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년 된 집의 비밀을 찾아라! 명재 윤증고택 탐방기

2016.09.30 15:00

우리 조상들은 나무와 기와를 이용해 지은 한옥에서 살았어요. 지금도 서울 북촌이나 전주, 안동 등지에는 조선시대 중후기의 한옥이 그대로 보존된 마을이 있지요. 그런데 충남 논산에는 무려 308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한옥인 ‘고택’이 있다는 사실! 이 소식을 들은 <어린이과학동아> 기자단 친구들이 논산에 달려가 ‘문화재지킴이’ 활동에 나섰어요. 고택의 비밀과 그 속에 숨은 과학을 함께 만나 볼까요?

 

김은영 기자 gomu51@donga.com 제공
김은영 기자 gomu51@donga.com 제공

대문과 담장이 없는 집


윤증고택은 1709년에 지어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양반 저택이에요. 무려 308년의 긴 시간 동안 옛 양반 저택의 구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아요. 그래서 1984년 중요민속자료 제190호로 지정되었지요. 지금도 후손들이 살며 집을 매일 가꾸는 한편, 나라에서 수리와 유지를 돕고 있답니다. 


저택 이름은 조선 숙종 대의 학자 ‘명재 윤증’ 선생의 이름에서 따왔어요. 윤증 선생을 따르던 제자들이 저택을 지어 바친 거지요. 하지만 윤증 선생은 당시 집에 살지 않았어요. 기자단 친구들의 안내를 맡아 주신 윤증 선생 13대손 윤완식 선생님은 “윤증 선생은 이름이 널리 알려진 학자였지만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검소하게 살았기 때문에 큰 집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집안 곳곳에는 윤증 선생의 실용적인 생각이 듬뿍 담겨 있다”고 설명해 주셨답니다.

 

입구에서 바라본 윤증고택의 전경. - 김은영 기자 gomu51@donga.com 제공
입구에서 바라본 윤증고택의 전경. - 김은영 기자 gomu51@donga.com 제공

입구에서 바라본 윤증고택은 대문과 담장이 없기 때문에 자연 속에 그대로 안긴 듯 넓은 저택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어요. 대체 왜 대문과 담장을 없앴을까요?


“윤증 선생이 살던 시대는 정치 세력이 여러 당으로 나눠 대립하는 ‘당파 경쟁’이  심했어요. 윤증 선생은 당시 정치 세력의 중심이었던 ‘노론’이 일방적으로 나라를 뒤흔든다고 비판했어요. 이 때문에 노론 쪽에서는 저택 옆 더 높은 곳에 ‘향교’를 지어서 저택 안을 감시하기 시작했어요. 윤증 선생은 되려 ‘아무 것도 숨길 게 없다’며 직접 대문과 담장을 허물어 버렸답니다.”


집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 윤증 선생 덕분에 지금도  윤증고택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빼어난 한옥의  자태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게 되었지요.

 

고택 사랑채 앞에는 해시계의 표준석이 있다. 윤증 선생의 후손인 윤하중 선생이 새겼다. - 김은영 기자 gomu51@donga.com 제공
고택 사랑채 앞에는 해시계의 표준석이 있다. 윤증 선생의 후손인 윤하중 선생이 새겼다. - 김은영 기자 gomu51@donga.com 제공

베르누이 원리를 품은 사다리꼴 길


고택 입구를 조금 걸어 올라가면 당시 남자들이 기거했던 큰 사랑채가 나와요. 그리고 사랑채 뒤에는 여성들의 공간이었단 안채가 위치하고 있지요. 안채는 대청마루에서도 대문 밖을 쉬이 살필 수 있는 ‘ㄷ자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요. 또 안채 옆에는 식재료를 보관하고 요리를 하던 곳간채가 있지요.


그런데 안채와 곳간채 사이에는 바람이 잘 통하면서 온도까지 조절하는 마법의 길이 숨어 있어요. 이 길은 저택의 남쪽과 북쪽을 연결하고 있는데, 남쪽 끝이 북쪽 끝보다 약 1m 가량 넓은 사다리꼴 형태를 하고 있지요. 

 

남쪽에서 본 길(왼쪽)과 북쪽에서 본 길(오른쪽). - 김은영 기자 gomu51@donga.com 제공
남쪽에서 본 길(왼쪽)과 북쪽에서 본 길(오른쪽). - 김은영 기자 gomu51@donga.com 제공

“겨울에는 대륙에서 우리나라 방향으로 찬 북서풍이 불어요. 윤증고택 역시 산이 위치한 북쪽에서 저택이 있는 남쪽으로 찬바람이 밀려오지요. 그런데 이 길을 지나는 바람이 남쪽 끝에 도달하면 넓은 공간을 통과하며 그 속도가 줄어들어요. 이러면 안채 쪽에는 찬바람이 덜 불게 된답니다.”


같은 원리로 여름에는 산을 향해 불어가던 바람이 북쪽의 좁은 길을 통과하며 속도가 빨라져요. 그러면 곳간채에 바람이 잘 들어 음식물을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지요.


이처럼 좁은 공간을 통과할수록 공기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베르누이의 원리’라고 해요. 조상들이 경험을 통해 바람을 이용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적용한 거랍니다.

 

윤증고택 안채에는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에 들어가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 - 김은영 기자 gomu51@donga.com 제공
윤증고택 안채에는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에 들어가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 - 김은영 기자 gomu51@donga.com 제공

넓고 시원한 창으로 자연이 집안에 쏙!


윤증고택에는 자연과 함께하는 또 하나의 마법이 숨어 있어요. 바로 사랑채 곳곳에 달린 창! 문과 비슷한 크기의 널따란 창을 열면, 환한 햇빛과 함께 저택을 둘러싼 아름다운 정원이 벽 곳곳을 수놓아요.


특히 사랑채의 가장 높은 방인 ‘누마루’에 달린 큰 창은 이중 구조로 되어 있어서, 옆으로 연 뒤 위로 다시 밀어 올릴 수 있어요. 이렇게 창을 모두 열었을 때의 크기는 16:9에 가까워요. 지금의 와이드모니터나 영화 스크린과 같지요. 그래서 이 창을 열면 정원과 저택 앞 자연 풍경이 벽을 가득 채울 정도로 시원하게 보인답니다. 자연을 방안으로 들이는 ‘천연 모니터’인 셈이지요.

 

누마루의 큰 창 - 김은영 기자 gomu51@donga.com 제공
누마루의 큰 창 - 김은영 기자 gomu51@donga.com 제공

고택에 담긴 비밀스러운 과학을 취재하고 사랑채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한껏 맞던 친구들은 입을 모아 “다른 고택도 보고 싶다”고 외쳤어요. <어린이과학동아> 독자 친구들도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고택에 숨은 조상의 지혜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윤증고택의 장독대. 고택에서는 지금도 매년 직접 장을 담근다. - 김은영 기자 gomu51@donga.com 제공
윤증고택의 장독대. 고택에서는 지금도 매년 직접 장을 담근다. - 김은영 기자 gomu51@donga.com 제공

도움| 윤완식 (명재 윤증 선생 13대손, 현 윤증고택 소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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