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하나만 꺼도 무더위 못 느낀다

2016.08.22 17:00

역대최고였다는 1994년 여름 폭염을 겪었음에도 필자는 올해 더위가 가장 심한 것 같다. 망각의 동물에게 22년은 충분히 긴 세월인가보다. 보통 찜통더위는 7월 하순 시작해 2~3주 가므로 입추 무렵이면 폭염과 열대야가 사라진다. 그런데 올 여름 기상청은 몇 차례에 걸쳐 이 시기를 늦추더니(그래서 ‘희망고문’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8월 20일에야 무더위가 한풀 꺾일 것이라고 한다. (※편집자주: 그렇게 말했던 일기예보는 그새 바뀌어 한 주 더 무더위가 계속 될 것이라고 전합니다)

 

GIB 제공
GIB 제공

 

결국 견디다 못한 필자는 지난주 일거리를 싸들고 강원도의 해발 1100m 지역으로 더위를 피해 도망쳤다. 며칠 동안 쾌적한 초가을 날씨에서 잘 지내며 그동안 축난 몸을 보충하고 돌아올 무렵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접했다. 고기압이 한반도에 좀 더 머물러 무더위가 25일까지는 갈 거라는 얘기다. 결국 지난 토요일 오후 귀가한 순간부터 다시 폭염과 열대야에 시달리는 신세가 됐다. 게다가 일요일엔 서울이 36.6도까지 오르며 올 여름 최고온도를 찍었다. 22일까지 서울의 열대야가 30일이라고 하니 ‘잘 하면’ 1994년의 36일 기록을 갈아치울지도 모르겠다.

 

● 불쾌함 느끼는 건 생존 반응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참 민감한(아니면 나약한(?)) 존재인가보다. 필자가 지난주 며칠 머문 해발 1100m 지점과 지금 글을 쓰고 있는 해발 100m 지점의 온도차라야 기껏 10도인데(100m 높아질 때마다 0.9도씩 낮아진다고 한다) 한 곳은 그렇게 쾌적할 수 없고 다른 한 곳은 냉방기 없이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불쾌하니 말이다.

 

보통 실온(room temperature)이라고 부르는 온도는 20~25도 범위인데 바로 우리가 쾌적하다고 느끼는 온도다. 즉 특별한 냉난방장치 없이도 기온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일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범위가 불과 5도인 셈이다. 물론 옷을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그 범위가 약간 넓어질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늘 벗고 살수도 없고 움직이기 불편할 정도로 옷을 껴입으면 쾌적함이 상쇄될 것이다.

 

우리가 주변 온도에 이렇게 민감한 건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온동물에게 체온조절은 하루 24시간 내내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일이지만 여기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하면 안 된다. 따라서 체온조절에 에너지를 가장 덜 쓰는 상태를 쾌적하다고 느끼게 진화했다. 즉 일상적인 활동을 할 때 몸 안에서 발생하는 열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체온을 변화시키지 않는 수준이라 몸이 따로 수고(땀을 흘리거나 몸을 떠는)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다. 사실 벌거벗은 상태에서는 실온이 아니라 28~30도가 쾌적한 온도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나름 꽤 정확히 온도를 느낀다. 0도, 10도, 20도, 30도, 40도의 물이 담긴 그릇에 손을 넣어보고 온도가 높은 순서로 놓아보라고 하면 다들 맞힐 것이다. 온도가 중요한 분야의 장인들은 심지어 1도가 안 되는 온도차도 알아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처럼 정확하게 외부 온도를 감지할까. 피부 어딘가에 온도계라도 박혀있는 것일까.

 

물론 알코올 온도계처럼 100도가 넘는 범위의 온도를 정량적으로 알려주는 온도계는 없지만 우리 몸에는 여러 종류의 온도센서가 있어서 그 반응의 조합으로 외부 온도를 지각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즉 차가움에 반응하는 냉센서가 있고 뜨거움에 반응하는 열센서가 있다.

 

● 여러 온도센서 존재

 

예를 들어 TRPM8이라는 냉센서는 10~25도 범위의 온도에서 반응한다. 즉 한 여름에 에어컨이 빵빵한 카페에 들어선 순간 열센서가 꺼지고 TRPM8이 켜지면서 시원하다는 느낌(쾌감)이 들지만 TRPM8이 계속 켜져 있으면 어느 순간 서늘한 느낌(불쾌감)으로 바뀌면서 ‘냉방 좀 줄이면 안 되나...’ 같은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TRPM8 유전자가 고장날 경우 이 온도에서 춥다고 느끼지 않게 될까. 지난 2007년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그렇다. 즉 공간을 반으로 나눠 한쪽은 바닥 온도가 20도이고 다른 쪽은 30도로 할 경우 정상 생쥐는 대부분의 시간을 30도인 곳에서 보내는 반면 TRPM8 유전자가 고장난 생쥐는 선호도에 차이가 없었다.

 

한편 지금까지 알려진 열센서는 여섯 가지나 된다. 즉 52도가 넘는 아주 높은 온도에 반응하는 TRPV2와 역시 고통으로 지각되는 42도 이상의 고온에 반응하는 TRPV1, TRPM3, ANO1이 있다. 한편 고통으로는 여기지 않는 고온에 반응하는 센서로는 TRPV3와 TRPV4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한 여름 무더위를 지각하는 건 TRPV3와 TRPV4 덕분 아닐까.

 

실제 TRPV3의 경우 27~42도 범위에서 활성화되는데 유전자가 고장날 경우 온도를 지각하는데 꽤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밝혀졌다. 바닥 온도가 25도와 35도로 나뉜 곳에서 정상 생쥐는 시간의 90% 이상을 25도 방에서 보내지만 TRPV3 유전자가 고장난 생쥐는 3분의 2 정도만 25도 방에서 보낸다. 즉 고온을 불쾌하게 느끼는 정도가 약해졌지만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라는 말이다. 한편 TRPV4는 온도센서가 아니라 삼투압센서가 주된 임무로 보인다. 결국 고통이 아니라 불쾌함을 느끼는 ‘약한’ 고온을 담당하는 또 다른 온도센서가 있을지도 모른다.

 

● 33도보다 38도 약간 더 선호

 

‘네이처’ 8월 17일자 온라인판에는 한여름 무더위를 불쾌하게 느끼게 하는 진정한 열센서를 찾았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피터 맥노튼 교수팀은 TRPM2라는 이온통로단백질이 34~42도 범위에서 반응하고(즉 통로가 열려 이온이 통과하며 신호를 만들고) TRPM2 유전자가 고장난 생쥐는 바닥 온도가 38도인 곳에서도 벗어날 생각을 안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흥미롭게도 TRPM2는 1998년 이미 존재가 밝혀진 이온채널이다. 그리고 일정 범위의 온도에서 활성화된다는 사실도 10년 전 발표된 논문에서 보고됐다. 그럼에도 이번 논문 이전까지 온도센서의 관점에서 진지하게 TRPM2를 보지는 않은 듯하다. 가장 큰 이유는 TRPM2의 초기 연구가 온도 지각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조울증이나 인슐린 분비 등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체감각 정보를 척수로 전하는 축색의 세포체들이 모여 있는 부위인 배근신경절에서 얻은 뉴런(신경세포)을 여러 온도에 노출시켜 활성을 관찰했다. 그 결과 뉴런의 10% 정도가 34~42도 범위에서 반응하면서도 기존의 열센서는 갖고 있지 않았다. 즉 다른 열센서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이들 뉴런의 유전자 발현 패턴을 조사한 결과 TRPM2 유전자가 걸린 것이다. 이 유전자가 고장난 돌연변이 생쥐도 다른 연구자들이 벌써 만들어놨기 때문에 이를 구해 행동실험을 해봤다.

 

 

공간을 반으로 나눠 한쪽 바닥은 33도로, 다른 쪽 바닥은 아래 온도로 맞춘 뒤 정상생쥐(검은색)와 TRPM2 유전자가 고장난 생쥐(빨간색)가 머무는 시간을 비교했다. 33도/38도를 보면 정상생쥐는 불쾌한 고온(38도)에서 머무는 시간이 20%가 안 되는 반면 변이 생쥐는 60%나 된다. 반면 33도/43도에서는 둘 다 고통스러운 고온(43도)에서 머무는 시간이 10%가 안 된다. TRPM2가 불쾌한 고온을 느끼는 온도센서라는 말이다. - 네이처 제공
공간을 반으로 나눠 한쪽 바닥은 33도로, 다른 쪽 바닥은 아래 온도로 맞춘 뒤 정상생쥐(검은색)와 TRPM2 유전자가 고장난 생쥐(빨간색)가 머무는 시간을 비교했다. 33도/38도를 보면 정상생쥐는 불쾌한 고온(38도)에서 머무는 시간이 20%가 안 되는 반면 변이 생쥐는 60%나 된다. 반면 33도/43도에서는 둘 다 고통스러운 고온(43도)에서 머무는 시간이 10%가 안 된다. TRPM2가 불쾌한 고온을 느끼는 온도센서라는 말이다. - 네이처 제공

 

연구자들은 정상생쥐와 TRPM2가 고장난 생쥐를 대상으로 33도를 기준으로 해서 23도, 28도, 38도, 43도에서 머무는 시간을 측정했다. 그 결과 33도/38도일 경우 정상생쥐가 38도에 머무는 시간은 20%가 안 되는 반면 TRPM2가 고장난 생쥐는 60%에 가까웠다. 즉 38도인 곳을 33도인 곳보다 오히려 약간 더 좋아했다는 말이다. 한편 23도/38도에서는 정상쥐가 23도에 머무는 시간이 30% 정도인 반면 변이 생쥐는 10%에 불과했다. 즉 서늘함엔 좀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편 28도/33도와 33도/43도에서는 둘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즉 TRPM2가 고장날 경우 쾌적함을 느끼는 온도 범위가 기존의 불쾌하다고 느끼는 고온의 범위까지 확장되는 반면 고통스러운 고온(43도)을 느끼는 데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전 연구에 따르면 이 영역에서는 TRPV1, TRPM3, ANO1이 관여하므로 말이 되는 결과다.

 

그런데 지금까지 연구를 보면 다들 생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결과인데 이를 사람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즉 이들 온도센서 유전자들은 사람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일 TRPM2의 활성을 억제하는 약물이 나온다면 무더위의 불쾌함에서 해방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부작용으로 일사병 환자들이 급증하겠지만.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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