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단백질 사진으로 그를 추모합니다”

2016.09.11 18:28

 

네트 프뤼네 캘리포니아 공과대 연구원은 로저 첸을 추모하기 위해 자신의 SNS에 형광빛을 띤 꽃 세포를 공개했다.  - 네트 프뤼네 제공
네트 프뤼네 캘리포니아 공과대 연구원은 로저 첸을 추모하기 위해 자신의 SNS에 형광빛을 띤 꽃 세포를 공개했다.  - 네트 프뤼네 제공

로저 첸 UC샌디에이고 교수가 지난달 24일 숨을 거뒀다. 특정한 파장의 빛을 흡수해 녹색 빛을 내놓는 ‘녹색 형광단백질’을 연구해 2008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가 과학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거의 모든 생명과학 실험실에서 첸 교수가 만든 형광단백질을 사용하고 있다. 첸 교수에게 큰 빚을 진 후배 과학자들의 그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자신이 실험한 형광단백질 사진과 동영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하고 있다. 과학자들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추모문화’인 셈이다.

 

캘리포니아공과대 식물학자 네트 프뤼네는 자신의 SNS 계정에 “우리의 삶을 반짝이고 아름답게 만들어 줘서 고맙다”며 직접 만든 형광 꽃 세포를 공개했다.

 

과학자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떠나간 동료를 추모하는 경우는 의외로 자주 볼 수 있다.

 

지난달 학술지 ‘셀 메타볼리즘’에는 혈관면역자로 이름 높았던 정철호 캐나다 맥길대 교수를 추모하는 글이 실렸다. 정 교수는 올해 4월 24일 갑자기 집에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그간 그가 밤낮으로 연구에 매달린 터라 과로가 원인이라는 것이 주변의 추정이다.

 

그의 동료들은 정 교수를 위한 ‘헌정논문’을 학술지에 실었다. 그의 마지막 연구 성과를 게재하고 논문 말미에 추모글을 함께 실은 것이다. 동료 연구자들은 “우리 마음속에는 밝은 철호의 목소리가 여전히 들린다”며 “(그가 살아있었다면)우리에게 수지상세포(면역 세포의 일종)를 연구하는 좋은 학생, 의학 분야의 좋은 학생, 인생의 좋은 학생이 되라고 말해줄 것”이라고 적었다.

 

지난 3월 별세한 故 도윤경 UNIST 교수 - UNIST 제공
지난 3월 별세한 故 도윤경 교수 - 울산과학기술원 제공

비슷한 일이 지난해 3월에도 있었다. 도윤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생명과학부 교수가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마지막 논문은 그녀가 숨을 거둔지 100일 만에 학술지 ‘셀 리포트’에 발표됐다. 흑사병, 에이즈 등 난치병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T세포의 생성과정을 밝혀낸 중요한 연구였다. 이 논문을 마지막까지 책임지고 마무리해 출판한 것은 그의 남편인 류성호 순천향대 교수. 류 교수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진통제를 맞고 학교로 향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학술지의 표지에 떠난 이의 사진을 게재하기도 한다. 2009년 4월 23일 학술지 ‘네이처’의 표지에는 네이처의 편집장을 역임한 존 매독스 사진이 실렸다. 매독스는 1966~1973년, 1980~1995년까지 총 22년간 편집장을 지내며 네이처를 세계 최고 학술지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그는 경쟁 학술지를 따라잡기 위해 좋은 연구결과를 먼저 찾아 나섰고, 이를 위해 미국과 일본 등에 사무소를 열기도 했다.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살아있는 사람에게 수상한다’는 노벨상 위원회의 암묵적 규칙을 깨버린 사례도 있다. 고 도윤경 교수의 스승인 랄프 스타인먼 전 록펠러대 교수는 수지상세포의 역할을 규명해 2011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수상이 결정됐을 때 스타인먼 교수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그는 발표 4일 전인 9월 30일 췌장암으로 숨을 거뒀다. 이 소식을 들은 노벨상 위원회는 스타인먼의 수상을 취소하지 않았다.

 

당시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을 맡았던 고란 한손 사무총장은 “그가 기쁨을 누리지 못한 것이 슬플 뿐, 수상을 취소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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