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냥꾼으로 부리는 꿀잡이새를 아시나요?

2016.07.25 17:26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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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나서 운동 삼아 천변을 걷다보면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서로 인사를 나누지는 않지만 자주 보다보니 사람과 개 쌍이 대충 눈에 익는다. 이 가운데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과 역시 나이든 개를 보면(푸들인데 털에 윤기가 없고 한쪽 눈에 백내장 기운이 있다) 마음이 짠하다. 천천히 걸어도 숨이 찬지 노인은 산책길 중간에 앉아 쉬곤 하는데 개도 늙어서 그런지 보채지 않고 옆에 배를 깔고 누워서 같이 쉬고 있다. 만일 옆에 이 녀석이 없었다면 노인은 무척 쓸쓸해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과 다른 종의 동물과의 관계에서 필자가 가장 감동을 받는 건 둘이 함께 일을 하는 모습을 볼 때이다. 양치기와 양몰이개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그 많은 양들을 요령있게 몰고 가는 장면이 그렇다. 거대한 코끼리가 위에 올라탄 작은 사람의 지시에 따라 벌목한 아름드리나무를 옮기는 모습 역시 경이롭다. 일을 마친 코끼리를 강물에 목욕을 시키며 커다란 솔로 때를 북북 밀어주는 장면이 정겹기도 하다. 


물론 필자가 사람과 함께 일하는 동물들의 실상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지적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실제 코끼리의 경우는 말을 듣게 하려고 꼬챙이로 쿡쿡 찌르며 학대하는 장면이 TV에 방영되기도 했다. 소의 경우도 쟁기를 끌게 하려면 송아지가 어느 정도 컸을 때 코뚜레를 꿰뚫어야 하는데 이게 보통 잔인한 일이 아니다. 필자가 어렸을 때 코를 뚫다가 놀란 송아지가 도망쳐 들판을 뛰어다니고 어른들이 잡으러 나선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이처럼 사람이 가축을 일꾼으로 쓰는 데는 아무래도 강제적인 ‘갑을 관계’인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물론 사람과 동물의 정서적 교감이 끈끈해져 나중에는 동물이 자발적으로 사람을 도우려고 애쓰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다만 무리를 짓고 우두머리를 따르는 늑대의 본능이 남아 있는 개는 예외적으로 많은 경우 기꺼이 사람을 따라 사냥에 참여하고 썰매를 끌지 않을까.

 

모잠비크와 남부 탄자니아에 걸쳐 사는 야오족의 한 청년이 꿀잡이새를 바라보고 있다(왼쪽). 꿀잡이새는 사람과 신호는 주고받아도 접촉하지는 않기 때문에 촬영을 위해 그물로 사로잡았다. 오른쪽은 꿀잡이새가 처음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낸 방향을 표시한 것으로 최종 목적지(bee
모잠비크와 남부 탄자니아에 걸쳐 사는 야오족의 한 청년이 꿀잡이새를 바라보고 있다(왼쪽). 꿀잡이새는 사람과 신호는 주고받아도 접촉하지는 않기 때문에 촬영을 위해 그물로 사로잡았다. 오른쪽은 꿀잡이새가 처음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낸 방향을 표시한 것으로 최종 목적지(bee's nest) 쪽에 집중돼 있음을 알 수 있다. - 사이언스 제공

매는 배부르면 날아가 버려


이런 측면에서 사람과 새가 함께 일하는 사례는 정말 예외적인 경우다. 매사냥이라고 사람이 길들인 매나 독수리와 함께 하는 사냥이다. 이때 사람이 몰이꾼 역할을 하고 새가 사냥에 나선다. 새를 길들였다고는 하지만 다리의 줄이 풀린 상태인 사냥 도중 언제든지 맘만 먹으면 날아갈 수 있으므로 앞의 가축들에 비한다면 사람과의 관계가 그렇게 종속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매사냥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과학카페 164 ‘새와 사람’ 참조.)


그런데 2008년 작고한 소설가 이청준의 중편 ‘매잡이’를 보면 사람과 매 사이의 관계가 생각보다 미묘하다. 즉 매가 가축에 비해서는 독립적인 존재인 게 맞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은 것 같다. 어찌 보면 사람과 고양이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할까. 즉 설사 매가 사냥을 하다 날아가 버리더라도 며칠 지나지 않아 배가 고파지면 다시 인가를 찾게 되고 사람을 피하지 않다보니 쉽게 붙잡힌다는 것이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길이 들어 혼자 사냥하는 능력이 부족한가보다.


소설을 보면 매사냥을 할 때 매가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요령이 나온다. 즉 굶주린 매가(사냥 전 며칠을 굶긴다) 포획한 사냥감을 배불리 먹기 전에 얼른 가서 다리에 줄을 묶어야 한다. 소설에서 몰이꾼이 꿩을 띄운 뒤 사냥현장으로 달려가다 넘어져 지체하는 사이 잡은 꿩을 실컷 먹은 매가 날아가 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며칠 뒤 인근 마을에서 사로잡혔고 매잡이에게 찾아가라는 전갈이 온다.


소설에서 묘사하는 장면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매사냥이 매나 독수리를 오랜 기간 고도로 훈련시켜야만 가능한 기술인 것만은 분명하다. 따라서 매사냥을 사람과 동물의 대등한 파트너십의 예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동물이 자발적으로 사람과 파트너 관계를 맺는다는 건 동화에나 나오는 이야기일까.

 

매사냥 장면. - Pixabay 제공
매사냥 장면. - Pixabay 제공

때로는 새가 먼저 신호 보내기도


수년 전 필자는 한 자연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보고도 믿기 어려운 광경을 봤다. 즉 매사냥이 아니라 ‘사람사냥’으로 불릴만한 광경으로, 새가 사람을 부려 함께 사냥을 하고 전리품을 나눠먹는 장면이었다. 즉 아프리카에 사는 꿀잡이새라는 참새보다 약간 큰 새가 그 주인공으로 사람에게 꿀벌집이 있는 장소를 알려줘 사람이 벌집을 털게 한다.

 

꿀잡이새의 안내에 따라 벌집을 발견한 사람들은 꿀을 털어가고 빈집을 남겨둔다. 그러면 꿀잡이새가 와서 밀랍을 먹는다. 즉 매사냥에서 사람과 매의 역할이 벌집사냥에서는 꿀잡이새와 사람의 역할로 뒤바뀌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점은 꿀잡이새는 정말 야생조류라는 점이다. 장대를 휘저어도 닿지 않는 거리에서 지저귀고 좀 날아가다 ‘잘 따라오고 있나’ 확인이라도 하듯이 멈춰 사람들을 돌아보는 모습을 보면 컴퓨터그래픽(CG)효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튼 당시 다큐멘터리에서 본 장면은 필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학술지 ‘사이언스’ 7월 22일자에는 꿀잡이새와 사람의 벌집털이가 상호 의사소통에 기반한 진정한 공동작업임을 밝힌 연구결과가 실렸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동물학과 클레어 스포트스우드 교수팀은 모잠비크와 탄자니아에서 꿀잡이새와 사람(수렵채취생활을 하고 있는 야오족과 하드자족)이 벌집사냥을 하는 장면을 관찰하고 상황을 연출해 행동을 분석했다.


사냥은 새쪽에서 먼저 벌집을 털러 가자고 신호를 보내기도 하고 사람쪽에서 새에게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사람이 보내는 신호를 새가 정말 알아듣는지 보기 위해 진짜 신호와 가짜 신호에 대한 반응에 차이가 있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호르르르르...음!”라는 평소 듣던 진짜 신호에는 66.7%가 반응한 반면 비슷한 크기의 사람 소리나 동물 소리에는 각각 25%와 33.3%만이 반응했다. 그리고 새를 쫒아 꿀벌집을 찾은 경우는 진짜 신호가 54.2%인 반면(즉 새의 안내를 받을 경우 81%에서 성공) 가짜 신호일 때는 둘 다 16.7%에 불과했다. 즉 꿀잡이새는 사람에게서 사냥을 하자는 진짜 신호를 들었을 때 더 많이 반응을 했을 뿐 아니라 제대로 반응을, 즉 길안내를 한 것이다. 


그렇다면 야오족과 하드자족은 길들이지도 않은 야생의 새와 어떻게 공동사냥을 하게 됐을까. 꿀잡이새와 함께 사냥을 하는 야오족 사람 스무 명에게 물어본 결과 이들 모두 새에게 보내는 사냥신호를 아버지에게 배웠다고 답했다. 즉 오래 전부터 이어온 기술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꿀잡이새도 사람의 신호를 알아듣고 때로는 자기들 쪽에서 먼저 보내는 신호를 엄마나 아빠에게 배운 것일까.


뜻밖에도 꿀잡이새는 뻐꾸기처럼 탁란을 한다. 즉 새가 날수 있을 때까지 다른 새의 둥지에서 자란다는 말이다. 결국 꿀잡이새는 어느 정도 자란 뒤에야 사회에 합류하게 되고 나이든 새들이 사람과 신호를 주고받으며 벌집털이를 하는 장면을 보고 배워 따라하는 것이라고 추정된다. 그리고 이 조그만 새는 사람하고만 이런 공동사냥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꿀을 좋아하는 곰을 파트너로 삼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논문을 보면 사람과 공동작업을 하는 또 다른 야생동물의 예로 돌고래를 들고 있다. 즉 1세기 로마시대의 군인이자 자연학자였던 플리니우스의 저서 ‘박물학(자연학)’에 어부들이 돌고래를 불러 함께 물고기를 잡는다는 기록이 있고 그 뒤에도 비슷한 언급을 한 문헌이 몇 개 더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풍습은 이제 사라진 것 같다. 따라서 꿀잡이새는 야생 상태의 동물로서는 유일하게 사람과 공동작업을 하는 종인 셈이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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