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을 무대에서 확인한다… 연극 ‘코펜하겐’

2016.07.17 18:00

양자역학의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을 만든 닐스 보어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갈등을 다룬 연극 '코펜하겐'.  - 극단 청맥 제공

“입자는 파동으로도 관찰된다. 하지만 입자나 파동, 둘 중 한 가지 방식으로만 관찰할 수 있다.”(보어의 ‘상보성 원리’)

 

“입자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낼수록 운동량은 불확실해진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


“상보성 원리와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원자 수준의 미시세계에선 관측과 무관한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세계가 존재할 수 없다.”(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

 

1920년대 중반, 덴마크 코펜하겐에 모인 한 무리의 물리학자들은 세상을 뒤엎을 논의를 발전시킨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세계에선 오로지 확률로만 알 수 있는 세상이 펼쳐진다는, 다소 혼란스러운 이론이 여기서 탄생했다. 지명을 따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이름 붙은 이 이론은 곧 양자역학의 주류해석으로 떠올랐다.

 

보기 드문 ‘과학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이른바 코펜하겐 해석을 놓고 벌어지는 세계적 물리학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연극 ‘코펜하겐’이다.

 

코펜하겐 해석을 만들 때 중심에 있었던 두 사람이 있다. 1885년생인 덴마크에 살던 유대인 물리학자 닐스 보어와 1901년생인 독일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다.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 사이였고, 연구분야에선 경쟁자이자 협력관계였다. 코펜하겐 해석을 함께 만들어 기존 물리학을 완전히 뒤엎었다는 점에선 물리학계의 혁명 동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1940년 독일이 덴마크를 점령하면서 둘 사이는 서서히 멀어지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처럼 사이가 좋았던 보어(오른쪽)와 하이젠베르크(왼쪽)는 1941년부터 사이가 멀어졌다. - 위키미디어 제공
아버지와 아들처럼 사이가 좋았던 보어(오른쪽)와 하이젠베르크(왼쪽)는 1941년부터 사이가 멀어졌다. - 위키미디어 제공

연극 코펜하겐은 1941년 9월 말, 아버지와 아들처럼 가까웠던 두 사람이 결정적으로 갈라서게 된 날을 집중 조명한다. 하이젠베르크가 코펜하겐에 있는 보어의 집에 찾아온 그날 두 사람 사이엔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조국으로부터 원자폭탄 개발을 의뢰받은 하이젠베르크는 보어에게 핵분열에 관해 질문했고, 보어는 대답 대신 화를 냈다.

 

연극의 묘미는 이날 있었던 일을 ‘양자역학’ 적인 기법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하이젠베르크가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 그에 대해 보어가 어떤 대답을 던졌는지 불확실하게 띄엄띄엄 보여주는 방식으로 말이다. 연극을 보다 보면 두 사람이 당시 어떤 생각을 했고 그에 따라 어떤 역사적 결과가 나오게 됐는지 혼란이 인다. 세상이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증명한 두 사람의 비밀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답다.

 

복잡한 물리 이론을 일상 언어로 풀어낸 대목도 재미있다. 상보성의 원리와 불확정성 원리를 깨알같이 해설한다.

 

“그날의 변덕에 따라 산책 코스가 달라질 수 있어. 그래서 산책경로는 전자의 경로처럼 온전히 예측할 수 없지.”

 

“그가 유럽여행을 하며 보내온 엽서를 한 장씩 모은다고 해서 그의 움직임을 다 알 수 있나? 그건 순간순간의 흔적일 뿐이야.”

 

‘코펜하겐’은 자연만큼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운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연극이다.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7월 14일부터 31일까지 상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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