일 개봉한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은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비행기 추락사고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2009년 1월 승객과 승무원 155명을 태우고 뉴욕에서 출발한 유에스 에어웨이(US Airways) 1549편은 이륙 후 2분 만에 새떼와 충돌해 양쪽 엔진을 모두 잃고 추락한다.

 

관제소에선 공항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명령하지만, 기장인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톰 행크스 분)는 이에 르지 않는다. 공항에 못 미쳐 고층빌딩이 즐비한 뉴욕 시 한복판에 떨어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 설리는 인근 허드슨강에 내려앉기로 한다. 이전까지 비상착수(非常着水)한 비행기 중 승객들이 모두 살아남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설리는 기적적으로 비상착수에 성공하고, 승객들은 주변을 오가던 통근 배와 구조대의 도움을 받아 전원 구조된다. 새떼 충돌에서 착륙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08초. 빠르고 정확한 대처로 설리 기장은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다. 

 

영화는 착륙 직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설리는 조사위원회로부터 매서운 추궁을 받는다. 위원들은 컴퓨터로 사고 상황을 재현했을 때 주변 공항으로 갔으면 충분히 착륙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위험하게 강으로 갔느냐고 몰아붙인다. 조종사들이 사용하는 비행시뮬레이터로 재현해 봐도 역시 공항으로 기수를 돌렸을 때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었다. 설리는 하루아침에 영웅에서 엉터리 조종사로 추락할 위기에 처한다.

 

억울함과 절망감과 사고후유증에 시달리던 설리는 결정적인 순간, 시뮬레이션의 허점을 발견한다. 새떼와 충돌하고 나서 바로 기수를 돌리도록 프로그램돼 있다는 점. 이륙 직후 낮은 고도에서 새떼와 충돌하는 상황은 전례도 없고 비행교범에도 없는 상황이다.

 

결국, 설리는 “사람은 처음 겪는 사고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실제 조사위원회가 엔진손상 후 35초간의 공백을 두고 다시 시뮬레이션하자 활주로에 착륙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는다.

 

설리의 지적은 실제 재난에 처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했을 때 타당하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Time)’의 기자인 아만다 리플리가 재난 생존자와 과학자들을 인터뷰해 쓴 책 ‘언씽커블(The Unthinkable)’은 이를 뒷받침한다. 책에는 2001년 9월 11일 벌어진 세계무역센터 비행기 테러사건, 대형화재, 인질극, 총기난사, 허리케인 등의 생존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빼곡히 적혀있다.

 

재난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일어나는 현상은 ‘거부’다. 수많은 생존자를 인터뷰한 리플리는 “극도로 끔찍한 경우를 제외하면, 사람들은 놀랄 만큼 강력한 거부의 형태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는 ‘일상성의 편견’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패턴을 인식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현재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과거의 정보를 이용한다. 하지만 재난처럼 예외적으로 패턴이 없는 상황에서도 패턴을 찾으려고 애쓰다 보니,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리고, 심하면 현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2005년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가 세계무역센터의 생존자 900명가량을 인터뷰한 결과에 따르면, 생존자들은 충돌이 발생하고 계단으로 달려가기까지 평균적으로 6분을 기다렸다. 어떤 사람은 계단 앞까지 가는 데 45분이나 소비했다. 건물을 나가라는 지시를 받고도 1000여 명의 사람들이 컴퓨터를 끄거나 물건을 챙기는 데 시간을 지체했다.

 

거부의 극단적인 형태로 재난이 처했을 때 육체와 자신을 분리해서 받아들이는 ‘해리현상’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책에는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을 때 주변 현상이 초현실적으로 보이면서 오히려 무관심해졌다는 생존자 증언들도 나온다. 커다란 공포감을 느끼며 온몸이 마비되는 현상,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는 현상, 시간이 느리게 가는 현상은 재난을 맞닥뜨린 사람들이 공통으로 겪는 현상이다.  

 

설리 기장 역시 새떼와 충돌 한 후 수초 동안 당황해 아무것도 못했다는 사실이 녹음된 음성파일이 공개되며 드러난다. 다행히 곧 거부 단계를 벗어나 최적의 착륙장소를 찾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는 사실도 밝혀진다. 결국 설리 기장은 승객을 살려야한다는 책임감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 빠른 판단을 가능하게 했던 셈이다. 이 영화가 재난이 닥쳤을 때 책임자의 역량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영화에서 비행기 비상착수를 이끌었던 설리 기장(오른쪽)과 부기장(왼쪽).
영화에서 비행기 비상착수를 이끌었던 설리 기장(오른쪽)과 부기장(왼쪽).

변지민 기자

here@donga.com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관련기사

인기기사

댓글

댓글쓰기

지금
이기사
관련 태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