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진실’

2016년 08월 27일 18:00

묻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진실’ - Tfurban(flickr) 제공
Tfurban(flickr) 제공

며칠 전 아침, 우리 식구가 좋아하는 뼈해장국을 사러 가려고 아내와 함께 큰 냄비를 들고 지하 주차장에서 잠자던 차를 깨웠다. 외진 길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9시 방향에서 빠르게 달려오던 1톤 냉동탑차가 12시 방향으로 미끄러지듯 좌회전했다. 순간 휘청했지만 중심을 잡은 탑차는 다시 서둘러 직진했다.

 

하지만 짐칸의 철문이 열리면서 두 개의 플라스틱 박스가 도로에 나동그라졌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 차량은 쏜살같이 모퉁이로 사라졌다. 그 차량을 뒤따라 좌회전을 한 SUV 차량이 떨어진 박스 옆에 멈췄다. 신호가 바뀌어 이번엔 내 차가 직진했다. 그 지점에서 속도를 줄여 지나갔다. 그 SUV 차량 운전자가 서둘러 그 두 박스를 자기 차량 트렁크에 싣고 있었다. 얼핏 보니 박스에 담긴 것은 식자재 같았다.

 

천천히 지나쳐 가면서 생각했다. 그 중년의 남성은 왜 남의 것을 자기 차에 실었을까. 차량 통행의 방해가 되지 않게 하고, 주인이 물건을 찾으려고 되돌아온다면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길가에 옮겨놓으면 될 텐데. 도로에 떨어진 이상 이제 물건의 주인은 따로 없다고 여긴 것일까. 그의 욕심에 혀를 찼다. 그러다가 또 다른 신호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어쩌면 그는 적극적으로 그 물건을 되찾게 해주려고 자기 차에 싣고 그 외진 모퉁이 길로 따라갔을지도 모른다고. 

 

GIB 제공
GIB 제공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일산시장에 도착하니, 여전히 5일장이 열리는 그곳엔 이미 도로변에 파라솔들이 나열해 있었다. 예전엔 장날(3/8일)에 맞춰 찾아가 어린 열무도 두세 단 사고 호박잎도 한 봉지 사 들고 오곤 했던 그곳의 몇몇 맛집 중에서 우리 부부는 종종 ‘ㅅㅁㄴ뼈다귀해장국’을 찾아간다.

 

손님이 자리할 공간이 고작 대여섯 평밖에 안 되는 허름한 그 식당은 평일에는 낮 한두 시면 문을 닫고 휴일에는 정오가 되기 전에 마감할 정도로 찾는 이가 많아 문밖까지 줄서 있을 때가 다반사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삼사십 분을 기다려야 겨우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은 포기하고 아예 냄비에 받아 오곤 했다. 그런데 조금 일찍 찾아간 그날은 이십 분 정도만 기다리면 될 듯하여 냄비를 맡기고는 줄을 섰다.

 

역시 맛있었다. 그 집의 뼈해장국은 살점이 부드럽고 국물 맛이 맑고 깊다. 냉동된 돼지 등뼈가 아닐 것이다. 몇 해 전, 포장을 기다리다가 우연히 시골 집 부엌 같은 주방을 엿본 적이 있다. 큰 가마솥 두 개가 화덕에 얹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우거지 삶는 솥, 다른 솥에서는 돼지 등뼈가 고아지고 있었을 듯했다. 그 용량이면 아마도 하루 채 1백 그릇이 안 나올 듯했다. 언제나 손님들이 줄을 서는 그 집은 왜 다른 유명 맛집들처럼 공간을 확장하고 인력을 늘리지 않을까. 나의 이런 궁금함에 대부분의 동네 지인들은 그것이 영업 전략일 거라고 말했다. 공간을 늘리지 않아 줄섰다가 먹게 하고 일찍 문을 닫아 희소가치를 높이는 것이 그들이 예측하는 그 집의 영업 전략이었다.

 

과연 그럴까. 손님이 줄을 서는 맛집이 확장 이후에 장사가 안 되는 걸 이제껏 나는 보지 못했다. 그러니 그 이유는 얄팍한 영업 전략은 아닐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노부부와 딸과 사위 네 식구가 인력의 전부인 그 허름한 집 사람들은 딱 먹고살 만큼만 벌려는 게 아닐까. 돈의 노예가 되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닐까. 그리고 주변의 다른 식당들도 함께 먹고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묻지 않았으니 그럴지도, 아닐지도 모른다. 도로에 떨어진 식자재 박스를 자기 차에 서둘러 실었던 그 남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공공성(公共性)의 이익에 역행하는 여러 사회적 일들 때문에 분노할 수밖에 없는 세상일들이 천지이고 그 뒤편에서는 무력한 사람들이 한여름에도 한숨으로 난방을 하는데, 내막을 알지도 못한 채 사사로운 일들에 대해 삐딱하게 바라본다면 이 세상은 더없이 답답하기만 할 것이다. 반면, 여러 세상사에서 누군가가 개인의 심사(心思)에 대해 묻고 대답한다고 해도 답변자가 자기 내면의 허위와 진실을 분명히 알지 못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생각과 욕망 사이에서 복잡한 존재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스페셜’ 코너에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주
뉴스를 보다보면 무엇인가를 분석해서 설명을 해주는 내용이 대다수입니다. 그래야 원인을 정확하게 찾고,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고개를 들어 사물을 그대로 보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대상을 온전히 바라보면 분석한 내용을 종합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시인의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생활의 시선’을 매주 연재합니다. 편안한 자세로 천천히 읽으면서 감정의 움직임을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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