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식해도 되는 유일한 이유

2016.09.17 18:15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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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은 그토록 더디 가더니, 추석 연휴는 쉬이 간다. 그사이 과식한 탓에 아마도 많은 이의 허리띠 눈금이 한 칸 후퇴하지 않았을까.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에 한가위 ‘달은 밝고 사람은 살졌으니’ 월명인비(月明人肥)하였겠다. 그 결과에 과식 자체도 기여했겠지만 명절 음식은 비교적 열량이 높은 편이다. 추석의 대표 음식인 송편만 해도 쌀을 응축했으니 상당량의 탄수화물이고, 그 소로 넣는 콩이나 깨에도 당분이 많아 그럴 것이다. 차례 상에 오르는 다양한 부침개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산적이나 탕국도 맛은 참 좋지만 살집과도 절친한 음식들이다.

 

그럼에도 명절이 되면 연휴 직후에 예견되는 체중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는 세끼는 물론이고 시시때때로 손에 닿는 대로 입을 호강시키기 마련이다. 그러기까지는 자의 반 타의 반이기 십상이다. 옛말에,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와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농가의 부모한테서 나온 말이겠지만, 밥상을 앞에 두고 오랜만에 마주한 자식의 포만감에 흐뭇해하시는 우리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소화시킬 틈도 주지 않고 다시 소반을 차리시니 말이다.

 

타지에 떨어져 사는 미혼의 성년이든 장성한 자식을 둔 중년이든, 그는 그의 부모에겐 그저 사랑스런 ‘내 새끼’이고, 중년 가을을 넘어선 연만한 분일지라도 부모 앞에서는 살얼음 같은 자식일 따름이다. 그런 자식의 몸에는 부모가 새겨 있다. 그것은 유전(遺傳)이라는 생물학적 유사성만이 아니다. 자식의 몸과 마음엔 어릴 적 어머니 품에서부터 느낀 체취뿐만 아니라 부모의 말씨 등의 모든 생활 습성이 각인돼 있다. 그중 하나가 어머니의 손맛이다. 서민의 식단에서 재료와 양념이 뭐 그리 크게 다르겠냐마는 된장찌개, 총각김치만이라도 집집마다 그 맛이 조금씩 다르다.

 

어머니의 손맛은 자발이든 권유든 과식을 부른다. 내 경우엔 들기름에 주물린 구수한 시래기 된장국이 나의 잠자던 유년의 식감을 흔들어 깨운다. 그것은 마치 그리운 사람을 오랜만에 만났을 때처럼, 어머니의 음식을 맛본 지 오래됐을수록 그 감흥은 더욱 웅숭깊기 마련이다. 그러니 오래전부터 유치(乳齒)로 먹었던 그 옛날 음식을 남기기도 힘들거니와 너끈히 비운 고봉밥 빈 그릇 옆에 한 공기를 더 놓아주시는 주름진 손을 마다하지 못해 내려놓으려던 수저를 다시 입에 데려가는 당장의 행복을 탐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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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행복감은 친밀감이 낳았다. 그 친밀감은 익숙함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와 늘 함께했던 음식이었는데 생활 터전이 분리되어 외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때마다 만날 수 있고 그리우면 찾아갈 수 있기에 떨어져 있어도 기다릴 수 있다. 그러다가 만난 반가운 얼굴, 따뜻한 손, 맛있는 손맛인데 어찌 합리적으로 적당량에서 멈출 수 있겠는가. 그 포만감은 어머니의 손맛에서 채워진 것이지만, 사실은 평소의 그리움을 먹은 것이다. 그러고 나면 당분간은 그리움의 밥그릇은 텅 빈다. 하지만 다시 시간이 지나면서 그 밥그릇엔 먼지처럼 그리움이 켜켜이 쌓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유한하기에 쌓이고 비우는 반복에는 끝이 있다. 그리움이 쌓이기만 하고 비울 수는 없는 날이 찾아온다. 그렇게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남은 자식은 ‘고아’가 된다. 특히 어머니가 별세하고 나면 ‘보이지 않는 진짜 탯줄’이 비로소 끊기는 것이다. 자식의 나이가 적든 많든 덩그러니 딱한 아이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리움이라는 허기가 밀려온다. 그 그리움은 단지 마음의 작용이 아니다. 어머니가 주신 첫 음식, 즉 ‘모유’(母乳)을 먹었던 몸의 조갈이다. 그러니 ‘진짜 탯줄’이 끊기기 전에 어머니가 차려주신 음식은 과식해도 된다. 대중가요로도 불린, 아래의 구전 민요를 들으면 마음이 짠해지기 때문이다.

 

 

  타박타박 타박네야. 너 어드메 울며 가니?
  우리 엄마 무덤가에 젖 먹으러 찾아간다.
  물이 깊어서 못 간단다. 물이 깊으면 헤엄치지.
  산이 높아서 못 간단다. 산이 높으면 기어가지.
  명태 주랴? 명태 싫다. 가지 주랴? 가지 싫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타박네」 중에서, 서유석 노래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스페셜’ 코너에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주
뉴스를 보다보면 무엇인가를 분석해서 설명을 해주는 내용이 대다수입니다. 그래야 원인을 정확하게 찾고,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고개를 들어 사물을 그대로 보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대상을 온전히 바라보면 분석한 내용을 종합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시인의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생활의 시선’을 매주 연재합니다. 편안한 자세로 천천히 읽으면서 감정의 움직임을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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