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르 멘델을 변호하다

2016.07.04 18:00

비록 내 평생 힘들 때도 많았지만, 아름다운 일과 좋은 일이 더 많았다는 사실에 감사드린다. 또 내가 이룬 과학적 업적에도 대단히 만족한다. 틀림없이 전세계가 곧 그 가치를 알게 될 것이다.
- 멘델의 유언


그(멘델)는 거짓말쟁이이거나 억수로 운이 좋은 사람이다.
- W. F. R. 웰던, 영국 생물학자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 세대 전 필자가 고등학생 때만해도 찰스 다윈보다 그레고르 멘델의 업적에 대해 더 많이 배웠다. 멘델의 법칙 두 가지(분리의 법칙과 독립의 법칙)를 배우며 우성, 열성, 표현형, 유전형 등 유전학 용어도 익혔다. 대학교재인 ‘생명과학’(캠벨 외, 8판, 2008년)을 봐도 14장의 제목이 ‘멘델과 유전자 개념’이다. 여전히 멘델은 ‘현대 유전학의 아버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최근 돌아가는 상황이 좀 심상치 않다. 2009년 다윈 탄생 200주년과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행사가 많이 열린 반면 멘델이 브르노 자연과학협회에 완두 교배 실험결과를 발표한 1865년의 150주년인 지난해에는 눈에 띠는 행사를 보지 못했고(있었을 수도 있다), 이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한 1866년의 150주년인 올해에도 마찬가지 같다. 게다가 학술지 ‘네이처’ 5월 19일자에는 생물학 교과서에서 멘델의 연구결과를 빼자는 주장이 실리기도 했다. 

 

멘델은 오스트리아제국(현 체코)의 브루노 수도원에 머무르며 1856년부터 1863년까지 완두를 대상으로 교배실험을 했고 이 결과를 1866년 논문으로 발표했다. 올해는 논문이 나온지 150년 되는 해다.
멘델은 오스트리아제국(현 체코)의 브루노 수도원에 머무르며 1856년부터 1863년까지 완두를 대상으로 교배실험을 했고 이 결과를 1866년 논문으로 발표했다. 올해는 논문이 나온지 150년 되는 해다.

시대에 뒤떨어진 결정론?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멘델의 실험을 교과서에서 빼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영국 리즈대의 과학사/과학철학과 교수이자 영국과학사학회 회장인 그레고리 래딕이다. 기고문의 제목은 ‘학생들에게 동시대의 생물학을 가르치자’로 멘델의 실험은 유전자의 영향력에 대한 ‘시대에 뒤떨어진 결정론’을 주입할 수 있기 때문에 빼자는 주장이다.


즉 오늘날 유전학은 단순히 유전자뿐 아니라 외부요인도 고려하는 복합적인 학문인데 유전자로 모든 걸 설명하는 멘델의 방식이 학생들의 사고를 편협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미디어가 흔히 쓰는 ‘노화 유전자’ ‘키 유전자’ 같은 표현이 바로 멘델 유전학을 배운 부작용이라는 말이다. 21세기 들어 후성유전학, 즉 유전자의 염기서열 자체는 변화가 없어도 외부요인으로 유전자 발현 정도가 영향을 받아 사실상 다른 유전자를 지닌 것 같은 결과가 나오는 현상에 대한 연구가 깊어지면서 멘델 유전학의 한계가 더 부각되고 있다.


사실 래딕 교수는 지난해에도 학술지 ‘사이언스’에 멘델 유전학에 대한 기고문을 실었는데 그때는 좀 다른 맥락이었다. 즉 멘델이 데이터를 조작했느냐 여부에 대한 논란은 이제 그만 두고 넓은 관점(앞의 주장)에서 비판하자는 내용이다. 즉 래딕 교수가 보기에 멘델이 직접 조작을 하지는 않았더라도 그의 조수들이 멘델을 기쁘게 하기 위해 멘델이 기대하는 값에 가깝게 데이터를 바꾼 것 같기는 하지만 더 이상 논쟁하는 건 낭비라고 주장했다. 참고로 1900년 잊힌 멘델의 논문이 재발견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하자 몇몇 과학자들이 논문의 데이터가 너무 이상적인 게 손을 댔다는 증거라고 주장하며 멘델 실험 조작 논란이 시작됐다.


예를 들어 표현형이 다른 두 순종(둥근 완두콩(RR)과 주름진 완두콩(rr))을 교배해 1세대에서 잡종(Rr, 전부 우성인 둥근 콩 표현형을 보임)을 얻은 뒤 잡종끼리 교배해 2세대를 얻으면 둥근 콩과 주름진 콩이 3:1로 나온다. 이 표현형의 비율은 순종 둥근콩 : 잡종 둥근 콩 : 순종 주름진 콩=1:2:1이라는 유전형 비율에서 나온다. 멘델의 논문을 보면 2세대 둥근 콩이 5474개, 주름진 콩이 1850개로 2.96:1로 너무 정확하다. 그런데 여러 통계기법을 써 분석하면 이런 결과가 나올 확률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멘델은 완두의 스물두 가지 형질 가운데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는 일곱 가지를 택해 교배실험을 했다. 사진속의 완두에 이를 적용해보면 둥근 콩과 부푼 콩깍지는 우성이고(주름진 콩과 수축된 콩깍지가 열성) 녹색 콩은 열성이다(노란 콩이 우성). - Bill Ebbesen 제공
멘델은 완두의 스물두 가지 형질 가운데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는 일곱 가지를 택해 교배실험을 했다. 사진속의 완두에 이를 적용해보면 둥근 콩과 부푼 콩깍지는 우성이고(주름진 콩과 수축된 콩깍지가 열성) 녹색 콩은 열성이다(노란 콩이 우성). - Bill Ebbesen 제공

다윈 논문 안 읽은 듯


래딕 교수의 기고문들을 읽으며 필자는 공감하는 측면도 있었지만 그래도 교과서에서 뺀다는 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멘델을 높게 평가 하지 않는 사람들은 멘델 자신이 실험결과의 심오한 뜻을 제대로 알고 있었을까 라는 의문을 품기도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는 오늘의 시점에서 바라본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가 아닐까 한다.


1866년 ‘브루노 자연과학협회지’에 논문을 낸 뒤 멘델은 사본 40부를 유럽 각지의 저명한 과학자들에게 보냈다. 이 가운데는 그보다 열세 살 연상인 다윈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사실 멘델의 해석은 너무 시대를 앞서 간 거라 그의 논문을 읽었더라도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1882년 다윈이 사망한 뒤 유품을 정리하다가 서류 더미에서 멘델의 논문이 발견됐는데 다윈이 읽은 흔적이 없었다고 한다. 만일 다윈이 1866년 멘델의 논문을 읽고 그 중요성을 파악했다면 멘델이 생전에 유명세를 탔을까. 아무튼 멘델은 1868년 대수도원장이 되면서 사실상 과학실험을 접었고 1884년 62세로 영면했다.


1900년 재발견이 있을 때까지도 유전학의 주류는 ‘혼합 가설’이었다. 즉 두 순종이 교배해 나온 잡종은 그 중간의 특성을 띤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완두콩 실험결과는 예외적인 현상이다. 반면 멘델은 유전이 불연속적인 단위로 이뤄진다는 가정을 함으로써 잡종 1세대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형질이 그 다음 세대에 다시 나타나는 현상을 멋지게 설명했다. 20세기 중반 들어 유전자의 실체가 명확해지면서 멘델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다시 반세기가 지나자 그 위상이 흔들리고 있으니 과학 패러다임의 변화란 이런 것인가.


물론 모든 과학자가 래딕 교수의 주장에 공감하는 건 아니다. ‘네이처’ 기고문이 실리고 5주가 지난 6월 23일 서신란에는 브라질 상파울로대 생명과학연구소 타니아나 토레스 박사의 반박문이 실렸다. ‘멘델의 유산을 계속 기념하자’라는 제목의 글에서 토레스는 멘델을 비롯해 현대유전학의 토대를 쌓은 과학자들의 업적을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버리는 건 말이 안 될 뿐 아니라 이들의 결과는 여전히 유전현상을 설명하는데 최고라고 주장했다. 즉 유전학의 지평이 넓어지긴 했지만 멘델의 유전학이 여전히 유전학의 핵심이라는 말이다.

 

식물도 동물처럼 위험감수성을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토양에 영양분이 풍부할 때는 영양분이 일정한 토양 쪽의 뿌리가 더 무성하고 부족할 때는 편차가 큰 토양 쪽의 뿌리가 더 무성하다. 자세한 설명은 본문 참조. - Hagai Shemesh 제공
식물도 동물처럼 위험감수성을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토양에 영양분이 풍부할 때는 영양분이 일정한 토양 쪽의 뿌리가 더 무성하고 부족할 때는 편차가 큰 토양 쪽의 뿌리가 더 무성하다. 자세한 설명은 본문 참조. - Hagai Shemesh 제공

완두의 선택


필자는 대학원 때 식물유전학 연구를 했는데 애기장대란 잡초를 키웠다. 물론 쌍떡잎식물을 대표하는 모델식물이다. 외떡잎식물로는 벼나 옥수수를 주로 연구한다. 그 밖에 담배, 페튜니아 같은 식물도 종종 등장한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완두를 대상으로 한 논문을 본 기억은 없다. 당시 필자의 연구주제와 완두가 별 인연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 6월 30일자(온라인)에는 모처럼 완두를 대상으로 한 논문이 실렸다. 다만 유전학은 아니고 생리학 분야로 환경에 따른 식물의 적응력을 보여주는 실험이다. 그럼에도 멘델의 위상이 흔들리는 때라서 그런지 반가운 마음에 잠깐 소개한다.


동물의 경우 먹이가 풍족할 때는 안정적인 환경을 선호하고 부족할 때는 변이가 큰 환경을 선호할 것이라는 가설이 있는데 이를 ‘위험감수성이론’이라고 부른다. 즉 부족한 게 없을 때는 위험(불확실성)을 회피하고 부족할 때는 위험을 선호한다(이판사판)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동물실험에서는 감수성이 약한 것으로 나왔다.


연구자들은 완두를 대상으로 식물도 이런 전략을 보이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즉 완두 싹이 나면 가운데 뿌리를 자른 뒤 양옆으로 난 뿌리를 각각 다른 화분에 심는다. 그 뒤 한쪽 화분은 영양분을 일정하게 공급하고 다른 쪽 화분은 편차가 크게 공급한다. 이때 영양분의 평균값은 같다. 연구자들은 뿌리의 양으로 식물의 투자전략을 추측했다. 즉 식물은 영양섭취를 더 기대한 쪽 화분의 뿌리를 더 키운다는 말이다.


실험결과 영양분이 부족하거나 중간일 때 식물은 위험을 선택했다. 즉 영양 편차가 큰 쪽의 뿌리가 더 무성했다. 반면 영양공급이 풍부할 때는 위험회피 전략을 써 영양 공급이 일정한 쪽의 뿌리가 더 무성했다. 연구자들은 뇌도 신경계도 없는 식물이 어떻게 이런 유연한 대처를 할 수 있는지 그 메커니즘까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식물이 겉보기처럼 그렇게 정적인 존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
    * 21대 국회의원 선거운동 기간에는 실명확인 과정을 거쳐야 댓글을 게시하실수 있습니다.
    * 실명 확인 및 실명 등록 서비스는 선거운동기간 (2020. 4. 2 ~ 2020. 4. 14) 동안에만 제공됩니다.