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 망토’는 ‘저널리즘’을 어떻게 바꿀까?

2016.08.09 11:00

영화 ‘해리포터’ 속 투명 망토 - 워너브라더스 제공
영화 ‘해리포터’ 속 투명 망토 - 워너브라더스 제공

‘해리포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누군가는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라는 마법 주문을, 또 누군가는 나는 빗자루를 타고 펼쳐지는 ‘퀴디치’ 경기를 떠올릴 것이다. 선호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나에게는 ‘투명망토’다. 우리나라 설화 속 ‘도깨비 감투’처럼 내가 필요할 때마다 썼다 벗었다 함으로써 나는 남에게서 보이지 않는다. 영원히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기에 SF 소설 ‘투명 인간’의 주인공처럼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도 없다.

 

남들에게서 내가 보이지 않게 되면 할 수 있는 것이 굉장히 많다. 좋게는 세계 평화를 위해 나쁜 사람들을 몰래 혼내 줄 수도 있고, 나쁘게는 나만의 행복을 위해 많은 것을 몰래 할 수도 있다. 물론, 이는 아직까지 영화나 설화, 소설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과학자들 투명 망토 기술 증명 성공...그런데 왜 이걸 개발? 

 

올해 7월 15일,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흥미로운 논문 한 편이 발표됐다. “등급화된 굴절률 나노복합재들로부터의 표면파 은닉(Surface Wave Cloak from Graded Refractive Index Nanocomposites)”라는 논문이다.

 

영국의 런던 퀸 매리 대학교(Queen Mary University of London)의 컴퓨터 공학과 연구진들과 다국적 군수 사업체인 BAE시스템즈가 제출한 논문인데, 제목만 봐서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핵심은 영화 ‘해리포터’에서 볼 수 있었던 ‘투명 망토’를 실용화할 수 있는 방법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투명 망토’를 과학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일까?

 

‘투명 망토’ 기술은 빛이 물체에 닿지 않고 지나가게 하면 가능하다. 사람의 눈에서 물체를 감춰버리는 투명망토를 만들려면 파장이 마이크로파보다 훨씬 짧은 가시광선 영역(380~770nm)에서 물체를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동아사이언스 제공
동아사이언스 제공

이를 위해 특별한 방법으로 빛을 굴절시켜야 한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빛을 굴절시키는 물질이 자연계 내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아직 투명 망토를 볼 수 없었던 이유다. ‘투명 망토’를 실제로 만들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이 빛을 굴절 시키는 물체를 인공적으로 개발해야만 한다. 연구진이 말한 ‘등급화된 굴절율 나노복합재’가 그것이다. (과학동아 2014년 6월호 참조).

 

연구진들은 논문에서 7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나노복합재 매개체를 사용해 빛을 굴절시켜 물체가 보이지 않도록 했다. 기존 연구와의 차이점은 7개의 층을 이용했다는 점이다. 과거 연구들이 주로 한 개 층만을 이용해 물체를 보이지 않게 한 반면에, 이 연구는 7개의 층을 복합적으로 활용해 더 많은 주파수 대역에서 물체를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의 가능성을 제안했다.

 

빛이 더 다양한 층에서 굴절되도록 한 것이다. 이를 통해 마이크로파, 적외선, 자외선, 가시광선 등 대부분의 전자기파 탐지에 포착되지 않도록 한다. 물론 논문에는 이보다 훨씬 자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 ‘투명 망토’ 기술을 어디에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문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기술적, 공학적 성취에 대한 내용만 담고 있을 뿐, 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논문의 저자 7명 중 2명이 BAE시스템즈라는 다국적 군수 사업체라는 점을 통해 군사적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만 가능하다.

 

투명인간을 소재로 다룬 영화 ’할로우맨’의 장면. - 콜럼비아 트라이스타 제공
투명인간을 소재로 다룬 영화 ’할로우맨’의 장면. - 콜럼비아 트라이스타 제공

●투명 망토 기술, 악의 세력이 사용한다면?


그렇다면, 자연에 없는 물질까지 만들어가면서 왜 과학자들은 투명 망토를 만들고자 하는 것일까?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몰래 이루고 싶다는 욕망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존재해 왔다.

 

존재하는 나를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사실 상당히 많다. 영화나 설화 속에서처럼 나쁜 사람을 혼내주고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는데 유용할 수 있다. 몰래 영화관에 가고 놀이동산의 긴 줄을 새치기하는 등 어린 시절 꿈꿨던 다양한 활용 방법들도 생각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본인에게는 좋을지 몰라도 그를 볼 수 없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지의 대상으로 두렵고 귀찮은 존재다. 어린이들을 위한 공포소설로 유명한 ‘구스범스’ 시리즈 중 ‘투명인간의 저주’에서 투명인간 브렌트는 새미와 친해지고 싶은 평범한 아이지만, 새미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었고 결국 그가 사라지기를 원하게 된다.

 

‘투명 망토’ 기술은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의 선의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은 그 선의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투명 망토’ 기술이 선의로만 사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투명 망토’는 ‘저널리즘’를 어떻게 바꿀까? - pixabay 제공
‘투명 망토’는 ‘저널리즘’를 어떻게 바꿀까? - pixabay 제공

●저널리즘을 파고드는 기술들, 그리고 숨은 의도는 무엇?

 

“우리가 ‘기술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세상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방법이다. 일상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는 많은 기술 장치들과 시스템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행위에 질서를 부여할 가능성이 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특정한 의도가 있건 없건, 사회는 기술을 위한 구조를 선택한다. 그 구조가 결정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처지에 놓이게 되고 불평등한 권력과 불평한 인식 수준을 가지게 된다. 물론 어떤 특정한 기구나 시스템, 기술이 처음 도입되는 순간에는 가장 폭넓은 선택의 가능성이 열린다. 그러나 이 선택은 물질적 장비, 경제적 투자, 사회적 습관 등에 강하게 밀착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일단 첫 선택이 이루어지고 나면 처음의 유연성은 현실적인 목적 때문에라도 사라지게 된다.”(랭던 위너 저, “고래와 원자로” 중에서)

 


이는 기술 철학자 랭던 위너가 1986년 저서 “고래와 원자로(The Whale and Reactor)”의 일부분이다. 이 글에서 연구진들이 논문에서 ‘투명 망토’ 기술의 사회적 활용방안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 사회는 기술이 등장하면 그 ‘신기함’과 ‘새로움’에 이끌려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기술이 이해하기에 어려워서일 수도 있지만, 그 기술이 주장하는 빠름, 효율성, 수익성, 노동 대체 등의 논리에 쉽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기술은 대부분의 경우 자신들의 주장을 훌륭하게 입증해 왔다.

 

그러다보니 기술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질서에 우리는 쉽게 순응한다. 또한, 기술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기에 그 질서가 올바른 것인지, 틀린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질 여유조차 없다. 그 질문을 던져야 할 한 주체 중 하나인 ‘저널리즘’을 수행하는 ‘저널리스트’들도 마찬가지다.

 

마크 주커버스 CEO가 드론으로 페이스북 라이브를 하고 있는 모습
마크 주커버스 CEO가 드론으로 페이스북 라이브를 하고 있는 모습

●언론사들은 페이스북에 왜 동영상을 띄우게 됐나?


“뉴스를 취재하여 대중에게 보도하는 행위”로 정의되는 저널리즘(journalism)의 핵심은 ‘무언가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위키피디아 참조). 이를 통해 저널리즘은 세상의 잘못을 감시하고 사회 각 부분이 서로 연계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지식과 가치를 전승해 민주주의적 공동체를 유지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투명 망토’를 만드는 과학자들의 의도가 선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이 현실화 됐을 때 사회가 그 기술에 적응하며 만들어나가는 질서가 문제일 것이다. ‘투명 망토’는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감춘다.

 

감춰도 되는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과학자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결정될 것이다. 그 결정 과정에는 ‘저널리즘’의 역할이 중요하다. 또한, ‘투명 망토’는 대놓고 감추지만 사실 기술은 보이지 않게 감추는 경우가 많다.

 

무언가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 방해가 되는 요인들을 배제하는 것으로 감추기보다는 무시하는 것이다. 인터넷 검색 결과가 대표적으로 이는 기술의 내재적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고려하면 빠르게 작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무엇이 배제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구글의 능력을 숭배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술과 마찬가지로 최종 결과만이 나타날 뿐, 내부의 작동 과정을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의 작동은 블랙박스에 숨겨질 뿐 아니라, 사실상 찰나에 이루어진다.”(루크 도멜 저, “만물의 공식” 중에서)


저널리즘 분야에도 기술이 적용되면서 무언가를 드러내야 하는 저널리즘의 본질적 기능과 기술의 내재적 속성이 부딪히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페이스북 뉴스피드에 콘텐츠를 노출시키기 위해 전통적인 텍스트 기반 언론사들이 동영상을 집중 생산하는 최근의 경향이 이를 상징한다.

 

앞으로 이 공간을 통해 이러한 문제들을 다뤄보고자 한다. 기술이 그 의도와는 상관없이 감추게 되는 또는 배제하게 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인문사회학을 전공한 학자가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관찰해 나가고자 한다.

  

※ 참고문헌

- Winner, L. (1986). The Whale and the Reactor.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손화철(역) (2010). 《길을 묻는 테크놀로지》. 서울: 씨아이알.

- Dormehl, L. (2014). The Formula: How Algorithms Solve All Our Problems. New York: Penguin.: 노승영 (역) (2014). <만물의 공식>. 서울: 반니.

 

 

※ 필자소개
오세욱. 학부에서 동양사를 전공하고 언론정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디어와 관련한 여러 곳의 회사를 다닌 후에 현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미디어로서 소프트웨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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