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미를 사랑하는 한 물리학자의 에세이

2016.07.10 18:00

 

불멸의 원자 - 이강영 著 - 사이언스북스 제공
불멸의 원자 - 이강영 著 - 사이언스북스 제공

 

인터넷 신조어 중에 ‘최애캐’라는 말이 있다. 최고를 뜻하는 ‘가장 최(最)’와 ‘사랑할 애(愛)’ 그리고 캐릭터(Character)의 ‘캐’를 합친 말이다. 한 마디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대상’이라는 뜻이다. 가령 “나의 ‘최애캐’는 게임 오버워치의 ‘송하나’다”가 그럴 듯한 예시가 되겠다(결코 기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렇듯 ‘최애캐’의 대상은 보통 영화나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속 캐릭터인 경우가 많지만 이강영 경상대 물리교육과 교수의 최애캐는 이탈리아 출신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인 것 같다.

 

페르미는 이 교수의 신간인 ‘불멸의 원자’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책에 수록된 에세이 중 한 편인 ‘쉬운 듯 우아하게’에서는 페르미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유독 드러난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페르미는 어려운 문제도 쉽고 간결하고, 뛰어나면서도 우아하게 풀어낼 수 있는 능력자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책은 이 교수가 과학문화웹진 ‘크로스로드’에 2011~2014년 약 3년간 ‘페르미 솔루션’이란 제목으로 연재한 에세이의 모음집이다. 에세이의 시작과 끝이 결국 페르미였던 것.

이 책은 확인된 과학적 사실만 친절하게 알려주는 과학 교양서가 아니다. 다달이 연재한 에세이를 모은 책이 그렇듯, 저자가 출간하며 순서를 재배치하기는 했지만 교과서처럼 차근차근 밑바닥부터 물리학적 개념을 쌓아주는 친절한 책으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 책은 현대물리의 ‘ㅎ’ 자 정도는 이해하는, 혹은 ‘ㅎ’을 구성하는 획 한 두 개 정도는 익숙한 독자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는 책에 가깝다.


책 제목과도 같은 ‘불멸의 원자’라는 제목의 첫 에세이에서는 원자라는 개념이 고대에 어떻게 탄생했으며, 이 것이 오늘날 원자와 어떤 점이 같고 다른지를 설명한다. 여기에 사람은 죽어도 그가 남긴 원자는 남는다는 저자의 생각이 덧붙여지며 첫 에세이가 끝난다.


하지만 이어지는 에세이부터는 물리에 관한 어느 정도의 교양 지식을 요구한다. 중성미자가 빛보다 더 빠른 것으로 관측돼 논란이 됐던 2011년 하반기의 사건과, 2012년 오스트리아 빈 공대 연구팀이 ‘네이처 피직스’에 발표한 ‘불확정성 원리의 오류’에 관한 이슈 등을 풍문 정도로는 들었어야 이해가 쉽다.

 

풍문으로는 듣지 못했다 해도 하이젠베르크가 제창한 ‘불확정성의 원리’ 정도는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어야 에세이를 따라가기에 무방하다. 재차 말하지만 이 책은 물리학자의 사유가 담긴 과학 에세이지, 교과서가 아니다.


하지만 ‘에세이’라는 데 방점을 찍고 보면 이 책은 울림이 있는 책이다. 현대물리학사에 등장하는 역사적인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은은하게 곁들여지는 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맛이 있다.

 

가령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폰 노이만의 짓궂은 성벽(性癖)에 대한 이야기는 독자들의 마음을 풀어놓으면서도, 천재로서의 면모, 실패에 대한 순순한 인정,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지는 글은 에세이로서의 담백한 맛이 진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을 즉각 항복시켜, 우리나라가 독립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원자폭탄은 세계에서 일본인 다음으로 한국인을 가장 많이 죽인 무기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관한 글은 수없이 읽었지만 이토록 씁쓸한 에세이라니. 그럼에도 이 같은 내용을 전달하는 저자의 문투는 시리얼처럼 파삭하다.


책의 부제는 ‘필멸의 물리학자가 좇는 불멸의 꿈’이다. 물리학이라는 진리를 쫓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여러 과학자들의 이야기의 행방은 결국 자연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 귀결한다.


저자는 “이번 책을 통해 물리학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내가 페르미가 아니라는 것만 확인했다”라며 겸손하게 자평한다. 그의 평가가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을 보이는지는 직접 책장을 넘기며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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